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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부터 5조까지 약속처럼 '동굴전법'

대만보탑 주변의 바위에 앉아 숨을 고르는데, 향을 파는 행상 아주머니들이 맹렬하게 달려든다. 아예 향에 불을 붙여 가져와 내민다. 중국스님이 법당에서 나와 사지 말라고 넌지시 손사래를 쳐준다.

홍인대사가 밤새워 좌선했던 동굴인 수법동(授法洞)을 보려면 오른쪽 산길로 가야 한다. 그렇다. 달마대사부터 홍인에 이르기까지 좌선하면서 제자에게 법을 전해준 곳은 모두 동굴이다. 유머가 풍부한 현장스님이 이를 두고 동굴탐험이라고 하여 순례 일행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순례라고 하여 숙연한 마음으로만 걷는 것도 쉬이 지치고 발걸음을 무겁게 할 것 같다. 어느 곳에서나 웃음은 삶의 활력소다.

산길로 막 내려가자 홍인대사가 제자들과 바둑을 두었다는 둥그런 기반석(棋盤石)이 나타난다. 홍인대사가 직접 바둑을 두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남북조시대부터 중국인들이 바둑을 즐겼던 것은 사실이다. 남북조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남사(南史)>에 ‘양무제(502-549)가 신하로 하여금 바둑을 잘 두는 고수들의 기보를 품정토록 했고, 거기에 포함된 고수가 270명이나 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이다. 더구나 바둑을 좋아했던 양무제는 고수들의 우열을 가리고자 1품부터 9품까지 기품(棋品)을 정하도록 명했다고 한다.

양무제 바둑설화엔 불살생의 가르침 담겨

<조야첨재(朝野僉載)>라는 중국 책에는 양무제와 신하가 바둑을 두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하루는 양무제가 사자(使者)를 시켜 신통력이 대단한 합두대사를 궁으로 불렀다. 그때 마침 양무제는 신하와 바둑을 두고 있었다. 사자가 “폐하, 합두대사가 왔습니다.” 하고 보고하자 양무제는 바둑에 몰두하고 있던 참이었으므로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상대방의 바둑을 잡으려고 “죽여 버려!”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사자는 바로 나가 합두대사의 목을 잘랐다.

이윽고 바둑을 다 두고 난 양무제는 합두대사를 불러들이도록 말했다. 그러나 사자는 “방금 폐하께서 대사를 죽이라고 하여 신은 명을 받은 대로 집행하였습니다.”라고 말했다. 양무제는 괴로워하면서 사자에게 “대사가 죽기 전에 무슨 말을 하던가?”라고 물었다.

이에 사자가 말했다.

“대사 자신은 죄가 없지만 전생에 농부였을 때 괭이로 땅을 파다가 지렁이 한 마리를 다치게 하여 죽인 일이 있는데, 폐하는 그때 지렁이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지금 자신이 죽는 것은 그때의 업보라고 말했습니다.”

양무제는 사자의 얘기를 듣고는 통곡하면서 후회했다고 하는 이야기인데 생생불식(生生不息), 몸을 바꾸면서 쉬지 않고 생을 이어가는 존재가 우주 안의 생명인 것이며 지렁이가 몇 생을 거쳐 황제가 되다니 윤회전생(輪回轉生)의 한 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주제는 윤회전생이 아니다. 불살생(不殺生) 혹은 땅속의 지렁이 한 마리에게까지도 자비로워야 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훌륭한 재목은 본디 깊은 산에서 나는 법

양무제의 바둑 얘기를 떠올리다보니 어느새 홍인대사가 좌선했던 수법동에 이른다. 동굴 천정에는 홍인대사의 손바닥이 음각돼 있다. 손을 맞추면 병이 낫고 복을 받는다는 속설이 있어 사람들은 어두운 동굴 안으로 들어가 너도나도 대사의 기운을 받으려고 기웃거린다.

그러나 홍인대사의 기운을 그런 식으로 받기보다는 대사의 깨달음을 향한 보리심을 닮아가는 것이 어떨까 싶다. <능가사자기>는 평생 동안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을 새워 좌선했던 홍인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제자가 또 물었다.

“도를 배움에 있어 어찌 사람들이 많은 도시나 읍내 또는 마을에서 하지 않고 산중에서 선수행만 합니까.”

홍인이 대답했다.

“훌륭한 재목은 본디 심산유곡에서 나온 것이지 세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쉽사리 칼이나 도끼에 찍히지 않다가 하나하나 좋은 재목으로 자란 뒤 비로소 귀한 마룻대나 대들보(棟樑)로 사용하게 된다. 산림유곡에 머물며 속진을 피해 산중에서 본성을 양육시키면서 속사를 끊어버려야 한다. 눈앞에서 일물도 없어졌을 때 마음은 저절로 안정되며, 이로부터 깨달음의 나무는 꽃을 피우고, 선림은 열매를 맺게 된다.”

