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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신의 법문에 발걸음을 망설이고 있는데, 일행은 먼저 대웅전으로 들어가 참배하는 모양이다. 나는 대웅전 밖에 합장만 하고 조사전(祖師殿)으로 들어가 도신대사상 앞에서 오체투지를 한다. 세 분 조사의 좌상(坐像) 중에 가운데 분이 도신대사이다.

어느 때 조상(造像)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도신을 추모하기에는 충분하다. 더욱이 대사를 모신 가마 형태의 닷집 상단에 쓰여진 자운혜우(慈雲慧雨)란 네 글자가 가슴을 친다.

慈雲慧雨

자비의 구름이 되어 지혜의 비를 뿌렸다는 대사의 덕화를 네 글자로 압축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조사전에 서 있는 동안 도신대사의 말씀이 허공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능가사자기> 도신편 기록으로 훗날 간화선 수행법으로 발전하게 되는 간심(看心) 법문이다.

자비 구름 되어 지혜 비 뿌리고

“<무량수경>에 이런 말이 있다. ‘모든 부처의 법신은 모든 중생의 마음 작용 속에 들어 있다. 바로 그 마음이 곧 부처이다. 마땅히 알아라. 부처가 곧 이 마음이라는 것을. 이 마음밖에 달리 부처는 없다.’

이를 요약해서 말하면 다섯 가지의 문(五種門)이 있다.

첫째, 마음의 본체를 알라. 마음의 본체는 청정하여 부처와 같다.

둘째, 마음의 작용을 알라. 마음의 작용은 법보(法寶)를 낳는데, 그 작용은 항상 적정(寂靜)하며 온갖 번뇌도 모두 그와 같다.

셋째, 마음은 항상 깨어 있기를 그만 두는 일이 없음을 알라. 깨어 있는 마음이 언제나 눈앞에 있고, 깨어 있는 법은 개별적인 모습이 없다.

넷째, 항상 신체가 공적(空寂)함을 관찰하라. 안팎으로 한결같아 몸이 법계에 들어가되 일찍이 장애가 없다.

다섯째, 하나를 지켜 흔들림이 없게 하라(守一不移). 움직임과 고요함을 통하여 항상 한 곳에 머무르므로 수행자로 하여금 분명하게 불성(佛性)에 눈뜨게 하고 신속하게 선정에 들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를 지켜 흔들림 없게하라

도신대사가 법문한 다섯 가지 중에서도 분명하게 불성에 눈뜨게 하고 신속하게 선정에 들도록 하는 다섯째 수일불이의 법문이 가장 먼저 내 가슴에 와 닿는다. 마음의 본체에 도달하는 간심(看心)의 방편으로서 너무나 쉽고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벽관(壁觀)이 달마의 선법이라면 간심은 도신의 선법이 아닐 수 없다. 대사가 설한 수일불이의 법문을 다시 들어보자.

“하나를 지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守一不移)은 훤하고 깨끗한 눈으로 정신을 가다듬어 한 물건을 들여다보고, 밤낮으로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여 언제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대 마음이 흐트러지려고 할 때는 지체 없이 다시 가다듬어서, 마치 새의 발을 묶어놓고 날아가려 하면 다시 제자리로 잡아당기듯이 온종일 지켜보기를 그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사라지고 저절로 마음이 안정될 것이다.”

산란한 마음을 날아가려고 날갯짓하는 새로 비유한 대사의 말씀이 흥미롭다. 그렇다면 새와 같은 마음을 붙들어 매는 기술을 섭심(攝心)이라고 할 터이다. 조사전을 나오니 무심코 보았던 종각 앞 측백나무가 아름답다. 원래 도신대사가 심었던 측백나무인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마치 대사가 수일불이 법문을 하고 있는 것도 같다. 측백나무 앞 노란색 금속판에 게송 한 수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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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측백나무를 도니

높지도 작지도 않네

처처의 인연을 따르니

걸림도 없고 장애도 없네.

天天轉柏

不高不矮

處處隨緣

無挂無礙

첫 행의 천천(天天)을 일일(日日)로, 넷째 행의 괘(挂)를 가(罣)로 바꾸어 번역하여 보니, 달마의 가르침 가운데 인연에 내맡기는 수행법인 수연행(隨緣行)을 떠오르게 한다. 행복이나 불행 등 자신이 처한 모든 결과는 자신이 뿌려놓은 과거 원인에 의한 것이므로 어느 때라도 그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고 말지 않겠는가. 그러니 잠시 나타난 현재의 인연 때문에 크게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것도 또 다른 집착이고 어리석은 일이리라.

인연 받아들일때 무애자재 삶 열려

그렇다. 인연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은 오직 침묵 속에서 진리와 하나 된 삶을 누릴 뿐이므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그의 삶에는 걸림과 장애가 없는 것이다. 해탈이나 무애자재란 바로 그런 상태를 말함이 아닐까.

산문을 나와 도신대사가 홍인에게 법을 전해준 전법동(傳法洞)으로 가는 산길을 오른다. 계단으로 닦은 산길인데 점점 위로 오르자, 사조사 주변의 논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신과 그의 제자들이 일군 농토였을 것이다.

도신은 장좌불와 등 두타행을 하되, 탁발하는 공양방식을 지양했던 최초의 대사이다. 그는 탁발하지 않는 대신 자급자족하기 위해 산자락을 개간하여 농토를 만들었다. 선수행을 하면서 농사를 짓는 농선쌍수(農禪雙修)를 시작했다. 그 결과 도신에 이르러 새로운 선풍(禪風)이 확립됐다. 관의 도움이나 백성들의 시주가 없더라도 대중살림이 가능해졌다. 노동하는 수행자들의 신체는 건강하게 단련됐고, 사조사 주변 황매에 사는 백성들의 세금도 줄어들었다.

