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연재 > 김진호 순례기

아름다움에 취해 박노수미술관을 나서며<br>겸재·박노수가 사랑한 인왕에 함께 취했네

김진호기자 | zeenokim@naver.com | 2014-04-04 (금) 18:18

요즘 서울에서는 세종마을이 뜨고 있다. 세종마을은 경복궁 서쪽에 있는 마을의 별칭으로 인왕산의 동쪽과 경복궁의 서쪽 사이를 말한다. 그러니까 청운동, 효자동, 통인동, 옥인동, 사직동 일대가 세종마을이 되는 것이다. 세종마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촌마을로 불렸다.

바로 창덕궁과 경복궁 사이에 있는 북촌마을의 서쪽에 있다하여 그리 불리다가 조선시대의 서촌은 지금의 덕수궁 일대로 확인되면서 세종대왕이 태어 난 곳을 기리는 의미로 세종마을로 이름을 바꾸었다.


크게보기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 장동팔경첩 중에 '수성동계곡'. 장동(壯洞)은 현재 종로구 통의동, 효자동, 청운동 등을 일컫는 옛 지명이다.

크게보기

겸재 정선의 그림 장동팔경도 중에 수성동계곡의 배경이 된 기린교가 있는 풍경.

세종마을에 가려면 경복궁역에서 나와 종로마을버스 09번을 타고 종점에 내리면 된다. 이곳엔 낡고 오래된 옥인시범아파트가 흉물스럽게 들어 서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옥인시범아파트가 철거된 자리에 아름다운 공원이 꾸며져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 공원의 이름은 수성동계곡이다. 자연의 생태로 복원된 수성동계곡으로 들어서면 산기슭은 이내 아름다운 계곡으로 거듭나 시원한 계곡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그뿐이랴. 시선을 들어 올리면 인왕산의 암봉이 장엄하게 달려든다.

수성동계곡은 2011년 7월, 자연복원을 마치고 일반인에게 개방됐다. 소나무 1만 8천 5백 그루, 산사나무와 화살나무, 자귀나무, 개쉬땅나무를 식재해 숲을 복원했고 계곡은 암반을 최대한 드러내어 아름답게 살려 놓았다.

크게보기

두 개의 커다란 통돌로 만든 기린교의 모습. 옛날 도성 내에서는 통돌로 만든 가장 긴 다리였으며 정선의 그림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크게보기

암반을 따라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수성동계곡의 풍경. 그 위로 인왕산 암봉이 아름답게 드러나고 있다.

이 수성동계곡에는 안평대군의 집 ‘비해당’이 자리해 있었다. 우기에 큰 비가 지나가고 나면 물소리가 크고 맑아서 수성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예로부터 명승지로 잘 알려져 수성동계곡은 많은 시인묵객이 찾았는데 추사 김정희를 비롯해서 진경산수화로 유명한 겸재 정선은 이곳에서 장동팔경첩 중에 수성동계곡을 그렸다.

계곡 입구에는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 중에 수성동계곡도와, 설명이 붙여진 안내판이 서있다. 긴 돌다리를 건너 선비 셋과 동자 하나가 수성동계곡을 오르는 그림이다. 화강암 바위가 장엄하고 그 사이 마다 소나무가 멋들어지게 표현되어 있다. 겸재의 그림의 배경이 된 수성동계곡은 겸재가 화폭에 옮길 만큼 아름다웠다. 가히 인왕산을 대표할 만한 계곡이라고 할 수 있다.

크게보기

고 박노수 화백이 사회 환원으로 값진 유훈을 남기고 간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 양식과 한식이 조화를 이룬 멋진 건물이다.

크게보기

포치가 있는 현관에는 대단한 서체의 현액이 걸려 있다. '여의륜'이라고 쓰여 있는데 추사 김정희 선생의 작품이라고 한다.

