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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비화 서린 비보사찰 호압사 덕에<br>조선왕조의 첫 궁궐 경복궁 무사히 짓다

김진호기자 | zeenokim@naver.com | 2012-03-16 (금) 00:12

호압사는 서울 금천구 시흥동 호암산(금주산)의 서쪽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1391년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는 무학대사에게 어명을 내려 이곳 호압사를 창건하게 되는데 호압사의 창건에 관한 이야기는 금천향토문화지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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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산 호압사의 일주문. 일주문 편액의 글씨에 사찰명 대신 호암산문이라고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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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산 호압사의 경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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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압사의 주전은 대웅전 대신 약사전이다.

태조대왕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건국하고 궁궐(경복궁)을 지을 때였는데 작업이 순조롭지 않았고 짓던 궁궐이 여러 차례 무너져 내렸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어둠 속에서 반은 호랑이이고 반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괴물이 나타나 눈에 불을 뿜으며 건물을 들이 받으며 부수려고 하자 태조는 명령을 내려 군사들로 하여금 호랑이 모습을 하고 있는 괴물에게 엄청난 화살을 쏘아댔으나 괴물은 아랑곳없이 궁궐을 부수고 유유히 사라졌다.

태조가 침통한 마음으로 침실에 들었을 때 어디선가 "한양은 더없이 좋은 도읍지로다"라는 노인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태조는 누구냐고 묻자 '그것을 아실 것 없이 장군께서 심려하는 것을 덜어드릴까 하여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노인은 저 멀리 보이는 한강 남쪽의 산봉우리를 가리켰다.

달빛 속에서 노인이 가리키는 곳을 보던 태조는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다. 호랑이 모습을 하고 있는 호암산이었다.

태조가 호암산의 기운을 누를 수 있는 방도를 노인에게 묻자 노인은 “호랑이는 꼬리를 밟히면 꼼짝 못하는 짐승이니 산봉우리의 꼬리 부분에 절을 지으면 만사가 순조로울 것 입니다”라는 말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이에 태조는 어명을 내려 호압사를 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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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전의 편액. 서봉 김일동 선생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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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전 불단에 모셔진 약사여래삼존불. 약사여래 좌우로 월광보살과 일광보살이 보처로 모셔져 있다.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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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압사 8각9층탑. 근래에 조성된 것이다.

이런 연유로 창건된 호압사가 완공이 되자 태조의 아들 태종은 친필로 편액까지 하사하게 된다. 태종의 편액은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지금은 금천구이나 옛날에는 시흥군의 현감이던 윤자의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 이야기는 풍수지리설의 간용법(看龍法 산의 맥을 살피는 것으로 산맥의 기복을 용에 비유하여 맥의 흐름을 살피는 방법)에 의해 금천 동쪽에 있는 산의 형체가 호랑이가 걸어 다니는 것과 같고 그 중에 험하고 위태로운 바위가 있으므로 범바위라고 불렀는데 이 바위 북쪽에 절을 세워 호갑이라고 하였다고 신동국여지승람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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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압사의 보호수와 설선당. 보호수의 수령이 500살이 넘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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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주변에 재가불자들이 가져다 놓은 불상과 승상의 모습을 한 모형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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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내려다본 호압사 전경.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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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산 정상의 기괴한 바위들의 모습.

호암산의 형상을 호랑이로 보고 호랑이가 달려가는 형세를 제압하고자 호압사를 세우고 또한 땅의 기운이 쇠락한 곳에 사찰을 세워 재난은 방지하고 안락을 기원하는 비보사찰(풍수지리설에 입각하여 세운 절)인 셈이다.

호압사는 금천구 지역에서는 유일한 전통사찰이었으나 관리가 소홀해 퇴락한 것을 1994년 원욱 스님이 불사를 일으켜 약사전을 건립하고 삼성각, 요사채, 지장전과 보제루 등을 지어 지금의 대가람을 조성하였다.

이곳 호압사는 특이하게 주 법당이 약사전이고 이곳의 주불은 약사불로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약사전은 약사여래를 주불로 모신 법당으로 중생들의 병으로 인한 고통으로부터 구도해주는 불보살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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