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화선사 산문 처마밑 '조계' 편액이 눈길을 사로잡다

대감사에서 광동성 곡강현 마패진에 위치한 남화선사(南華禪寺)까지는 20km_. 선종사찰의 이동거리치고는 아주 짧은 거리다. 지금까지는 6시간에서 3시간씩 버스로 장거리를 이동했던 것이다. 버스 안에서 편안하게 남화선사를 창건한 천축승 지약삼장을 떠올려본다.

광효사에서 며칠 간 머물렀던 지약삼장이 조씨 집성촌인 조후촌(曹侯村)을 지나면서 ‘산과 물이 어우러지고 봉우리가 빼어나니 마치 서천의 보림(寶林)과 같도다!’ 하고 감탄하며 마을사람들에게 ‘이곳에 절을 지으면 170년 뒤 무상법보(無上法寶)가 펼쳐져 도를 이루는 사람이 숲을 이룰 것이니 절 이름을 보림이라고 짓는 것이 알맞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당시 소주자사 후경중(侯敬中)이 양무제에게 상소하여 보림이란 사액을 받아 양무제 천감(天監) 원년(502)에 불사를 시작해서 3년만인 504년에 완성했다고 한다.

보림사(당나라 중종 때인 705년에는 중흥사, 707년에는 법천사)라고 불리던 절이 남화선사로 개명된 때는 송나라 초 968년이라고 하며, 산 이름도 지약삼장이 지은 보림산에서 조후촌 앞을 흐르는 조계(曹溪)란 이름을 빌려서 조계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남화선사 산문 처마 밑의 조계란 편액이 강렬하게 눈길을 사로잡는다. 순례 일행 중에서도 특히 스님들이 감개무량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이름이 바로 저 조계에서 유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밀려오는 감회로 조계산문을 넘기 전에 호흡을 고른다. 9세기에 이곳을 찾은 우리나라 조계종 종조 도의국사, 사굴산문 개산조 범일(梵日)과 그의 문도 행적(行寂)도 조계산문 앞에서 솟구치는 발심으로 마음이 크게 격동되었으리라.

지약삼장의 예언대로 남화선사는 혜능대사가 출현하여 30여 년 간 돈오법문을 펼쳤던 행화도량(行化道場)이다. 조계산문과 보림문을 지나니 작은 연못이 나타난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자 사천왕문이 있고, 바로 사천왕문 뒤에는 거대한 규모의 대웅보전이 자리를 잡고 있다.

나는 대웅보전으로 들어가지 않고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장경각으로 가 박물관 서기(書記)인 유제(有提)스님을 찾는다. 작년에 왔을 때 자신의 방으로 나를 초대하여 차를 우려 주었던 스님이다.

육조 등신상 참배하니 마치 서옹 큰스님을 친견하는 듯

단맛이 독특하게 도는 차를 가리키며 내가 “육조 혜능대사도 이 차를 마셨습니까.” 하고 묻자 “조계산에서 생산하는 차입니다. 육조스님도 탁석천의 물로 우려 마셨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하고 대답하여 나를 몹시 놀라게 했던 것이다. 조계산에서 난다는 차의 이름은 육조첨차(六祖甛茶)였다. 나는 그때 반신반의하면서 소관시로 돌아와 대감사 주변의 차시장(茶市場)에서 알아보기도 했는데, 발효차의 일종인 육조첨차는 주로 광동 사람들을 상대로 판매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육조첨차는 광동 지방의 특산품 같은 전통차였던 것이다.

크게보기

지금 생각해 보니 대부분의 요리에 설탕을 첨가할 정도로 단맛을 유난히 좋아하는 광동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개발된 차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또 다시 육조첨차를 마시려고 유제스님을 찾았으나 스님은 잠시 자리를 비우고 없다. 순례 일행도 대웅보전 참배를 마치고 조전(祖殿)으로 올라오고 있다.