수성동계곡 입구에서 조금만 걸어 내려가면, 종로구에서 세운 ‘박노수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박노수미술관 대문 오른편에는 ‘서울시문화재자료 제1호’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조선 후기 문신 윤덕영이 그의 딸을 위해 세운 집인데 윤덕영은 친일파의 한 사람이다. 1938년대에 지은 이 집은 2층 벽돌집이며 1층은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되어 있고 2층은 마루방 구조로 되어 있다. 한옥과 양옥의 건축기법 외에 중국식 수법이 섞여 있고 안쪽에 벽난로를 3개나 설치하는 등 호사스럽게 꾸며 놓았다.”

이 박노수미술관 건물은, 건축학계에서는 1930년 후반 경의 저택 설계양식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고 한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니 옛날 집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다. 진감색 마루가 반짝이는 복도가 시간의 두께를 말해 준다. 아무래도 옛날식 가옥을 그대로 살려 미술관으로 개관을 해서 인지 정겨운 느낌이 가득하다.

작은 방은 시청각 자료실로 그리고 큰 방들은 모두 전람실로 꾸며져 있다. 벽면에 걸린 고 박노수 화백의 그림들이 마치 청명한 가을 하늘과 같은 느낌으로 시선을 사로잡더니 그대로 가슴 속으로 들어온다. 고 박노수 화백은 청전 이상범의 제자로 한국화 화단에 새 지평을 연 대가이다. 수묵화에 현대적 기법을 적용, 개성 강한 뚜렷한 화풍으로 일가를 이루었다. 화사하지만 절제된 채색과 깊이가 느껴지는 농담의 그림들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가옥의 뜰로 나와 정원을 돌아본다.

크게보기

박노수미술관의 내부 모습. 반짝반짝 빛나는 진감색 마루와 복도 마다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2011년 말까지 화백이 살던 집이기도 하다.

크게보기

첫 번째 전시실에 걸려있던 고 박노수 화백의 대표적인 작품인 '류하'이다.

정말 아기자기하면서도 아름다움 가득한 정원은 또 하나의 대형 작품에 다름 아니다. 각종 석물에 수석들. 화가의 시선은 돌 하나 풀 한 포기에도 머물면서 아름다움을 찾아냈던 모양이다. 얼마나 정성을 가득 쏟아 부었는지 단박에 그 느낌들이 전해져 온다.

고 박노수 화백은 이곳 가옥에서 1973년부터 2011년 말까지 화초와 나무를 키우며 가꿨고, 2011년 와병 중에 사회 환원의 뜻을 내어 종로구와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 설립을 위한 기증협약을 맺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미술관 설립 준비 중이던 2013년 2월 개관을 몇 개월 앞두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크게보기

박노수미술관의 정원 야외전시장.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잘 꾸며 놓은 이곳은 어떻게 보면 하나의 커다란 작품 같은 느낌이 든다.

크게보기

고 박노수 화백이 생전에 직접 도안한 테이블 쉼터. 이 역시 아주 멋진 하나의 작품이다.

고 박노수 화백의 아름다운 사회 환원이 있었기에 종로구 옥인동에는 이처럼 멋진 박노수미술관이 2013년 9월에 개관하게 되었고, 많은 시민들이 그의 아름다운 그림과 정원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와 볼거리가 많은 박노수미술관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미술관 현관 입구의 현액을 다시 올려다본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쓰셨다는 현액 ‘여의륜(如意輪)’이다. 천수경에 있는 관세음보살의 명호로 불자들에게는 익숙한 여의륜은 육관음보살 중에 한 관음보살로 여의보주의 삼매에 들어 있으면서 뜻대로 설법하여 모든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며, 소원을 이루어 주는 관음을 말한다. 아마도 추사 김정희 선생은 ‘이 집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만사가 뜻대로 잘 된다’라는 의미를 담기 위해 여의륜이라는 현액을 남기지 않았나 싶다.

감동과 아름다움에 취해 박노수미술관 대문을 나서는 길, 문득 겸재 정선이나 박노수 화백도 인왕산을 몹시 사랑해서 이렇게 그 자락에 머물며 자신의 삶을 가꾸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휙~ 기자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기사에 만족하셨습니까?
자발적 유료 독자에 동참해 주십시오.


이전   다음
Comments
홍반장 2014-04-05 11:14:40
답변 삭제  
박노수미술관에 대단한 현판이 걸려있군요.
조만간 찾아가야겠네요.
© 미디어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