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법동으로 가는 계단은 가파르지는 않지만 두어 번 숨을 고르고 올라야 한다. 마침 중간 지점에 비로탑(毘盧塔)이 있어 잠시 쉬기에 안성맞춤이다. 사조사 도량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으므로 전망대 같은 느낌도 든다. 11미터 높이의 비로탑은 벽돌로 쌓은 전탑(塼塔)으로 자못 장엄하다. 탑 내부로 들어서면 경건한 마음에 저절로 두 손이 모아진다. 도신대사상을 중심으로 오조 홍인, 우두종(牛頭宗) 초조 법융(法融), 신라승 법랑(法朗) 등 6명의 제자상이 조상되어 있기 때문이다.

5조 홍인과 당당하게 한 자리 차지한 신라승 법랑

도신의 빼어난 제자 중에 한 사람이었던 신라승 법랑. 도신의 선지(禪旨)를 이은 오조 홍인과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법랑. 스님의 자리가 새삼스러운 까닭은 도신의 5백여 제자 중에서 수법(受法) 제자로 인가받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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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여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선의 원류를 찾는 순례 중에 신라승 법랑과의 조우는 분명 경이로움 그 자체다. 도신의 수법 제자 법랑은 1천4백여 년이 지난 오늘도 비로탑에 봉안되어 중국 수행자들에게 구법의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 법랑을 친견하는 감동에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법랑의 생몰연대와 구법을 위한 입당(入唐) 시기와 귀국 연대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의 행적이 불분명한 것은 법랑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도신의 선법이 신라 땅에서 환영받지 못했거나 아직 전파되지 않았음을 짐작케 한다.

법랑은 도신이 입적한 후 귀국했을 것이다. 귀국하여 법랑이 처음 머문 곳은 호거산(湖踞山)이었다. 법랑의 제자 신행(信行)의 행장을 기록한 지리산 단속사 신행비(神行碑; 神行과 信行은 같은 인물)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선사는 속성이 김씨이고 동경 어리(御里) 사람으로서 급간 상근(常勤)의 아들이며, 선대 승려인 안홍(安弘) 형의 증손이었다. 선을 쌓고 마음을 닦았으며, 이전부터 느낀 바가 있어 나이 바야흐로 30쯤에 절로 향하였다.

신라 호거산에 머물며 신행에게 지혜의 등불 전해

운정율사(運精律師)를 받들어 섬기며 헌 바리때와 누더기 한 벌로 2년 간 고된 수련을 하였다. 다시 법랑선사가 호거산에 지혜의 등불을 전하고 있음을 듣고 그곳에 나아가 문득 깊은 뜻을 받았다. 법랑선사가 7일이 되기 전에 시험 삼아 이치의 옳고 그름을 물었더니 “미묘한 말씀은 그윽하게 통하는 것이니 마음에 즉해 있으면서도 마음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법랑선사가 “참 훌륭하구나. 마음 등불의 법이 모두 그대에게 달려 있구나.”라고 찬탄하였다.’

또한 신행비를 참고해 볼 때 법랑은 신행을 제자로 맞아들인 지 3년 만에 입적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역시 연대는 미상이다.

‘부지런히 3년 동안 참구하다가 법랑선사가 입적하자 통곡하기를 몸을 부수듯이 하였으나 연모함을 어찌 다할 수 있었으리요. 드디어 삶이란 바람 앞의 촛불과 같으며 죽음이란 물거품 같다는 것을 알았다.’

법랑이 입적하자 신행은 입당하여 지공(志空)선사 회상에서 3년 동안 정진한 후 인가를 받고 귀국하여 선법을 펴다가 76세로 단속사에서 입적했다. 따라서 신행의 선법은 도신- 법랑으로 이어지는 선법에서 출발하여 신수(神秀)-보적(普寂)-지공으로 이어지는 북종선(北宗禪)의 선법으로 돌아갔으므로 특이한 경우라 아니할 수 없다.

어쨌든 최치원이 쓴 도헌국사(道憲國師) 지선(智詵)의 비문에 쌍봉(雙峰; 도신의 별호)의 자(子)는 법랑, 손(孫)은 신행, 증손(曾孫)은 준범(遵範), 현손(玄孫)은 혜은(惠隱), 말손(末孫)은 신라 구산선문 중 하나인 희양산파를 개창한 지선으로 나와 있는 것을 보면 법랑과 신행이 뿌린 선의 씨앗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한국불교 선맥(禪脈)에 있어서 원류(遠流)가 되기 때문이다.

