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연재 > 김진호 순례기

“왜 이런 고행을 하십니까?”<br>스님의 답은 잔잔한 미소였다

김진호기자 | zeenokim@naver.com | 2013-10-24 (목) 10:42

삼연 김창흡이 짓고 살았다던 절 영시암이 깨끗하다. 절터만 남았던 곳을 새로 복원해 놓아 이렇듯 단아하고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시암 앞으로는 백운동계곡을 굽이굽이 쓰다듬고 내려온 계곡물이 오세암 관세음보살님의 자비를 담은 계곡물과 수렴동에서 만나 더욱 큰 물줄기를 이루어 영실천이라는 이름으로 여울져 흐르고 있다. 설악산의 청정옥수가 빚어낸 아름다운 계곡에서 시선을 조금만 들어 올리면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는 귀때기청봉이 다소곳하고 수줍음 가득한 새색시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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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폭포를 오르고 있는 약사사 봉정암 순례단. 맨앞을 총무 무비스님이 이끌고 있다.


이렇게 풍경이 아름다운 영시암에서 15분가량의 휴식을 취한 약사사 십보일배 순례단은 다시 순례행진을 이어간다. 이제부터는 약사사 총무 무비스님이 선두에 나서서 십보일배로 순례단을 이끈다. 스님은 앞으로 걷게 될 산행로는 점점 좁아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일반 신도들은 대열에 맞추지 않고 따로 앞서 가달라고 부탁한다. 다른 등산객들에게 민폐가 될 수 있는 상황이기에 미리 조처를 하는 것이다.

무비 스님은 여전히 십보일배로 그리고 주지 인산 스님을 비롯한 신도들은 십보반배로 무비 스님의 뒤를 따르고 있다. 영시암을 지나고 수렴동대피소에 이르니 길은 조금씩 험해진다. 길이 험해지는 것에 비례해 풍경은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펼쳐지고 있다. 붉게 물든 단풍이 계곡을 타고 온 바람결에 파르르 떨릴라치면 마치 핏물이 맑은 계곡물 위로 뚝뚝 떨어져 내리는 것 같다. 해발고도가 조금씩 높아질수록 단풍의 빛깔 또한 그 붉은빛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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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현 김창흡이 짓고 살기 시작했다느 영시암의 단아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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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단풍나무 아래로 흐르는 수렴동 계곡의 비치색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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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렴동 계곡을 지나고 있는 순례단. 오후 2시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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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렴동 대피소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단풍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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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순례단의 모습.


맑디맑은 계곡물이 몇 겁의 세월을 흘러서 이렇게 아름다운 계곡을 만들어낸 것일까? 깊게 파인 계곡은 비단결만큼이나 보드라운 모습으로 속살을 내보이고 있다. 이 계곡에 놓인 바위들은 모나있는 것이 하나 없다. 모두 둥글둥글 유하고 너그러운 모습이다. 험하고도 험하다 하여 악(嶽) 자가 붙은 설악의 속살은 의외로 부드러운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십보일배 순례단이 걸어들어 가고 있다.

이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계곡이 구곡담계곡이다. 구곡담이라는 이름은 이 계곡에 모두 아홉 개의 못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봉정암이 있는 계곡이라하여 봉정곡 또는 봉정골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이 계곡에 이르면 사람도 하나의 풍경이 되고 자연이 된다. 이 아름다운 계곡에 아름다운 사람들이 지금 절을 하며 걸어 오르고 있는 것이다. 순례단은 수렴동대피소를 오후 세 시에 돌파하고 구곡담계곡을 따라 30분 째 걸어 오르다가 잠시 휴식을 취한다.

목만 축일 정도의 짧은 휴식. 무비스님은 다시 십보일배를 이어 간다. 계곡 산행로는 이제 조금씩 가파름을 더해가고 있다. 따라서 계곡의 풍경도 바뀌고 있다. 작은 폭포가 나타나는가 하면 그 아래 시리도록 푸르고 투명한 소(沼)도 나타난다. 그 푸르고 투명한 물을 한 움큼 담아서 마셨다. 달다. 감로수가 이 아니고 무엇이랴! 깊고 깊은 설악의 계곡물은 시원하고 단맛이 난다. 이 맑고 푸른 소 안으로 가을이 자맥질을 한다. 빨간 단풍나무도 노란 소사나무도 앞 다퉈 첨벙첨벙 뛰어 들고 있다. 아름다운 반영(反影)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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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이 물들고 있는 여인을 닮은 구곡담계곡의 아름다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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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곡담 계곡의 아름다운 광경들. 이처럼 아름다운 계곡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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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곡담계곡부터는 청정한 계곡물이 소를 이룬 곳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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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구곡단계곡을 십보일배로 지나고 있는 순례단의 모습. 계곡보다 더 아름답다.


