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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과 여주의 들녘을 가로지르는 남한강의 큰 물줄기와 이천에서 흘러온 복하천이 만나는 지점, 강물에서 20미터 높이의 벼랑에 부처님이 새겨져 있다. 앞벽 앞으로는 두 물줄기가 만나면서 형성된 밤섬이 있다. 지역 이름 ‘흥천(興川)’에서 보듯이 예전엔 수량이 풍부한 어부들의 삶터였고, 강원도에서 내려오는 상인들이 양평·여주·이천을 거쳐 한양으로 앞다투어 다녔던 물길이기도 했다. 마애불은 바로 그 삶터의 물길목을 지키고 있다. 고려시대의 우리 선조들은 삶과 종교, 예술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진 이런 기막힌 절경을 선택했다.

남동향으로 탁 트인 강을 바라보며 연화대좌 위에 양발을 벌리고 선 불상이다. 상호의 통통한 볼과 타원형의 눈썹, 사실적인 귓밥이 예쁘게 돋보인다. 머리 뒤로는 세 줄의 두광이 표현되고, 그 주위에는 불꽃문양이 장식을 더한다. 오른손은 어깨 위로 올려 구부리고, 왼손은 길게 뻗어내린 자세이다. 양쪽 어깨를 덮는 통견 형태의 법의를 입고 허리띠를 잘록하게 매었다. 강바람에 날리는 듯한 옷자락은 팔을 타고 부드럽게 흘러내려가고, 그 바람으로 인해 양다리도 도드라져 있다. 옷주름 묘사가 부드러운 살결의 느낌을 돌게 한다. 이는 신라 불상의 특징을 계승하면서 고려화된 형식미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산 속이 아닌, 시원스레 앞이 트인 강가에 선 부처님. 부드럽고도 강한 부처의 시선을 따라가면 강물에 모든 잡념과 집착을 흘려버릴 것 같다. 예전에는 뗏목꾼이 안전을 빌었고 마을 사람들도 제사를 지냈다 하니, 수많은 염원을 간직한 자비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마애불을 보는 동안 강물에 그물을 띄워 고기를 잡던 아저씨 두 분이 빨리 내려와 매운탕 먹자는 농담을 건넨다. 마애불 기행은 표지판이 제대로 마련된 것도 아니어서 물어물어 오자면 헤매기 일쑤인데, 종일 굶은 여행객에게는 그보다 더 고마운 말이 없다. 당장이라도 뛰어 내려가고 싶지만 꽤 높은 바위절벽이라 고맙다는 미소만 건넨다. 배를 타고 가면서 너른 바위에 선 마애불을 바라본다면 그 절묘한 위치에 감탄해 자연스레 합장을 했을 것이다. 지금이야 찻길로 다니니 그 느낌이 살아날 리 없다. 마애불을 뒤로 하려니 어디선가 청설모 한 마리가 뛰어나와 부처님께 올린 감로수 한 모금 먹고 휙 고개를 돌려 객의 눈치를 살핀다. 오로지 이 녀석만이 부처의 가피력(加被力)을 그득 받아가는 셈이다.

이곳의 절집은 사세 기운 ‘석불사’이다. 절에 걸어놓을 마애불 사진이 없어서 그러니 사진 한 장 꼭 보내달라던 비구니의 부탁이 아직도 안타깝다. 이렇듯 좋은 곳인데 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할까. 지금은 접힌 역사책 글귀처럼 과거로 묻힌 듯하여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