이는 ‘선과 노동은 하나’라는 선농일여(禪農一如) 사상의 시발점이라 아니할 수 없다. 도신대사가 ‘좌선을 근본으로 하되 15년은 노동해야 한 사람의 먹을거리를 얻어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다’고 주창한 바, 훗날 백장선사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고 했던 청규보다 1백년이나 앞선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백장보다 백년 앞서 선농일여 실천

한편으로 도신대사는 약초와 의술을 연구했다. 산야를 돌아다니며 약초를 캐고 직접 맛을 본 후 그 효능과 용도를 기록했다. 이윽고 약초표본이 만들어지자 <초목집성(草木集成)>이란 약학서(藥學書)를 완성했다. 아쉽게도 <초목집성>은 오늘날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명나라 때 이시진(李時珍)이 구전돼 온 도신의 약초표본을 자신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참고했다고 하니 불행 중 다행이다.

차나무의 효능과 용도도 <초목집성>의 내용을 첨삭했을 터이다. <본초강목>에 나오는 차의 효용은 이렇다.

‘눈과 머리가 맑지 못한 것은 열이 위로 치올라간 때문인데, 쓴맛으로 열을 내려주면 눈과 머리가 맑아진다. 단차는 가볍고 잎을 딸 때에 처음 움튼 싹을 뜯으면 봄의 상승 기운을 얻어 맛은 쓰지만 그 기운은 순하다. 음의 기운 중에 양의 기운을 갖고 있어, 능히 올라가고 내려가서 눈과 머리를 맑게 한다.’

지금도 사조사 부근에 천 년 전부터 내려온 황매차(黃梅茶)가 있다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실제로 사조사에 구전되어 온 전설 중에는 차나무가 나오는 쌍봉산 산허리의 동굴인 자운동(紫雲洞) 혹은 다선동(茶仙洞) 얘기가 있다.

한 거사(許德壽)가 쌍봉사(사조사)에 부모님 재를 지내러 갔다가 길을 잃고 헤매던 중,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춧잎을 따라가다가 자운동에 도착하여 동굴 안에서 장기를 두는 두 노인을 만난다. 그런데 흰 생쥐 한 마리가 두 노인을 1백 바퀴 돌았을 때, 두 노인은 거사에게 해바라기 씨 한 보따리와 어린 묘목 두 개를 주고는 사라져버린다. 흰 생쥐가 동굴에서 두 노인을 한 바퀴 돌 때마다 인간 세상에는 1년의 시간이 지나가므로 거사에게는 1백년이 흘러버린 셈이었다. 놀란 거사가 동굴 밖으로 뛰어나오자 손에서 떨어진 묘목 한 그루는 금세 차나무로 변했다. 그 차나무는 차츰 번성하여 나보원(挪步園)의 자운차(紫雲茶)가 됐다.

묘목이 차나무로 변신한 까닭은?

거사는 동굴을 나서 산을 내려갔지만 쌍봉사도 집도 찾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거사는 갑자기 황금 조각으로 변한 해바라기 씨를 팔아 죽음사(竹陰寺)를 짓고, 절 안에 남은 묘목 한 그루를 심었다. 역시 차나무로 변한 묘목은 세월이 흘러 차 숲을 이루더니 여산의 운무차(雲霧茶)가 됐다는 향기로운 얘기다. 전설이지만 하나의 서사구조 속에 쌍봉사와 차나무가 동시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차와 절의 역사가 오랜 동안 함께 해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도신의 수행법인 농선쌍수를 얘기하다 차를 거론하고 말았지만, 아무튼 도신의 의술은 탁월했던 것 같다. 훗날 당 대종 이예가 도신대사에게 ‘대의선사(大醫禪師)’라는 시호를 내렸을 정도니까.

황제에게 대의(大醫)라고 인정받았던 도신대사.

도신이 사조사에 주석하고 있을 무렵 황매에 옴이 유행병으로 돌고 있었다고 한다. 옴에 걸리면 온몸이 심하게 가렵다가 상처 부위는 고름이 흘렀다. 민간 의원들이 불려 다녔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도신이 산문을 나서 병에 걸린 백성들을 치료하자 황매에는 옴이 자취를 감추었다.

얼마 후에 옴은 장안까지 돌았다. 당 태종 이세민도 옴에 걸렸다. 태의(太醫)도 치료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도신은 약방문을 황궁으로 보내 황제의 병을 낫게 한다. 이에 태종은 도신을 장안으로 불러들여 상을 내리려 했지만 도신은 칙사가 올 때마다 거절하곤 했다.

도신의 배포와 법력, 당태종을 감흡시키다

도신이 황제의 병을 고쳤다는 소문은 곧 전국으로 돌았고, 도신의 도력과 의술을 흠모한 수행자들과 백성들이 황매를 소천축(小天竺)이라고 부르며 모여들었다. 그러자 이세민은 민심이 황제인 자신에게로 향하지 않고 황매의 도신에게 몰리자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더구나 도신이 번번이 입궐을 거절하므로 네 번째에는 특별하게 임명한 흠차대신(欽差大臣)을 보내며 명했다.

“이번에도 거절한다면 도신의 목이라도 가져오라.”

그러나 도신은 흠차대신에게 황제의 명을 전해 받고도 대신의 칼 앞에 자신의 목을 내밀며 응하지 않았다. 결국 흠차대신은 빈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보고를 받은 황제는 그제야 권력에 굴하지 않는 도신의 법력에 크게 감동했다.

수행자에게 위의(威儀)가 있다면 바로 이런 태도가 아닐까. 달마가 불심천자 양무제에게 무공덕(無功德)이라고 일갈한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정찬주(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