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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관시에서 유원현 대각선사(大覺禪寺)까지는 버스로 1시간 정도 걸린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운문사는 대각선사의 별칭이다. 당나라 후신임을 자처한 후당(後唐) 장종(莊宗) 3년(925)에 창건된 절인데, 처음 이름은 광태선원(光泰禪院)으로 불렸으나 송나라 태조 건덕(乾德) 연간(966)에 황제의 칙명이 내려 대각선사로 바뀌었던 것이다.

대각선사를 지금도 운문사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운문선사가 만년에 주석하면서 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결과 운문종(雲門宗)의 발상지가 된 까닭이다. 성철스님은 <선문정로>에서 오가(五家)의 종풍을 ‘위앙의 근엄함, 조동의 세밀함, 임제의 통쾌함, 운문의 고고(高古)함, 법안의 간명함’이라고 평하면서 ‘오가는 사람에 따라 풍이 달라진 것이지 도(道)가 다른 것은 아니다’라고 설한 적이 있다.

목주 회상에서 정진하다 설봉의존 법 전해 받아

운문선사의 행장은 <운문록> 하권에 보인다.

스님의 휘는 문언(文偃), 속성은 장(張)씨로 대대로 소주 가흥(嘉興)에서 살았다. 스님은 7, 8세쯤에 지징율사(志澄律師)에게 출가한 후 불경을 외우면 다시 열어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총명했다. 얼마 후 스님은 비릉단(毘陵壇)에서 구족계를 받고 다시 지징율사 곁으로 돌아가 사분율(四分律) 등을 공부하며 엄격하게 계율을 닦았고, 깨달음의 바탕이 무르익자 황벽선사의 법을 이은 목주 도종(睦州 道蹤)선사를 찾아갔다.

스님이 세 번이나 문을 두들겼을 때 목주선사가 문을 열어주었는데, 스님이 방으로 들어가려하자 목주선사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없는 놈!’이라고 고함치며 밀치자 그때 문득 밝게 깨달았다고 한다. 여러 해를 목주선사 아래서 정진하던 스님은 다시 설봉 의존(雪峰 義存)선사를 참예하고 설봉선사의 법을 전해 받았다.

이후 스님은 날카로운 기봉과 논변을 내세우며 여러 총림을 만행하다가 지성(知聖)선사의 도량으로 가 선방의 지도자인 수좌가 되었고, 지성선사는 자신의 유서(遺書)에 ‘인간 천상의 안목은 큰방 수좌다’라고 평한 글을 남겼다.

마침내 스님은 운문산으로 가 조사의 자리에 24년 반 동안 주석하니 도풍이 사방에 퍼지어 수제자인 백운산 실성대사(實性大師)를 비롯하여 참선하는 납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입실한 자를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무엇하러 쓸데없이 수레바퀴 진흙을 들어보이랴

절을 감싸고 있는 운문산이 엷은 운무에 드리워 있어 산사의 정취가 더 느껴진다. 운문선사의 선시를 보니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듯하다.

하늘 뚫고 솟아오른 운문산에 흰 구름 나지막한데

물살 급한 여울에는 물고기 감히 살지 못하네

문안에 들어서면 벌써 들어온 사람의 경계 아는데

무엇하러 쓸데없이 수레바퀴 진흙을 들어보이랴.

雲門聳剔白雲低 水急遊魚不敢棲

立戶已知來見解 何勞更擧轢中泥

‘무엇하러 쓸데없이 수레바퀴 진흙을 들어보이랴’는 마지막 구절이 나를 뜨끔하게 한다. 나를 안으로 반조하지 않는 순례란 자신에게 묻은 진흙을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사를 만나 신심을 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이익이 크다. <운문록>에는 신라인이나 신라국이 자주 등장한다. 천 년 전에도 이곳 운문산을 찾았던 신라의 구법승들이 많았던 것이 분명하다.

새로 온 학인에게 운문선사가 물었다.

“그대는 어디 사람인가.”

“신라 사람입니다.”

“무엇으로 바다를 건넜는가.”

“좀도둑이 크게 패했습니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내 손 안에 있는가.”

“정말 그렇습니다.”

“펄쩍 날뛰는군.”

운문사도 허운대사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고 한다. 특히 허운대사의 원력으로 1943부터 9년간 불사가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문화혁명 때 운문사도 예외 없이 파괴되는 법난을 맞았으나 1982년부터 불원(佛源) 방장스님이 주석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는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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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엔 오늘날도 노승-동자승 200여 대중 수행 중

반야용선(般若龍船)이 떠 있는 연못을 지나 천왕문으로 들어서니 대웅보전이 나타난다. 여느 절과 달리 노승과 동자승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띈다. 대중이 200여 명 정도 된다고 하니 우리나라로 치면 송광사 정도의 규모다. 경내가 좁은 탓인지 조사전 종루 객당 등의 가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답답하지만 비가 자주 오는 광동지방의 기후를 고려해서 우산 없이 다닐 수 있도록 가람배치가 조밀한지도 모르겠다. 건물의 양식만큼 기후와 풍토의 영향을 받는 것도 없으니까.

