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연재 > 김진호 순례기

봉황이 춤추다 내려앉은 길지에<br>법조선사 절 지으니 ‘무봉사’라네

김진호기자 | zeenokim@naver.com | 2014-08-13 (수) 10:09

영남루와 천진궁을 돌아보고 무봉사로 가는 길에 잠시 휴식을 취한다.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 마련된 쉼터에 앉아 골목길 작은 구멍가게에서 사온 탄산음료 한 캔을 단숨에 들이킨다. 더워도 정말 너무 더운 날이다. 그래도 나무그늘에 앉아 있자니 조금은 살 것 같다. 이따금씩 불어주는 강바람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잠깐의 휴식으로 기운을 얻고 무봉사로 발길을 옮긴다. 무봉사로 들어서는 길목은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강바람이 불 때 마다 우측의 대숲에서 들리는 댓잎 끼리 마찰하는 소리는 시원함이 가득 느껴진다. 소리도 이렇게 시원할 수 있다니. 솨아아 솨아아. 마치 몽돌로 가득한 해변에 파도가 달려왔다가 포말이 되어 사그라질 때 들리는 소리와 닮았다. 시원한 대숲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며 무봉사 일주문 앞에 도착한다. 영남루에서 무봉사까지의 거리는 불과 5~60m의 거리. 이런 대숲의 길이라면 좀 더 길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기분 좋은 길이다. 일주문부터 돌계단이 시작되지만 그다지 높지 않아 부담이 없다.

크게보기

영남루 후문에서 무봉사로 들어서는 길목. 대밭의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사진=김진호 기자


크게보기

일주문을 지나 무봉사 경내로 오르는 돌계단. 무량문을 지나면 경내다.


크게보기

가파른 경사에 터를 일궈 조금은 협소한 무봉사. 전각이 일자로 배치됐다.


크게보기

넓지 않은 대웅전 법당이지만 신험함이 가득 느껴진다.


돌계단을 거의 오르자 무량문이 나타나고 무량문 안으로 들어서니 작은 산사 무봉사의 경내에 이르게 된다
. 가파른 경사면에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세운 무봉사는 밀양강이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조망이 그만이다. 무봉사 대웅전 앞에서 내려다보는 밀양강의 풍경도 좋지만 대웅전 우측 뒷문 위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이 훨씬 더 아름답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통도사의 말사 아동산 무봉사(衙東山 舞鳳寺). 영남루와 이곳 무봉사가 있는 해발 87m의 야트막한 산이 아동산이다. 아동산은 원래 무봉산이란 이름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 밀양읍성 관아의 동쪽에 있다하여 아동산이라는 이름으로 고쳐 붙였다고 한다. 무봉사는 원래 무봉암으로 영남사 시절 부속암자로 지어졌다. 이곳 아동산은 봉황이 춤을 추다가 내려와 앉은 형상을 하고 있는 길지 중에 길지이다. 영남사에 주석하던 법조선사께서 어느 하루, 절 옆 밀양강 기슭에 봉황이 춤을 추다가 내려앉는 모습을 보고 그 환희로 무봉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리고 봉황이 내려앉은 이 자리에 암자를 지으며 무봉암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때가 신라 혜공왕 9년이다.

크게보기

보물 제
493호 지정된 무봉사 석조여래좌상. 빼어나게 아름다운 부처님이시다.


크게보기

대웅전 기단 아래 물화분에 피어난 곱디고운 분홍빛 수련꽃
.


크게보기

무봉사 후문과 함께 바라본 밀양강의 풍경. 이곳에서 보는 조망이 제일 좋다.


크게보기

무봉사 후문으로 내려오면 석축이 있는 짧지만 즐거운 오솔길이 나타난다
.

무봉암이 무봉사로 승격이 된 때는 고려 공민왕 8. 화마로 인해 영남사가 전소되고 규모가 꽤나 컸던 영남사를 당장 복원하기 힘이 들자 영남사 터에서 수습한 석조석가여래좌상을 무봉암으로 옮겨 봉안하고 무봉사로 승격하게 된 것이다. 훗날 임진왜란 중에 소실이 됐으나 선조와 인조에 법당과 칠성각, 수월루를 짓고 고종 때에 이르러 중창을 하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라고 한다.

