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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서악동마애삼존불. 통일신라 7세기 후반. 보물 제62호

본존 높이 6.9미터 좌협시보살상 4.6미터 우협시보살상 4.6미터

경주의 서악동 마애불에 오르는 길은 선도산 기슭의 태종 무열왕릉을 포함한 오릉에서 시작된다. 오릉을 지나 신라의 또 다른 고분군과 폐사지의 오롯한 석탑이 자리한 곳부터는 걸어야 한다. 길을 따라 오르다가 산 중턱쯤에서 뒤를 돌아 오릉을 한번 굽어볼 만하다. 특히 시계(視界)가 좋은 겨울 해거름에는 죽음이 아름답게 승화된 듯한 하나의 장중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다섯 개 무덤의 봉긋봉긋 연결된 선들이 연출하는 실루엣은 절로 숙연한 마음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부처님을 만나러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한 시간쯤 걸어 숨이 턱에 찰 즈음, 정상 근처에서 마애불을 만날 수 있다. 이런 하늘 아래쯤 되어야 세상을 굽어볼 수 있기 때문일까. 이곳에 서면 오릉의 봉분들과 남산, 경주 시내와 형산강 주변의 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남산을 중심으로 왼편 멀리 소금강과 토함산이, 오른편으로 중악인 단석산 쪽 능선들이 겹겹으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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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은 산 정상에서 남동향으로 서 있는 삼존불이다. 본존은 파손이 심해서 상호는 돌의 결을 따라 절반쯤 떨어져 나가고 코와 입부분만 겨우 남아 있다. 그렇지만 넓직한 턱이나 또렷한 입술선은 부처의 위엄을 나타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두 손의 모습은 시무외·여원인의 수인이다. 양어깨에 걸친 통견의는 묵직하게 가슴 밑까지 당당한 체구를 감싸고 흘러 내렸는데, ‘U’자형 의습이 성글게 주름져 있다. 대좌는 흙으로 찍어낸 듯한 연꽃문양이 또렷하게 도드라져 있다. 좌우 협시보살은 별도의 돌을 조각해 대좌에 조립하듯 끼워 넣은 점이 특이한데, 석질이 본존과 달라 남산의 돌을 예까지 운반해 온 것 같다. 좌협시는 왼손에 정병을 든 대세지보살이고, 우협시는 머리에 화불이 새겨진 관세음보살이다. 이로 미루어볼 때, 관음과 세지보살이 협시한 아미타삼존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삼존불 구성은 서산마애불 같은 삼국시대 형식을 계승한 것이다. 고신라 불상의 동자형 티도 완전히 벗지 못한 상태이지만, 좌우 보살상의 살이 오른 도톰한 볼륨감에 약간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탄력 있는 자태와 치렛거리는 새롭게 다가온다. 당나라 초기의 불상 양식이 가미된 형식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신라가 당과 연합해 통일을 이룬 직후인 7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본존을 마애불로 새기고 좌우 보살상을 환조로 조각한 배치 양식은 8세기 굴불사지 사방불의 아미타삼존불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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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산은 이름대로 선계(仙界)의 천도복숭아가 자란다는 산이다. 경주인들은 신라를 지키는 성모가 선도산에 계신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으며, 지금도 성모사(聖母祀)라는 사당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곳에 마애불을 조성했다는 것은, 신라인들의 전통적인 신앙처에 불교가 결합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이 많아 바스러지는 석질 때문에 불상을 성공적으로 조각하기 힘든 조건인데도 경주의 서악에 서방극락정토를 주재하는 아미타 삼존불로 모신 것이다. 특히 신라가 고구려를 이긴 직후 경주에 세운 것이니, 경주 왕족과 귀족들이 얼마나 불교에 기대었는지도 알 수 있다. 이리하여 선도산 마애불은 왕릉과 경주평야를 아우르는 최고의 전망지에서 굽이굽이 삶터를 굽어보며 온 신라인들의 염원을 껴안은 첫 하늘미륵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