순례 일행 가운데 몇 명은 장경각 바로 뒤편에 8각 5층으로 혜능대사가 입적한 지 5년 뒤에 조성한 높이 30미터의 영조탑(靈照塔)을 합장한 채 돌고 있다. 혜능대사의 진신상은 원래 영조탑에 모셨지만 훗날 탑이 무너질 위험이 있어 대사의 진신상을 따로 지은 조사당에 옮겼다고 전해진다.

대사가 열반한 곳은 대사의 고향 땅에 세워진 신주 국은사인데, 왜 남화선사에 대사의 법구가 모셔졌는지 의문이 든다. 묘탑은 열반한 곳에 세워지는 것이 상례인 것이다. 그러나 황제가 흠모했던 혜능대사의 경우는 예외였던 것 같다.

대사의 법구가 옮겨진 사연은 이렇게 전해지고 있다. 혜능대사가 열반에 들자, 대사를 육신보살로 믿고 따르던 소주자사와 신주자사가 서로 자기 관할지역의 절에 대사를 모시겠다며 다투었다고 한다. 대사가 입적한 지 100일이 지나도록 두 자사 간에 갈등은 팽팽하게 계속됐다. 결국 두 자사는 논의 끝에 향을 피워 향연기가 가리키는 곳에 대사를 모시기로 합의했고, 향 연기가 조계 하늘로 뻗쳐가는 것을 보고 남화선사에 대사의 법구를 모셨다는 이야기다.

조전에 든 순례 일행 모두 혜능대사의 진신상 앞에 무릎을 꿇고 삼배를 올린다. 거인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 자그마한 등신불이다. 문득 장성 백양사에 주석하셨던 서옹선사의 생전 모습과 닮았다는 느낌이 스친다. 옻칠을 하여 검은 빛깔이지만 천진하고 온화한 모습이다. 얼굴의 주름과 핏줄까지 보이는 듯하다. 문화혁명 때 홍위병들이 “이게 무슨 진신상인가” 하고 칼로 대사의 팔을 쳤다가 흰 뼈가 드러나자 숙연해하며 물러섰다는 얘기도 구전되고 있다.

다례를 준비하는 스님들의 태도도 육조 혜능대사의 후예답게 사뭇 엄숙하고 비장하다. 대사의 등신불 좌우로 명청시대(明淸時代)의 단전선사와 감산선사의 진신상이 시좌하고 있고, 위로는 일화오엽(一花五葉)이라는 글씨가 금색 비단 천에 쓰여 있다. 일화는 혜능대사이고 오엽은 선종 오가(五家)인 위앙종, 임제종, 조동종, 법안종, 운문종을 가리키는 말일 터이다.

일화오엽 글씨 바라보며 한국불교 선종 조계종을 떠올리다

일화오엽일실(一花五葉一實)이란 말은 없을까. 나는 그 일실(一實)을 한국불교의 대표종단인 조계종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실제로 공산주의 사회에서의 중국불교는 물론이고, 일본으로 건너간 조동종도 혜능대사의 돈오법이 온전하게 전승되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육조 혜능대사의 돈오선법이 한국불교의 조계종에서 열매를 맺어왔음이 아닐 것인가.

<조당집>17권 설악 진전사 원적(元寂)선사 편에는 도의국사가 이곳 조전에서 혜능대사로부터 무설(無說)의 법을 얻고 있음이 생생하게 나온다.

‘보단사에 가서 처음으로 구족계를 받고, 이어 조계에 가서 조사당에 참배하려는데 문이 갑자기 저절로 열렸고, 예배를 세 번 마치고 나니 문이 역시 저절로 닫혔다.’

도의국사가 혜능대사의 진신상을 예배하는 동안 조사당의 문이 저절로 열리고 닫혔다는 것은 이심전심의 구법이 이루어졌다는 신이(神異)다. 또 하나, 남화선사에 전해지는 이야기가 관심을 끈다.

