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선사에 우리차를 올리러 백림선사로

운문은 한 학인이 종문의 강령을 묻자 ‘남쪽에는 설봉(雪峰)이 있고, 북쪽에는 조주(趙州)가 있다.’고 했다. 설봉의 법을 이은 운문이 북쪽의 조주선사를 흠모하고 찬탄하는 말이기도 하다. 조주선사는 운문의 나이 20세에 입적했다고 한다.

하북성의 성도 석가장(石家莊)에서 조현(趙縣) 백림선사(柏林禪寺)까지는 버스로 40분 정도 걸린다. 달리는 버스 차창으로 끝없이 펼쳐진 밀밭과 과수원 등을 감상한다. 강수량이 부족한 땅인 듯 평야 가운에 형성된 촌락의 집들은 하나같이 희뿌연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빈혈에 걸린 듯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농촌의 풍경은 엇비슷한 것 같다.

지금 우리 순례일행은 조주선사를 만나러 가고 있는 중이다. 조주선차를 마시러 가고 있다. 선혜스님은 가슴이 설레어 3일 동안이나 잠을 못 잤다고 하고, 대요스님은 조주선사가 던진 화두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를 확인하고 싶어 순례의 길을 결행했다 하고, 법진스님은 조주선사께 우리 차를 올리고자 다구를 걸망에 넣어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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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어록>에 보이는 조주선사의 행장은 이렇다.

스님은 남전(南泉, 748-835)선사의 문인이다. 속성은 학(郝)씨이며, 본시 조주(曹州) 학향 (郝鄕) 사람으로 법명은 종심(從諗)이다. 진부(鎭府)에 있는 탑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스님께서는 칠백 갑자(120세)나 살았다. 무종(武宗) 폐불법란(842-845)이 있자, 저래산(岨崍山; 현 산동성 泰安市 동남쪽의 산)으로 피신하여 나무 열매를 먹고 풀옷을 입으면서도 승려로서의 위의를 바꾸지 않으셨다.’

스님께서 처음 은사스님을 따라 행각하다가 남전선사 회하에 이르렀다. 은사스님이 먼저 인사드리고 나서 스님이 인사를 드렸는데, 남전선사는 그때 방장실에 누워 있다가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불쑥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상서로운 모습(瑞像)은 보았느냐.”

“상서로운 모습은 보지 못하였습니다만 누워 계신 여래를 보옵니다.”

남전선사는 벌떡 일어나 물었다.

“너는 주인 있는 사미냐, 주인 없는 사미냐.”

“정월이라 아직도 날씨가 차갑습니다. 바라옵건대, 스님께서는 기거하심에 존체 만복하소서.”

남전선사는 유나를 불러 말했다.

“이 사미에게 특별한 자리를 주도록 하라.”

낮에는 밥짓고 차 달이고 밤에는 지칠줄 모르고 참선정진

조주는 고향의 호통원(扈通院)으로 출가하여 7세 때 은사를 따라 남전선사를 찾아간 것 같다. 7세의 어린 조주가 누워 있던 남전선사를 벌떡 일어나게 할 만큼 감동시킨 것을 보면 그 비범한 천재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남전선사는 어린 조주에게 특별한 자리를 마련해주기는 했지만 불 때고 밥 짓고 차 달이는 일을 오랫동안 맡긴다. 오조 홍인이 혜능에게 방앗간지기를 맡도록 했던 것처럼 덕을 길러주기 위한 스승의 배려였는데, 조주는 대중을 위해서 불을 때고 물을 긷는 노두(爐頭)나 화두(火頭)의 소임을 다하는 한편 밤에는 조사들의 덕을 우러르며 지칠 줄 모르게 참선 정진한다. <조주어록>은 이때 조주가 어떻게 정진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조주가 남전선사에게 물었다.

“불법이 있음을 아는 이는 어디로 갑니까.”