선방을 찾는데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애를 먹는다. 선방이 두 군데 있는데, 하나는 향객의 출입이 금지된 회허정(懷虛亭) 앞 대숲 속에 있고, 또 하나는 가람들이 들어찬 경내의 심처(深處)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노승의 안내를 받아 나와 순례일행은 운문사 선방에 입실한다. 마침 납자들의 자리도 좌복만 놓여 있고, 가마처럼 생긴 사방 1평의 방장실도 비어 있다. 방장실 앞에 서니 <불광>지에서 읽었던 ‘우리나라 선객과 불원 방장스님이 나눈 필담’의 내용이 문득 떠오른다.

“운문선사의 가풍이 무엇입니까.”

“호떡 먹고 차 마시는 것이 선사의 가풍입니다.”

“다산일미(茶禪一味)의 정신은 무엇입니까.”

“농선병행(農禪竝行)입니다.”

“선(禪)이란 무엇입니까.”

“말로서 드러낼 수 없습니다. 그 자체가 선이니 말에서 선을 찾지 마십시오.”

우리 순례일행은 불원 방장스님이 방장실에서 죽비를 치며 입정을 알린 듯 잠시 가부좌를 튼다. 화두는 각자가 다르겠지만 나는 운문선사가 납자들에게 던진 것 가운데 하나를 든다.

어느 학인이 운문선사에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마른 똥막대기다(乾屎橛).”

운문선사의 답을 가리켜 무문(無門)선사는 공안집 <무문관>에서 ‘번쩍이는 전깃불 같고, 돌이 부딪쳐 튀는 불꽃과 같이 눈을 깜박거리는 사이 지나가버린다’ 고 하였다. 학인이 부처를 물었을 때 이미 그 학인은 본래의 마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마른 똥막대기’란 말로 꾸짖었다는 것이다.

간시궐이란 대나무를 얇게 만들어 정랑에 놓아두고 대변 후에 밑을 닦는데 사용했던 물건이라고 한다. 질문했던 학인은 운문선사의 전광석화 같은 답변에 혼비백산하여 ‘왜, 어째서’라는 의문이 솟구쳤을 것이다. 명멸하는 생각이 여지없이 끊어지고 한 생각 이전의 적적한 상태로 돌아갔을 것 같다.

운문선사의 독설은 부처가 무엇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내려지는 벼락같은 처방전 이라고나 할까. 운문의 독설은 수행자의 분별과 망상을 깨트리는 데 있어서 찰나에 숨통을 끊어버리는 치명적인 고압전류 같다.

“전에 석가모니가 태어나셨을 적에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하늘 위와 하늘 아래서 나 홀로 존귀하다’고 하셨다. 만일 당시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몽둥이로 때려죽여서 개의 먹이로 주어 천하를 태평케 하였을 것이다.”

언어와 생각으로 깨달음을 구하지 말라

순례일행 모두가 눈을 감고 화두를 하나씩 든 채 ‘나는 누구인가’를 반조하고 있다. 햇볕이 들지 못해 어둑하고 눅눅하지만 내면을 살피는 순례일행에게는 밖의 조건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밖에서 언어와 생각으로 구하는 것을 운문선사는 극도로 경계했다. 언어와 말을 미신이라고 여기어 쳐다보지 않은 듯했고, 부처의 씨를 말리는 독약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가령 내가 한 마디 말로 너희들을 돈오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대들 머리에 똥물을 들이붓는 것이다.”

“내가 하루 종일 말하였으나 한 자도 말하지 않았으며, 하루 종일 밥을 먹었어도 곡식 한 알도 먹지 않았으며, 종일 옷을 입고 있었어도 실오라기 하나 걸친 적이 없었다.”

운문선사의 언행 모두가 의혹을 솟구치게 하는 화두다. 선방을 나서는데, 노승 한 분이 수돗물에 당신의 발우를 씻고 있다. 표정이 더 없이 온화한 노승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강원도 산중 오두막에 계시는 법정스님이 떠오른다. 스님은 불일암에 계실 때 나에게 오계와 불명(佛名)을 준 계사(戒師)이시기도 하다. 어느 날 내가 걱정스럽게 ‘스님께서는 강원도 깊은 산중에서 시봉하는 상좌를 두지 않고 왜 혼자 사시냐.’고 묻자, ‘건강한 내 손발이 상좌다’고 말씀했다.

