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법사
urubella@naver.com 2014-06-05 (목) 17:245. 테라와다 불교의 깨달음에 대한 인식(認識)
깨달음이라는 용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깨달음은 원래 빨리어의 ‘bodhi’, ‘buddhi’의 한글 번역입니다. 붓다는 ‘깨달은 자’, ‘초월자’로 번역합니다.
한역 아함경에서는 ‘bodhi’를 보리(菩提)로 음사하면서 ‘覺(깨달을 각)’으로 옮겨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어원의 시초인 인도인들에게 붓다의 뜻을 설문해보면 대부분 깨달음의 개념보다는 ‘잘 이해한’, ‘현명한 사람’ 등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글에서 깨달음은 ‘잠에서 깨어나다(break awake)’와 ‘닿다, 다다르다(touch reach)’의 복합어의 뜻을 지님이 사전적 해석입니다. 즉 “정신이 깨어나서 실재에 가 닿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중국의 사전에서는 ‘깨어서본다’는 의미를 지닌 각(覺)보다는 ‘내 마음 깨닫는다’라는 의미의 오(悟, 깨달을 오)를 즐겨 쓰고 있음을 우리는 대승의 각 경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悟)와 더불어 득도(得道)라는 어휘도 오(悟)의 동의어로 종종 쓰임을 보게 됩니다.
일본어 사전에는 깨달음의 의미로 보통 ‘오(悟), 오도(悟道), 득도(得道)’라고 표기하고 있으며 각(覺), 각도(覺道)를 동의어 정도로 병기하고 있습니다.
영어권에서는 ‘깨어있음’, ‘높은 인식의 상태에 도달함’, 즉 be spritually awakened, 또는 attain enlightenment―higher perception 등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각 나라의 그 문화권의 영향으로 비슷비슷하게 보이지만 각기 다른 뉘앙스를 지니고 있음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테라와다 불교권에서는 수행자들에 대하여 ‘bodhi budhi, buddha’, 즉 ‘깨달음, 깨달은 분, 혹은 깨달았다’라는 것을 추구하는 이로, 표현함을 잘 쓰지 않습니다. ‘bodhi’나 ‘buddha’ 보다는 오히려 붓다께서 8정도를 통해 제시하고 있는 ‘Samma―ditti(정견, 올바른 견해, 올바른 봄)’나, 각 단계별로 잘 설파되고 주석된 ‘지혜의 증득’을 위한 수행자 등으로 중요시합니다.
예를 들면 그 수행자는 ―the yogiis…―“지혜를 증득했다― gained enlightenment” ― “담마를 체험했다― experienced dhamma”― “담마를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 keeping clear comprehension of dhamma” ― “정견을 갖추고 있다―keeping the right view”― 등의 표현을 깨달음 대신 자주 쓰고 즐겨 씁니다.
붓다의 최초 설법인 초전법륜경에서 붓다께서는 처음으로 꼰단냐에게 “안냐시 와따 보-꼰단뇨 (Aññāsi-vata bho kondañño)”, 즉 “꼰단냐는 깨달았다”가 아닌 “완전한 지혜를 갖추었다”라고 칭송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aññā(안냐)를 일본불교학자들이 ‘빨리 3장’을 ‘남전대장경’이란 이름으로 일역하면서 최초로 ‘구경지(究竟智)’로 번역했고, 이것을 한국에서는 ‘궁극의 지혜’, ‘완전한 지혜’로 옮겼으며, 영어로는 보디 빅쿠가 ‘undestood’ 혹은 ‘know’ 등으로 옮기기도 합니다. 때로는 출세간의 ‘sammā ditthi(정견)’으로 이해하기도 하며 ‘깨달음’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크게보기
경전 상에는 ‘지혜, 정견, 깨달음’을 통찰(panna)의 수준에 따라 종적으로 명확하게 구분해 놓았지만 횡적으로는 ‘지혜, 정견, 깨달음’의 개념에 대해서 별다른 구분 없이 혼용해 쓰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행자들이 혼동하지 않은 것은 붓다께서 이미 경전을 통해 어디서 무엇을 이해하고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를 자세히 명시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행자가 무얼 ‘under standing’했고, 어떻게 ‘know’했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지혜, 정견, 깨달음’이라는 용어는 사성제(고집멸도)와 삼법인(무상, 고, 무아)과 연기법이라고 하는 명확한 담마에 대한 통찰을 둘러싼 개념일 뿐, 그 본질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중요한 과정의 ‘지혜, 정견, 깨달음’과 관련된 빨리어 용어들을 살핌으로서 과정을 소홀히 한 우리들의 인식상의 깨달음의 정의를 올 곧게 알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1) 먼저 지혜부터 살피겠습니다.
보통 ‘통찰지’로 번역되고 있는 pañña(빤냐)는 S/k(산스크리트)어로는 prajna(쁘라즈나)라 하고 중국은 般若(반야)로 음역했고 한국에서는 ‘지혜’ 혹은 ‘반야지혜’로 옮겼습니다.
빨리어 경전 상에는 지혜의 의미를 담고 있는 술어들이 다양하게 나옵니다. 즉 ñana(智), pañña(通察智), vijja(明智), aloka(光明智), Añña(究竟智)등에서 알 수 있듯이 통찰이나 증득, 혹은 깨달음의 수준에 따라 비교적 체계적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그 외에
가)Cakkukarani(짝꾸까라니): 진리의 눈(法眼)
나)Parijānati(빠리자-나띠): 정확하게 알다 이해하다(徧知)
다)Sacchikata(삿찌까따): 경험된, 증험된, 눈에 보인
라)Sacchikarana(삿찌까라나): 실감, 경험, 증험, 이해(깨달음)
마)Sacchikiriya-abhisamaya(삿찌끼리야-아비사마야): 경험에 의한 완전한 이해
바)abhijāna(아비자나): 경험으로 앎, 철저히 앎, 깨달아 앎
사)Sammañána(삼마냐-나): 올바른 앎, 깨달음(正智)
아)Sammapaññá(삼마빤냐): 참된 지혜(正慧)
자)Sammadaññá(삼마단냐-): 완전한 지혜기사에 만족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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