“산밑 시주 집에 한 마리 물소가 되는 거다.”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젯밤 삼경에 달이 창에 비쳤다.”

물소가 되라는 남전선사의 답은 중생을 위해 살라는 말이 아닐까. 삼경에 달이 창에 비쳤다 함은 깨달음의 시절인연이 조주에게 이미 도래했다는 말일 것이다.

대중이 모여 채소를 다듬고 있는데, 불 때는 일을 맡아서 하던 조주가 승당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

“불이야, 불이야.”

대중이 한꺼번에 승당 앞으로 달려 나가자, 조주는 승당 문을 잠가버렸다. 대중이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자, 남전선사가 승당 창으로 조주에게 열쇠를 던져주었다. 조주는 곧 승당 문을 열고 나왔다.

남전선사가 조주에게 열쇠를 준 까닭은 깨달음의 문을 열 때가 됐다고 일러준 것은 아닐까. 갑자기 ‘불이야, 불이야’ 하고 소리친 까닭은 공부삼매에서 터져 나온 소리일 것이다. 조주가 소리치고 남전선사가 열쇠를 던진 것이야말로 줄탁(啐啄)의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병아리가 부화하려 할 때 알 속에서 쪽쪽 빠는 소리를 줄(啐)라 하고, 어미닭이 껍질을 쪼아주는 것을 탁(啄)이라 하는 것이다.

조주가 우물 누각에 올라가 물을 푸다가 남전선사가 지나가자, 기둥을 끌어안고 다리를 매단 채 소리를 질렀다.

“살려줘요, 살려줘요!”

남전선사가 사다리를 오르며 말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잠시 후 조주가 남전선사에게 가서 사례했다.

“아까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봄에는 꽃들이 피고 가을에는 달빛이 밝다

사다리를 말하지 않고 ‘하나, 둘, 셋... 한 것은 목숨이 위급한 순간에도 밖에서 구하지 말고 안을 살피라는 말이 아닐까. 사중득활(死中得活)이란 법어를 연상시키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마침내 조주는 20세 무렵에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한다. 스승인 남전선사에게 물었다.

“무엇이 도입니까.”

“평상의 마음이 도이다.”

“그래도 닦아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든 하려 들면 그대로 어긋나버린다.”

“하려고 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 도를 알겠습니까.”

“도는 알고 모르는 것에 속하지 않는다. 안다는 것은 헛된 지각(妄覺)이며 모른다는 것은 아무런 지각도 없는 것(無記)이다. 만약 의심할 것 없는 도를 진정으로 통달한다면 허공같이 툭 트여서 넓은 것이니, 어찌 애써 시비를 따지겠느냐.”

조주는 이 말 끝에 깊은 뜻을 단박에 깨닫고 마음이 달처럼 환해졌다. 오도송을 읊조리며 쓸데없는 번뇌 망상을 쉬었다.

봄에는 꽃들이 피고 가을에는 달빛이 밝다

여름에는 산들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흰 눈이 내린다

쓸데없는 생각만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우리 세상의 좋은 시절이라네.

春有百花秋有月 夏有凉風冬有雪

若無閑事掛心頭 便是人間好時節

이후 조주는 남전선사가 입적할 때까지 40년 동안 시봉하면서 교수사로서 스승을 대신해 법상에 올라 상당법문도 하게 된다.

그만큼 남전선사가 조주의 경지를 인정했던 것이다. ‘고양이 목을 베다(南泉斬猫)’라는 화두도 조주의 선기(禪機)가 잘 드러나 있다.

남전선사 회상에서 동당과 서당의 수좌가 고양이를 가지고 다투었다. 그때 남전선사가 고양이를 치켜들면서 말했다.

“말을 한다면 베지 않겠지만, 말하지 못한다면 베어버리겠다.”

대중이 말을 하였으나 아무도 남전선사의 뜻에 계합하지 못하자 당장에 고양이를 베어버렸다.