선가에서는 밥 먹고 청소하고 발우를 씻는 일도 참선으로 친다. 그렇다. 밥 먹는 일을 누가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참선은 내가 하는 것이지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다. 법정스님께서 산중 오두막에 상좌를 두지 않고 홀로 사는 까닭도 바로 그러한 데 있지 않을까 싶다.

조사당에서 호떡과 차를 좋아했던 운문선사께 다례를 올리고 난 후, 운문선사 탑으로 가려고 하는데 조전(祖殿)이란 편액이 보인다. 편액 밑에 걸린 주련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른바 학인을 지도하는 방편으로 운문 삼구(三句)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함개건곤(涵蓋乾坤, 천지와 어긋남 없이 계합한다)과 절단중류(截斷衆流, 망상의 물줄기를 절단한다)가 보이고 있다. 수파축랑(隨波逐浪, 파도(학인의 근기)를 따라 흐름을 같이 한다)만 빠져 있는 셈이다.

涵蓋乾坤日日是好日

截斷衆流心心卽佛心

조전의 주련을 내 식대로 풀며 두런거려 본다.

천지와 어긋남 없이 계합하니 날마다 좋은 날이요

망상의 물줄기를 절단하니 마음마다 부처마음일세.

실제로 학인을 지도함에 있어서 운문선사의 일자관(一字關)은 전광석화처럼 빠르고 단순성의 극치를 드러낸다. 이를테면 학인이 물을 때마다 날카로운 비수를 목에 들이대듯 답했던 것이다.

“무엇이 정법의 안목입니까.”

“넓다(普).”

“무엇이 취모(吹毛)의 검입니까.”

“조사다(祖).”

“무엇이 현묘한 가운데 분명한 것입니까.”

“속이다(裏).

“무엇이 운문의 한 길입니까.”

“친절하다(親).”

“무엇이 선입니까.”

“옳구나(是).”

“그렇다면 무엇이 도입니까.”

“되었구나(得).”

“부모를 죽이면 부처님 전에 참회하지만 부처와 조사를 죽이면 어디서 참회를 합니까.”

“드러내라(露).”

운문의 일자관 속에는 비록 가장 짧은 법어지만 어느 것이나 다 운문 삼구가 구족되어 있다고 덕산 연밀선사는 말한다. 학인의 고정관념 내지는 사량 분별을 일시에 끊어버리는 삼구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지식이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은 운문선사의 표현대로라면 청정한 자성에 똥물을 묻히고 산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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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따는 학인에게 “달마는 몇 개나 땄느냐?”

이윽고 나와 순례일행은 운문산 자비봉 아래에 있는 운문선사의 탑 앞에서 합장하고 선다. 연못의 물은 맑고 대숲은 푸르다. 운문선사가 입적하자 법체를 방장실에 모셨는데 17년 동안이나 계속 방광(放光)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 한 줄기 잔영인 듯 무언가 섬광처럼 눈앞을 스친다. 선사의 눈부신 혼인 것도 같다. 그렇다면 선사는 천년을 하루같이 날마다 좋은 날이다.

“나는 보름날의 달이 둥글기 전에는 묻지 않겠다. 단지 보름 후만 묻겠다.”

대중들은 당황했다.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그러자 선사가 대신 말했다.

“날마다 좋은 날이다.”

탑을 참배하고 내려오는 길에 경내를 좀 벗어나니 채마밭에서 일하고 있는 수행자들이 보인다. 멀리 차밭도 조성돼 있다. 농선(農禪)의 전통은 운문선사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운문록>에 운문선사가 차를 따는 장면이 나온다.

운문선사가 찻잎을 따다가 옆에 있는 학인에게 말했다.

“찻잎을 따느라고 애쓰는구나. 질문을 던져보아라.”

대꾸가 없자 운문선사가 다시 말했다.

“못하겠거든 우선 상대인(上大人, 원래는 아기 달래는 자장가이나 불교에서는 본래면목을 가리킴)을 한 마디 외워 보아라. 그래도 모르겠거든 우선 옛 사람의 법도를 따르도록 하라.”

운문선사가 학인에게 물었다.

“어디 갔다 오느냐.”

“차(茶)를 따고 옵니다.”

“달마는 몇 개나 땄느냐.”

운문사를 떠나면서 결코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다공안(茶公案)이다. 내 짐작으로는 ‘차 따는 일’을 운문선사는 수행으로 생각하고 ‘본래면목을 보았느냐’를 ‘달마는 몇 개나 땄느냐’고 물었던 것 같다.

나의 순례도 차 따는 일에 다름 아닐 터이다. 운문선사의 ‘달마는 몇 개나 땄느냐’는 물음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茶提 정찬주(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