계곡의 가파른 산행로를 따라 걸어 오르는 길. 발치에서 끊임없이 다람쥐들이 뛰어 다닌다. 마치 길잡이라도 해주려는 듯이 앞서기도 하고 뒤 좇기도 하며 재롱을 부린다. 그러고 보니 설악산의 다람쥐들은 유독 사람을 잘 따른다. 아무래도 산행객이 던져주는 과자나 빵 조각에 재미가 들린 모양이다. 과자 한 조각을 손에 들고 팔을 뻗으면 냉큼 달려와서 물고가 오물오물 갉아 먹는다. 볼록해 지는 볼을 보고 있자면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제법 살집이 붙은 설악산 다람쥐들. 이제 곧 긴 겨울잠에 들것이다.

순례단 행렬이 용소폭포에 이른 시간은 오후 4시 10분. 시원하고 아름다운 폭포의 풍경과 함께 잠시 휴식을 취한다. 아직까지 웃음기를 잃지 않는 무비스님이다. 십보일배를 벌써 네 시간째 이어오고 있는데도 지친 기색이 보이질 않는다. 걱정이 되어 물었다. “스님 좀 괜찮으셔요?” “허벅지가 조금 뻐근해져 오긴 하지만 아직은 할 만합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스님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미소도 함께 지어 보인다.

용소폭포를 지나면서부터는 가파름이 더욱 심해지기 시작을 한다. 머리를 들어 올리면 용아장성의 능선과 서북능선이 그림처럼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관음폭포에 이를 즈음 다른 한 무리의 순례단이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서울 도봉산의 천축사 스님과 신도 백여 명이 봉정암 순례를 찾은 것이다. 천축사 신도들이 십보일배를 하며 오르고 있는 무비 스님을 보자 혀를 내두른다. 네 시간 반 동안 8km가 넘는 거리를 십보일배로 오르고 있다는 이야기에 크게 놀라는 모습들이다. 그리고는 천축사 신도들 중에 일부 신도는 스님의 뒤를 말없이 따르기 시작한다.

어느덧 스님의 표정에도 많이 힘든 기색이 역력해지고 있다. 쌍용폭포에 이르러서는 허벅지에 파스를 붙이고 승복 위로 물파스까지 바르신다. 승천하는 용 두 마리의 모습을 닮았다하여 쌍룡폭포라는 이름이 붙여진 두 갈래의 폭포가, 이런 스님의 모습과 오버랩 되어 왠지 처연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시간은 이제 오후 다섯 시. 해가 지고 있는 계곡은 서서히 어스름이 찾아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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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보다 더 붉은 단풍. 설악에서만 만날 수 있는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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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란 단풍나무 사일 모습을 드러낸 순례단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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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십보일배를 이끌어가고 있는 무비스님. 십보일배 4시간이 훌쩍 넘어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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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잘 따르는 다람쥐들. 손만 뻗으면 달려올 정도로 사람들과 친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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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폭포 위에 매달려 더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붉은 단풍.


쌍용폭포를 지나고 다시 작은 폭포와 소를 몇 개 더 지난다. 이제 시간은 오후 5시 40분. 어둠이 더욱 빠르게 달려들고 있다. 이제 마지막 최고의 난코스인 봉정암으로 들어서는 암벽구간을 앞두고 있다. 더욱 힘든 기색을 보이고 있는 무비 스님은 이 지점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신다. 이 지점의 경사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가파르다. 걸어서 오른다기보다는 네발로 기어서 오른다는 표현이 맞을 만한 경사도이다. 봉정암의 부처님을 뵙는 일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은 범. 이곳에서는 따로 삼보일배 아니 십보일배를 하지 않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이 절로 절을 올리는 걸음이 된다. 아마도 이 정도의 수행은 있어야 봉정암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도록 이 높고 가파른 곳에 봉정암을 지은 모양이다.

봉정암으로 들어서는 가파른 길목은 이제 어둠이 제법 짙게 드리우고 있다. 아름다운 용아장성의 능선 너머로 옅은 붉은빛이 스치듯이 남아 있다. 그 힘든 깔딱 고개를 넘으니 시민박명(市民薄明)도 끝이 나고 이내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불빛들. 봉정암에 켜진 등빛이 반짝이고 있다. 봉정암 경내로 들어선다. 그리고 잠시 후 수많은 신도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무비스님이 여전히 십보일배로 경내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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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암으로 오르는 구곡담계곡에서는 이런 멋진 폭포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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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난이도의 코스를 오르면서 바라본 용아장성의 모습. 어듬이 차츰 드리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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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단이 봉정암 경내로 들어서자 불자들의 박수가 쏟아진다. 존경과 감탄, 놀라움의 박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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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암 부처님 앞에서 무비스님이 무사히 십보일배 순례를 마쳤음을 보고드리듯이 정성을 다해 반야심경을 염송하고 있다.