조주가 늦게야 밖에서 돌아와 인사드리러 가니 남전선사가 앞의 이야기를 다 말해 주고 물었다.

“그대 같으면 고양이를 어떻게 살리겠느냐.”

조주는 신발 한 짝을 머리에 이고 나가버렸다. 그때 남전선사가 말했다.

“만일 그대가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신발 한 짝을 머리에 이었다는 것은 달마가 신발 한 짝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달마선법으로 돌아가 평상의 마음을 응시하겠는 행위가 아니었을까. 물론 그 현장에서 내가 이런 말을 했다 하더라도 고양이는 죽음을 면치 못했겠지만.

조주는 60세가 되어서야 지양(地陽, 현 안휘성 貴池) 남전사를 떠나 세상의 일을 알고자 20년 동안 만행에 나선다. 황벽, 위산(潙山), 도오(道吾), 염관(鹽官), 협산(夾山) 임제(臨濟) 등을 만난다. 나이와 법랍을 불문하고 찾아다녔다.

“일곱 살 먹은 어린아이라도 나보다 나은 자라면 내가 그에게 물을 것이요, 백 살 먹은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한 이는 내가 그를 가르치리라.”

조주는 행각 길에 운거(雲居)에 이르러 운거화상을 만난다. 운거화상은 조주가 거처를 찾는 줄 알고 묻는다.

“연만하신 분이 어찌 머물 곳도 못 찾으십니까.”

“어느 곳에 머물면 되겠소.”

“앞쪽에 옛 절터가 있습니다.”

“그럼 스님이나 머물도록 하시오.”

조주가 수유(茱萸)를 지나면서 수유화상을 만났을 때도 비슷한 질문을 받는다.

“연만하신 분이 어찌 머물 곳도 못 찾으십니까.”

“어느 곳에 머물면 되겠소.”

“연만하신 분이 머물 곳도 모르는군!”

“30년을 말 타던 주제에 오늘은 나귀한테 차였구나!”

'차나 한 잔 들게나'로 사람들의 눈을 열어준 성지에 서다

순례일행이 백림선사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 향객들이 드나드는 산문은 이미 닫아버렸고, 사찰 수행자들이 사용하는 옆문만 열려 있다. 한국에서 순례를 왔다고 사찰 경비원에게 사정하니 뜻밖에 출입을 허락한다.

백림선사는 한나라 헌제(獻帝) 건안(建安) 연간(196-220)에 건립되어 처음에는 관음원(觀音院) 혹은 동원(東院)이라고 불렸고, 송나라 초기에는 영안성원(永安禪院)으로 바뀌었다가 금나라 때 백림선원, 원나라 때 현재와 같이 백림선사로 개명했다고 전해진다.

다례를 올리고자 조주탑으로 가는데 백림선사 주련의 한 시구가 눈에 띈다.

趙州飮茶則茶香四湓

조주 차를 마시나니

차향이 사방으로 퍼지는구나.

비로소 ‘차나 한잔 들게나(喫茶去)’란 화두로 천하 사람들의 눈을 열어 준 조주의 조정(祖庭)에 들어선 느낌이다. 순례일행은 조주탑으로 바로 가 다포를 펴고 다구를 펼치는 선혜스님을 돕는 한편 다른 스님들을 따라서 탑돌이를 한다. ‘조주의 눈빛은 천하를 녹여버린다’는 말이 있는데, 높이 33미터 7층으로 우뚝 치솟은 조주탑을 보니 선사의 위의가 느껴진다.

탑의 원래 이름은 길다. 특사대원조주고불진제광조국사지탑(特賜大元趙州古佛眞際光祖國師之塔). 조주선사가 입적한 후, 이 자리에 의발과 사리를 봉안해오다 원나라 천력(天歷) 3년(1330)에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선혜스님이 끽다거 공안의 시조 조주선사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차를 올리자, 차향이 바람결에 퍼진다. 이로써 천년 전 끽다거의 차향이 오늘 우리 순례일행에게 이어지고 있다. 차향은 어둔 마음을 밝히어 본성을 보게 만든다. 쓸데없는 생각을 쉬게 하여 평상의 마음으로 돌려주기 때문이다.

