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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의 위천(渭川)을 따라 금원산으로 오르는 산행은 깊고 또 깊다. 편평한 벼랑으로 흘러내리는 미폭(米暴)을 거쳐 지재미골의 문암(門巖)을 지나고, 호신암·가섭암·두문암·기도암까지 오르는 길이 그러하다. 특히 가섭암과 미폭은 조선 후기 김윤겸이 진경산수로 그린 명소이다. 본격적인 산행의 입구인 문암에서는 고려말 왕조를 지키려 했던 달암(達岩) 이원달(李元達)과 유환(劉懽)의 순절을 기리는 명문을 볼 수 있다. 문암에서 가섭암까지는 큼직한 바윗덩어리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가섭암 위의 큰 바위들이 서로 기대어 만들어진 공간 내벽에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영덩이처럼 둥글둥글한 바위 사이로 난 작은 입구에 들어서 10여 미터 정도 계단을 따라 오르자면, 마치 자궁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든다. 동굴 안에는 열 명 정도가 예배 볼 만한 공간이 있는데, 바위틈과 입구에서 흘러들어온 연한 햇살이 삼존불에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본존은 아미타불상으로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가슴 앞으로 올린 중품중생(中品中生)의 수인을 하고 있다. 보주형 광배에서 이어진 면은 삼존불 전체의 광배인 양 작은 키의 두 보살상과 대좌를 함께 감싸 불상을 도드라지게 갈아냈다. 삼존불은 저부조의 양각이지만 볼륨감보다는 평면적인 느낌이 강하다. 일정한 두께로 돋을새김 했기 때문인데, 탁본을 해놓고 보면 튀어나온 광대뼈에 삼각형의 코, 그리고 도식적으로 표현된 옷주름은 뚝뚝 도려내어진 목판화의 칼맛을 연상시킨다. 한편, 보살상의 천의자락이 좌우로 삐져나온 점은 삼국시대 보살상의 표현을 본딴 듯한데, 다소 복잡하게 표현되어 뻣뻣한 느낌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본존의 사각대좌에 솟아 있는 연꽃받침과 아래쪽을 향하여 만개한 보살상 대좌의 연꽃에서는 거칠고 평면적인 솜씨가 독특한 고식(古式)표현으로 살아 있다. 마애불 윗면 바위에는 빗물이 흘러들기 않도록 기다란 홈을 파놓았다.

삼존불의 오른쪽에는 12줄 540여 자에 달하는 긴 명문이 보이는데, 마애불의 제작연도가 ‘天慶元年’으로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1111년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천경은 요(遼)나라의 연호인데, 고려에서 요나라의 연호 ‘천경’을 사용하였던 것은 다음에서 알 수 있다. 《고려사》예종 11년(1116)조에 “요나라가 여진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게 될 상황에 놓였으므로 그들의 연호를 쓸 수 없으니 지금부터는 공사 문건에 천경이라는 연호를 제거하고 간지(干支)만을 쓰고자 한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명문의 박락이 심하여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고려 국왕의 ‘망모극락왕생(亡母極樂往生)’을 기원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인물로 ‘제복(堤福)’, ‘법운’ 등이 판독되는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