신라 김대비(大悲) 선사가 남창 개원사에 머물면서 중국인 장(張)씨를 사주하여 육조 정상(頂相)을 훔쳐 본국으로 가져가려다가 미수에 그쳤다는 얘기다. 하동 쌍계사 육조정상탑과 김대비 선사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하지만 과문한 나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당시 신라 땅에 전해진 남종선이 활발하게 전파되면서 ‘이제 우리도 육조의 정상을 모실 만하다’는 신심과 종교적 자긍심에서 나온 갈망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례가 끝나자 순례 일행은 방장실 왼편으로 난 복호정(伏虎亭) 산길 끝에 있는, 혜능대사가 지팡이를 치자 물이 솟았다는 탁석천으로 향한다. 나는 복호정까지만 동행했다가 일행과 헤어져 허운대사 사리탑으로 가 참배하고는 일행을 기다린다.

조주선사의 후신(後身)이라고 불렸던 허운대사다. 120세에 입적한 것도 두 분이 같다. 허운대사의 상좌였던 정혜 방장스님은 내가 “생사윤회의 고통으로부터 해탈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허운 노화상의 종풍(宗風)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는데, 그 정경이 다시 떠오른다. 허운 노화상의 종풍을 우리말로 풀자면 이랬다.

계율을 엄히 지켜라

인과를 깊이 믿어라

화두선을 참구하라

마음을 밝혀 성품을 보라

순례 일행과 함께 다시 장경각에 도착하자 나와 구면인 유제스님의 호의로 한 스님이 안내를 해준다. 스님은 평소에 공개하지 않는 장경각 2층 문의 열쇠를 따더니 남화선사의 보물들을 보여준다. 2층 진열장 안에 있는 유물 중에서도 혜능대사가 행자시절에 허리에 매고 방아를 찧었던 추요석(墜腰石)과 대사가 신었던 노란 빛깔의 버선(袜子)이 눈에 띈다.

크게보기

잠시 후에는 측천무후가 대사에게 하사한 염주도 보물 보관함에서 꺼내와 보여준다. 옥에 금이 박힌 듯 천정의 불빛에 반짝이는 염주인데, 염주를 꿴 실은 최근 것으로 보인다. 하사품은 이뿐만 아니다. 측천무후와 중종이 마납가사와 수정발우를 보냈다고 하는데, 이곳 장경각에는 없는 것 같다. 측천무후와 중종이 내시 설간을 시켜 황실로 불렀으나 대사는 늙은 나이와 병을 핑계대며 거절한다. 다만 설간이 대사의 법을 묻자 대사는 숭악의 노안(老安)국사와 북종의 신수대사가 황실에서 ‘좌선으로 선정을 익혀 해탈하라’고 법문해온 것과 달리 이렇게 대답한다.

“도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깨치는 것인데 어찌 앉아 있는 데 있겠느냐. 경에 이르기를 ‘만약 여래를 앉는다 혹은 눕는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올 곳도 없고 갈 곳도 없는 까닭이라’ 하지 않았더냐. 생도 없고 멸도 없는 것이 여래의 청정선(淸淨禪)이요, 모든 법이 공적한 것이 여래의 청정좌(淸淨坐)이니 구경에는 증득함도 없거니 어찌 하물며 앉아 있는 데 있겠느냐.”

설간으로부터 대사의 법문을 전해들은 황제는 ‘짐을 위하여 도를 닦으니 나라의 복전’이라고 찬양하며 가사와 발우를 하사하고 대사의 옛 집터에 국은사라는 이름을 내렸던 것이다.

달빛 가득한 숲에 한 줄기 맑은 물이로다

유제스님은 나와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순례 일행 모두를 방으로 안내하여 육조첨차를 대접하더니 그것도 부족한 듯 화엄사 대요스님에게 벽에 걸린 달마도를 선물한다. 그러고 보면 한국스님이든 중국스님이든 아낌없이 베풀고 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회양스님도 바로 이 도량에서 정진했습니다.”

<조당집> 3권 남악 회양(懷讓) 편을 보면, 회양이 혜능을 참예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다.

혜능이 물었다.

“그대는 지금 어디서 오는 길인가.”

“숭산에서 화상께 예배하러 왔습니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한 물건이라고 말해도 맞지 않습니다.”