조주선사는 신라에서 온 구법승에게 물었다.

“여기가 무슨 절인가.”

“신라원입니다.”

“그대와 나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군.”

‘관음원’이라고 대답하지 않고, 공(空)의 도리에서는 한 발짝도 오고감이 없었다는 뜻으로 ‘신라원’이라고 대답한 신라 구법승에게도 조주선사는 ‘차나 한잔 마셔라’고 했을 것이다. <조주어록>에 보이는 ‘차나 한잔 마시게(喫茶去)’의 공안은 이렇다.

조주선사께서 새로 온 두 납자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여기 와 본 적이 있는가.”

한 납자가 대답했다.

“와 본 적이 없습니다.”

“차나 한잔 마시게.”

또 한 납자에게 물었다.

“여기에 와 본 적이 있는가.”

“있습니다.”

“차나 한잔 마시게.”

원주가 물었다.

“와 보지 않았던 스님에게 차를 마시라고 하신 것은 그만두고라도, 무엇 때문에 왔던 스님에게도 차를 마시라고 하십니까.” 조주선사가 소리쳤다.

“원주야!”

원주가 “예!” 하고 대답하니 조주선사가 다시 말했다.

“차나 한잔 마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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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뜰앞의 잣나무'는 실제로는 측백나무

관음원 뜰 앞의 측백나무들은 하나같이 고목이다. 나무둥치가 육탈한 뼈처럼 하얗다. 우리 선가에서는 잣나무로 알려져 왔던 나무들이다. 실제로는 ‘뜰 앞의 측백나무’인데 ‘뜰 앞의 잣나무’로 불려온 것이다. 대요스님이 순례일행에게 미소를 지으며 소리친다.

“분명하게 봤습니다.”

목적어를 생략했지만 나는 그것이 ‘뜰 앞의 잣나무’임을 알기 때문에 미소로 맞장구를 친다. ‘뜰 앞의 잣나무’라는 현상과 ‘본래면목’이라는 본질이 계합된 즉사이진(卽事而眞)의 말씀일 터였다.

조주선사가 상당하여 말했다.

“이것은 너무도 분명하여 겁을 벗어난 장부라도 이를 벗어날 수는 없다. 노승이 위산(潙山)에 갔을 때 한 학인이 위산스님에게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고 묻자, 위산스님이 ‘나에게 의자는 가져다주게’ 하였다. 종사라면 모름지기 본분의 일로 납자를 지도해야 한다.

그때 한 학인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니라.”

“스님께서는 경계를 가지고 학인을 가르치지 마십시오.”

“나는 경계를 가지고 학인을 가르치지 않는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니라.”

조주선사의 언어는 생생하고 간결하고 시적(詩的)이다. 사실주의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번뇌 망상의 뿌리를 단번에 잘라버리는 절단반연(截斷攀緣)이 있다.

한 학인이 조주선사에게 물었다.

“잣나무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있다.”

“언제 성불합니까.”

“허공이 땅에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라.”

“허공은 언제 땅에 떨어집니까.”

“잣나무가 성불할 때까지 기다려라.”

한 학인이 조주선사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

“위로는 모든 부처님에서 아래로는 개미까지 모두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개에게는 없습니까.”

“업식(業識)의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

조주선사가 마당을 쓸고 있는데, 한 학인이 물었다.

“스님은 대선지식인데 무엇 때문에 티끌을 쓸어내십니까.”

“티끌이 밖에서 들어왔어.”

“청정한 절에 어찌하여 티끌이 있습니까.”

“또 한 점이 더 생겼군.”

<下편에 계속>

茶提 정찬주(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