잠시 밀양강의 조망을 감상한 후 대웅전 안으로 들어선다. 크지 않은 법당이지만 신험한 느낌만은 어느 큰 절집 못지않은 중후한 느낌이 가득하다. 법단 위 돌부처님께 정성스레 참배를 올린다. 바로 이 불상이 보물 제493호로 지정된 무봉사 석조여래좌상이다. 바로 영남사 터에서 수습하여 이안한 석가여래인 것이다. 불꽃을 형상화한 광배에는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져 있고 스치듯 한 미소가 번지는 단아한 얼굴은 잠시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속이 평온함으로 가득해 지는 느낌이다. 이런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 법당이었으니 들어 설 때부터 신험한 기운이 가득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이렇게 아름다운 부처님을 뵙고 있자면 무량한 감동과 환희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대웅전을 나와 계단 앞에 앉으니 화분에 수련이 곱게도 피어있다. 낮추니 보이는 아름다움이다. 태극나비의 전설도 전해 내려오는 무봉사이다. 태극나비 떼가 무봉산에 날아들면 그때 마다 나라에 큰 경사가 있었다고 한다. 통일신라가 망하고 후삼국으로 분열돼 온 나라가 어지러울 때 왕건이 고려를 세워 태평성대를 맞을 때도, 일제강점기로부터 벗어나는 1945815일에는 이 태극나비가 무봉산을 덮고 무봉사 법당 안까지 날아들어 광복의 큰 기쁨을 전조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크게보기

사명대사동상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길
. 이 계단을 오르고 나면 연리목이 있다.


크게보기

두 그루의 나무가 뿌리와 가지를 얽고 있는 사랑나무 연리목
.


크게보기

영남루 뒤 언덕 위에 세워진 사명대사동상
. 밀양은 사명당의 탄생지이다.


크게보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곡가 박시춘의 생가
. 박시춘은 우리 가요 발전에 공이 크다.


워낙 가파른 산비탈에 지어진 무봉사이다 보니 경내는 협소하다. 석탑과 대웅전 그리고 요사채와 범종각까지 일렬로 늘어섰다. 무봉사 종각까지 돌아보고 후문 돌계단으로 내려간다. 다시 바라보는 밀양강의 풍경이 그림 같다. 석축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다시 영남루 후문 앞에 도착을 한다. 이번에는 다시 긴 돌계단을 올라 사명대사 동상으로 향한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고 나니 쉼터 하나가 나타난다. 쉼터 안으로 들어서자니 그저 단순한 쉼터만이 아니다. 뿌리와 가지가 뒤엉킨 연리목이 있는 자리다. 이런 신기한 모습을 보는 즐거움으로라도 사명대상동상까지 찾아 볼만하다.

계단을 마저 돌아 오르니 사명대사동상이 우뚝 서 있다. 임진왜란 당시 승려로서 국난을 극복한 사명당의 큰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동상이다. 아무래도 사명당의 탄생지가 밀양시이다 보니 이렇게 명승지인 영남루 위에 동상을 세운 듯싶다. 사명대사동상에서 내려오면 그 바로 옆에 복원해 놓은 초가집 한 채를 만나게 된다. 이 초가집이 바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곡가 박시춘의 생가이다. 작곡가 박시춘의 생가를 돌아보고 나오자니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사람은 가고 없어도 그 이름은 집과 함께 남아 있네.’ 영남루, 무봉사와 사명대사동상, 그리고 박시춘의 생가를 마지막으로 돌아보고 아동산 언덕을 걸어 내려갈 때 절로 흘러나오던 콧노래. 애수의 소야곡이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만은,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 누가 불러주나 휘파람 소리~”

크게보기

작곡가 박시춘의 흉상. 안타깝게도 일제의 목적가요는 오점으로 남는다.


크게보기

박시춘의 노래비는 애수의 소야곡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크게보기

밀양교를 건너며 바라본 밀양강 풍경. 밀양강은 예천 회룡포와 비슷한 지형이다.


크게보기

밀양강 위로 아름답게 드러난 밀양루가 있는 아동산(衙東山)의 풍경.



기사에 만족하셨습니까?
자발적 유료 독자에 동참해 주십시오.


이전   다음
Comments
© 미디어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