이 말에 혜능은 회양을 제자로 맞아들였고, 회양이 혜능을 시봉한 지 12년이 지났다. 회양이 혜능에게 절하고 하직을 고하니 혜능이 물었다.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는다 했는데 그것을 닦아 증득할 수 있는가.”

“닦아 증득하는 일은 없지 않으나 더럽힐 수는 없습니다.”

“그 더럽힐 수 없는 것이 부처님들께서 염려하여 보호하시는 바이니, 그대도 그렇고 나도 그러하느니라. 서천의 27조 반야다라께서 그대에 관해 예언하셨는데 불법이 그대로부터 융성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뒤엔 망아지(마조선사)가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이리니, 그대는 이 법을 너무 일찍 말해 주지 말라. 환란이 그대에게 미치리라.”

도의국사의 구법도량이자, 회양이 혜능대사 회상에서 12년 동안 정진했던 터라서 그런가. 조계산 남화선사와의 이별이 아쉬운 듯 대요스님이 <조계를 떠나면서>라는 발심의 시를 남긴다.

천연(天然)의 맑은 소리는

청빈(淸貧)의 살림살이고

깊은 산 층층이 푸른 솔은

고운 이웃이네

아득히 먼 하늘에

한 조각 흰 구름이요

달빛 가득한 숲에

한 줄기 맑은 물이로다.

순례일행이 혜능대사의 유적지를 찾아 마지막으로 도착한 절은 국은사(國恩寺)다. 혜능대사의 열반지답게 일행이 도착하자마자 조금은 우수(憂愁)에 젖게 하는 비가 쏟아진다. 그러나 나는 순례자의 업장을 소멸시켜 주는 비라고 여기며 상념에 잠긴다. 슬픔 따위와는 거리가 먼 ‘업장을 씻고 인연 따라 살라’는 무정설법의 비다.

경내에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들이 꽃잎처럼 나뒹군다. 마치 흰 찔레꽃잎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는 것 같다. 국은사는 혜능대사의 고향 신주 땅에 세워진 절이다. 당 현종 때(683년) 보은사로 창건되어 당 중종 때(706년) 황제로부터 국은사로 개명하라는 명을 받았다고 한다.

크게보기

순례일행은 혜능대사의 부모 합장묘로 먼저 가 참배하고 탁석천을 둘러 본 뒤, 비에 젖은 채 대웅보전으로 돌아온다. 대웅보전에는 특이하게 20분의 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두 분은 절에 불이 났을 때 <단경>을 지켜낸 제자라고 한다.

혜능대사의 열반 전후는 <조당집>에 잘 나타나 있다. 혜능이 제자들에게 게송을 읊었다.

마음 땅에 모든 종자를 머금었다가

단비에 모든 싹이 돋는다

꽃의 실을 몰록 깨달으면

보리의 열매는 자연히 맺으리.

나의 법은 도가 있는 이가 얻고 무심한 이가 얻으리라

이후에는 국은사에 탑을 세우게 한 다음, 어느 날 갑자기 문인들을 불러 말했다.

“나는 신주로 떠나가리라.”

대중들이 승속을 막론하고 슬피 울면서 만류했으나 혜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처님들도 세상에 나오셨다가 열반에 드시는 모습을 면치 못하셨다. 하물며 나는 분단생사(分段生死 한정된 수명) 과보를 면치 못했으니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문인들이 물었다.

“스님께서 신주로 가시면 언제 돌아오시겠습니까.”

“입은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나니, 돌아올 때는 말이 없으니라.”

“법은 누구에게 전하십니까.”

“도가 있는 이가 얻고, 무심한 이가 얻으리라.”

말을 마친 혜능은 곧바로 신주 국은사로 가서 열반을 기다렸다. 어느 날 공양한 뒤 가사를 입자 곧 향기가 방안에 가득했고, 흰 무지개가 땅에 박혔다. 그때 혜능은 홀연히 천화했다. 때는 8월 3일 춘추는 76세 선천 2년(713)이었다.

이로부터 1백여 년이 지난 뒤 헌종이 시호를 대감(大鑑)으로, 탑호를 원화 영조(元和 靈照)라고 내렸다.

茶提 정찬주(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