홍인이 동산 즉 빙무산에 정진하던 7세기는 수나라에서 당나라로 바뀐 시대였다. 천축으로 떠났던 현장(玄奘)의 귀국을 분기점으로 하여 장안이나 낙양의 절에서는 새롭게 들어온 유식(唯識) 같은 불학이 크게 유행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러나 홍인은 결코 깊은 산중을 떠나지 않은 채 제자들에게 선농일여의 가르침을 폈다.

홍인의 가르침은 제자들이 편집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수심요론(守心要論)>에 잘 전해지고 있다. 내용이 거의 비슷한 <선문촬요(禪門撮要)> 속의 ‘최상승론(最上乘論)’이 바로 그것이다.

<수심요론>의 근본사상은 수심(守心), 즉 본래 마음을 지키는 것이다. 홍인은 “행주좌와 중에도 항상 본래 진심을 요연히 지키니(守本眞心) 망념이 일어나지 않고 마음이 멸한 바를 깨달으니 일체 만법은 스스로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수본진심은 도신의 수일불이(守一不移)를 계승하여 심화시킨 사상이라 할 수 있을 터이다.

또 홍인은 좌선수행법으로 간화선을 연상케 하는 질문을 먼저 던지면서 일자간(一字看)을 제시했다.

‘여기 혼자 사는 집이 있다. 그 속은 가득히 똥과 잡초로 차 있다. 도대체 이것은 무슨 물건인가. 똥과 잡초를 남김없이 다 치우고 깨끗하게 소제하여 한 물건도 없는데, 이것은 또 무슨 물건인가.’

‘그대들이 좌선할 때는 편편한 곳에 똑바로 단정히 앉아 심신을 편안하게 한 뒤 멀리 시야가 다하는 곳에서 한일(一)자를 보라. 반드시 진척이 있을 것이다. 만약 초보자라서 집착이 많기 때문에 곤란한 사람은 서슴없이 마음속으로 한일(一)자를 떠올려 보라.’

뿐만 아니라 홍인은 스승 도신의 가풍인 선수행과 노동을 일치시킨 선농일여 사상도 확고하게 정착시켰다.

“행주좌와(行住坐臥)가 모두 도량이고, 삼업(三業)이 모두 불사(佛事)다.”

쉽게 표현하자면 수행자의 모든 행동은 도 닦는 도량이고, 수행자의 모든 행위는 불법을 드러내는 불사라는 의미다. 그러니 홍인에게는 선과 일상은 둘이 아닌 하나의 수행이었던 것이다.

돌소가 안개 토하고 나무말이 연기 머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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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법동을 떠나면서 수본진심이란 홍인의 법문을 다시 한번 중얼거려 본다. 본래의 마음을 깨달아 지키는 것이 수행의 요체임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달마대사의 안심(安心), 승찬대사의 신심(信心), 도신대사의 간심(看心), 홍인대사의 수심(守心) 등등 조사들이 법문한 핵심어의 공통분모는 모두 마음 심(心)자이다.

한편, 홍인대사의 입적에 대한 기록은 선서(禪書)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중에서도 홍인대사를 5년 동안 입적 전후에 시봉한 현색이 쓴 <능가인법지>의 기록이 사실적이고 생생하다.

‘함형(咸亨) 5년(675) 2월, 스승께서는 나 현색 등에게 묘탑을 세우도록 명하셨다. 나는 문인들과 더불어 4각 자연석을 구해 와서 규모 있고 아름답게 지어 올렸다. 그달 14일에 스승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탑은 다 되었는가” 이에 나 현색은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했는데, 스승님은 “부처님 입멸 날짜와 같지 않느냐!”라고 말씀했다. (중략) 그달 16일 오전에 스승님은 남쪽을 향하여 선정에 드시더니 곧 입적하셨다.

세상나이 74세, 격식대로 여법하게 빙무산에 법체를 모셨다. 탑 속의 법체는 언제까지나 생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에 범양(范陽)의 노자산(盧子産)이 안주 수산사(壽山寺) 벽에 스승님의 초상화를 그리고, 전 병부상서였던 농서(隴西)의 이형수(李逈秀)가 찬양시를 지었다.’

<조당집>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고종(高宗) 24년 임신(壬申) 2월 16일에 입적하시니 춘추는 74세요, 대종(代宗)이 대만(大滿) 선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은 법우(法雨)라 하였다. 정수(淨修) 선사가 찬했다.’

오조께서는 7세 때부터

언어 이전의 소식을 깨쳤네.

돌소가 안개를 토하고

나무말이 연기를 머금는다.

몸과 마음 언제나 고요하고

이(理)와 사(事)가 모두 현묘하다.

정(情)도 없고 종(種)도 없으니

천 년 만 년이런가.

정찬주(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