천축사 거사 한 분이 큰소리로 박수를 유도한다. “저 스님 백담사에서부터 여기 봉정암까지 십보일배로 올라 오셨데요. 우리 박수 좀 쳐드립시다.”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공양간에서 저녁 공양을 하는 불자와 일반 산행객들도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친다. 진한 감동이 밀려온다. 그 감동은 가슴속에서 공명을 일으키고 다시 거대한 울림이 되어 온몸에 전율로 퍼져 흐른다. 너무 크고 깊은 감동을 받으면 소름이 돋는데 지금 이 감동이 그런 소름이 되어 있는 것이다. 어느 노보살은 땀범벅이 된 스님의 모습을 보며 눈물까지 훔치고 있다. 10.6km의 십보일배 대장정. 하지만 스님을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법당까지 다시 십보일배로 그리고 부처님진신사리탑까지 오르는 돌계단에서도 십보일배는 계속된다. 신도들이 준비한 공양물을 사리탑에 올리고 나서 삼배를 올린 후 반야심경을 염송하기 시작을 한다. 무릎을 꿇고 단정하게 두 손을 모아 반야심경 염송을 마치고도 한참을 기도를 올리는 무비스님. 스님은 과연 무엇을 그리 간절히 기원하였던 것일까? 무엇이 그리 간절해서 그 길고 험한 길을 십보일배로 오른 것일까?

12시에 출발해서 6시간 반 동안 십보일배로 걸어 오른 봉정암. 한 걸음을 50cm 정도로 치면 열 걸음이면 5m. 총 거리가 10km이니 족히 2천 번에 가까운 절을 올리며 걸어 오른 셈이다. 누구나 할 수 있다면 감동이 아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고행과 같은 걸음이었기에 대감동이 되는 것이다.

“스님. 무엇을 위해 그리 간절한 걸음을 걸으시고 그리 간절한 절을 올리시고 또 그리 간절한 기도를 하셨습니까?” 땀이 흥건하게 흘러내리고 범벅이 된 스님은 대답 대신 잔잔한 미소로 답을 할 뿐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봉정암 십보일배 순례가 올해만 하는 기도행사가 아니라 해 마다 이어온 순례행사였다는 점이다. 물론 내년에도 봉정암 십보일배 순례는 계속 이어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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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세라젬영등포지점 2013-10-24 11:21:11
답변 삭제  
설악산 봉정암 10보1배 순례에 참가하신 대한불교 조계종 개화산 약사사 주지인산스님,총무 무비스님,부산 불광사 주지보광스님을 비롯하여 신도님들께 깊은 감명과 함께 영원히 마음속에 두고두고갈 드라마를 제작하셨습니다.항상 건강하시고 행복과 행운이 함께 하시길....
김진호 기자님 정말 수고 많이 하셨고요 좋은 글과 사진 너무나도 감명깊게 잘 읽었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사진 기대할께요 일도 합장
김조야 2013-10-24 14:49:57
답변  
내 팔을 뻗어 닿을수 있는 만큼의 등붙일곳 있는 조그만 암자 하나 가지는게 마지막 바램
이라고 평소 입버릇처럼 말하던 스님...
그분은 그냥 편안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삼촌같은 오빠같은 아들같은 친근함으로
많은 보살님들께 생활속 불교실천을 강조해 오셨습니다.

봄이 오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오색으로 물드는 가을이 오듯이
기다리지 않아도 그렇게 왔다가 말없이 가듯이
그분은 그런 평범한 분으로 저희 불자들 곁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더이상 그분은 그런 평범한 분이
그렇게 어디에서나 만날수 있는 그런 스승이 아님을 압니다

읽어 내려가는 내내 눈물밖에 흐르지 않는 이 벅찬 감동을 어떻게 말로
어떻게 얄팍한 몇자의 글로써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갈수록 힘들어져만 가는 현실에서 숨이차듯 지친 현대인들은 어디라도 쉴곳을 찾아 헤매일때
편안한 휴식 같은 곳이라고 찾아가노라면 각박해진 사회와 너무 가까이 와있는 종교를 만나게 되면서 또한번의 실망을 하며 돌아서 나올때
이런 보기드문 스승한분을 만난다면 우리의 삶은 그나마 안도의 숨을 내리쉬며
다음을 기약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들 가까이에 이런 스승이 계시다는 것
어쩌면 가까이 만나뵈며 그분의 살아있는 미소를 보고

진솔한 한마디를 들을수 있다는 것은
이시대의 생각지 못한 부처님 가피라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설악의 단풍이 핏빛으로 물들고 목석같은 사람도 사랑을 할것 같은 아름다운 가을설악에서
그보다 더 아름다웠을 무비스님과 순례단 도반님들께 다시한번 감동과 감사의 합장올리며
그분의 간절한 기도처럼
이세상 어느곳 많은 분들중 단 한분이라도
이번 순례기도를 통해 부처님법과 인연되어지고
단 한분이라도 진정한 기도의 의미를 깨달아 갈수 있길 기원합니다
또한 아주 미흡하나마 이자리를 빌어
이한몸 다하여
진정한 부처님의 불제자로 살아 갈것임을 발원해봅니다.
© 미디어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