최치원 비문엔 '한국 선맥의 원류는 법랑에서 시작'

비로탑을 나와 다시 전법동을 향해 계단을 오른다. 전법동(傳法洞)이란 말 그대로 법을 전한 동굴을 뜻한다. 도신이 농선쌍수의 충실한 수행자이자 절의 일을 총감독해온 홍인에게 법을 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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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신이 홍인를 오조(五祖)로 지목한 것은 가르침을 편 지 20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20년 전 도신이 황매의 길에서 어린 아이 홍인을 만났던 것인데, 그때의 일을 <조당집>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도신은 길을 가다가 일곱 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동자를 붙들고 물었다.

“네 성이 무엇이냐.”

동자가 대답했다.

“성은 있으나 예사 성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성이더냐.”

“불성(佛性)입니다.”

“네게는 성이 없던가.”

“성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도신은 좌우에 있는 대중들에게 말했다.

“이 아이가 예사롭지 않구나. 내가 멸도한 지 이십 년 뒤에는 크게 불사를 이루리라.”

동자가 물었다.

“여러 성인들은 무엇으로 인하여 증득합니까.”

도신이 대답하였다.

“확연하고 확연하니라.”

“그러면 성인이 없겠습니다.”

“아직도 그런 티가 남아 있구나.”

도신은 시자에게 동자의 집으로 가서 동자가 출가하도록 그의 부모를 설득하라고 명했다. 동자의 부모는 의외로 쉽게 하락했다. 전생의 인연이 있어 그러하니 동자를 놓아주겠다고 했던 것이다.

황매길서 만난 비범한 소년 홍인 도신의 제자가 되다

이리하여 홍인은 도신의 제자가 되었다. 일곱 살의 동자가 도신이 묻는 말에 위와 같은 대답을 했을 정도라면 전생에 닦은 선근이 대단하지 않았을까 싶다. <역대법보기>는 홍인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천성이 말이 없는 데다 침착하여 대중들이 놀려도 입을 다문 채 대꾸하지 않았다. 항상 맡은 일에 전력을 다하고 예의를 지키며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했다. 낮에는 대중들과 울력을 함께하고 수행은 밤 시간을 이용하여 했다. 좌선한 채로 아침을 맞이하기가 일쑤였고 언제나 부지런하였다. 장성하여 키는 8척이었고 용모가 훤칠했다.’

낮의 울력과 밤의 수행은 농선쌍수를, 또한 좌선한 채 아침을 맞이했다는 것은 장좌불와를 말함이리라. 도신이 60년 동안 단 한 순간도 겨드랑이를 방바닥이나 벽에 대지 않은 장좌불와를 했다고 하니 그 제자인 홍인이나 법랑도 그러했으리라 짐작된다. 편리한 문명과 좋은 환경에만 기대려고 하는 오늘의 불제자들이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고 거듭 발심해야 할 두타행이 아닐 수 없다.

전법동에 오르니 도신의 사자후가 가슴을 친다.

“<보현관경(普賢觀經)을 보라! 악업들로 들끓는 대해는 그대의 날뛰는 망상에서 비롯된다. 만약 악업을 고백하려 한다면 자세를 경건하게 고쳐 앉아 마음에 실상을 염해야 한다. 이것이 최상의 고백이 아니겠느냐! 이러한 고백이라면 탐진치의 악심이나 대상에 달라붙는 마음이나 크고 작은 분별심을 말끔하게 털어버릴 수가 있음이니라. 또한 부처님을 끊임없이 생각할 때 그대들 마음은 당장 맑아지고 시비분별을 넘어설 수 있으리라. <대품경(大品經)을 보라! 시비분별이 사라져야만 부처님을 염한다고 할 수 있으리라.”</span>

전법동에서 도신이 홍인에게 준 것은 무엇일까

전법동에서 도신이 홍인에게 주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달마로부터 비롯한 의발을 전수하고 전법의 게송을 주었다고 <조당집> 같은 선서(禪書)는 전하고 있다.

꽃과 종자는 나는 성품이 있나니

땅에 의하여 꽃은 나고 또 난다.

큰 인연과 믿음이 어울릴 때 나지만

이 남은 남이 없는 것이니라.

이때가 고종(高宗) 영휘(永徽) 3년(651) 9월 4일 대사의 나이 72세의 일이었다. 입적한 지 4년이 되는 해 4월 8일에 탑문이 저절로 열렸는데, 법체는 생존의 모습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이에 문인들은 문을 다시는 닫지 않았고, 대력(大歷) 연간에 이르러 대종(代宗)은 대의선사(大醫禪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호를 자운(慈雲)이라 하였다.

정찬주(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