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빗방울이 추적추적 내리더니 포도 위를 흥건히 적셔 놓았다. 연두색 싱그러움이 가득했던 숲들은 어느새 신록 우거진 숲으로 변해가고 물기 머금은 공기는 조금만 움직여도 여름날 못지않게 후덥지근하다. 늦봄치고는 습도 높고 흐린 날이다.

기분도 전환할 겸 일찌감치 화성8경으로 이름난 용주사와 융건릉을 찾을 채비를 서두른다.

융건릉은 화성시가 자랑하는 화성8경 중 제1경인 ‘융건백설’로 용주사는 제2경인 ‘용주범종’으로 너무나도 잘 알려진 명승지이다.

막상 용주사를 찾아가자니 화성의 지리에도 약할 뿐만 아니라 정확한 위치가 머리속에서 가물가물 거리며 헷갈린다. 별 수 없이 택시를 잡아탈 수밖에.

용주사만 찾아가면 융건릉 찾는 일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다. 융건릉은 용주사에서 그리 멀지않은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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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 용주사는 화성시 송산동에 위치해 있다.

수원시를 벗어난 택시는 1번 국도를 한참을 달려서야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용주사에 도착한다.

언제 봐도 몸을 움찔거리게 하는 사천왕상을 모셔놓은 전각으로 들어선다. 사천왕문을 지나야 비로소 절집에 들어선 느낌이 든다.

용주사는 몇 번을 찾아와 봤지만 들릴 때마다 단아하고 정갈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매표소를 지나면 좌측으로 효행박물관 앞뜰에 정성껏 가꿔놓은 꽃밭이 있다. 입장료는 아마도 이 꽃밭 때문에 받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름답다. 이 꽃밭은 용주사 신도들이 일손을 보태어 철마다 고운 꽃들을 심고 가꾸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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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의 홍살문과 그 뒤로 삼문이 보이는 풍경. 홍살문이나 삼문은 사찰보다는 사당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용주사가 사도세자와 정조의 원찰이기 때문이다.

효행박물관을 지나 삼문으로 가는 길에서 홍살문을 마주친다. 홍살문은 보통은 왕실의 능역이나 능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문으로 두 개의 나무기둥에 창살을 꽂아놓은 붉은 문이다.

이 홍살문이 이곳의 용주사에서 마주치는 일은 정조와 사도세자에 관계된 융건릉 때문이란 것을 추출해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용주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로 화성시 송산동 화산 기슭에 자리 잡은 절이다. 본래 신라 문성왕 16년 854년에 갈양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고 한다.

병자호란 때 전란으로 소실되고 난 후 폐사되었다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용주사로 다시 창건하면서 왕실의 원찰로 삼았다.

낙성식 날 밤에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승천하는 꿈을 꾼 정조가 절의 이름을 용주사로 지었다. 그래서 삼문으로 이르는 길에 홍살문이 세워져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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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사리탑과 천보루의 풍경. 천보루 역시 일반 사찰과는 달리 궁궐의 대형 전각에서 볼 수 있는 양식으로 당시 왕실의 후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삼문을 들어서니 세존사리탑과 건물 웅장한 천보루가 눈에 들어온다. 보통의 절집 전각은 기둥이 나무로 이루어진데 반해 이곳 용주사 천보루의 기둥은 석재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궁궐에서 사용하는 전통양식으로 당시 이곳 용주사가 왕실로부터 얼마나 많은 지원을 받았던 사찰인지 알게 한다. 억불이 기승을 부렸던 당시 불교의 사정으로 볼 때 이는 특별한 혜택이 아닐 수가 없는 일이다.

그만큼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이 각별했다. 그 때문에 용주사는 효행 근본도량으로도 잘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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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 대웅보전. 용주사는 신라 때 창건한 갈양사 자리에 정조가 다시 창건한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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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 대웅보전 법당 내부. 섬세하고 화려한 닫집이 고색이 창연하다. 후불탱은 김홍도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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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앞에서 내려다 본 용주사의 경내 풍경. 오색연등이 가득 매달려 화사한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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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 겹작약 곱게 피어있는 용주사는 곳곳에 조성된 꽃밭이 절집과 어우러져 기막힌 풍광을 보여준다.

천보루를 지나 대웅전 앞마당으로 들어서니 마당 가득 오색연등이 가득하다. 어찌나 아름답던지!

빛깔 고운 등들이 가늘게 부는 바람에 흔들거리는 모습도, 마당 한켠에 조성된 철 맞추어 심어진 꽃들이 제 빛깔을 뽐내고 있는 꽃밭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들이다.

곁작약이 분홍빛 꽃잎을 펼쳐내고 있는 계단을 올라 법당으로 들어선다. 화려하고 섬세하기로 이름난 닫집과 단원 김홍도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후불탱 앞에 모셔진 삼세불에 먼저 참배를 올린다. 이곳 삼세불상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14호로 지정된 성보이기도 하다.

대웅보전에서 참배를 마치고 나와 먼저 둘러보는 곳이 범종각. 범종각은 다름 아닌 용주사가 화성8경의 제2경으로 손꼽히게 하는 국보인 용주범종이 있는 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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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 범종각의 범종으로 국보 제120호로 지정되어 있다. 화성8경 중에 용주범종은 제2경으로 아름다운 용주사를 대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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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은중경탑과 호성전. 호성전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제사를 위해 따로 지은 제각이다. 정조의 효심이 느껴진다.

이 용주사 범종은 국보 제120호로 지정된 유물로 신라와 고려의 양식이 나타나 보이며, 제작연대는 854년 갈양사 당시 주조된 것이라고 한다.

천년도 훨씬 넘는 세월을 견뎌 온 범종은 그 몸체에 문양들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종의 아름다운 모습을 빛내주고 있다.

천불전을 돌아 시방칠등각을 돌아 부모은중경탑에 이른다. 28세의 젊은 나이로 부왕인 영조의 명에 의해 그 좁은 뒤주에 갇혀 8일 동안 신음을 하다가 숨을 거둔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영혼이 구천을 떠도는 것이 안타깝던 당시 보경 스님은 정조에게 부모은중경을 설법하게 되고 그에 감동 받은 정조는 용주사를 창건에 이르게 된 것이다. 지금 이 부모은중경탑은 그런 연유를 기리는 의미에서 조성한 것이리라.

정갈하고 꾸밈이 많아 아름다운 명찰 용주사를 빠져 나와 융건릉으로 간다. 용주사에서 융건릉까지는 버스로 네 정거장.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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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의 왕릉. 융건릉 입구에 도착을 하니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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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 우거진 융건릉의 오솔길은 솔향 그득히 번져있어 걷는 즐거움뿐 만 아니라 호흡하는 즐거움까지 더해 즐거움이 배가 된다.

조선의 왕릉의 입구에 도착할 때 마다 늘 기분이 좋다. 다름이 아닌 입구에 세워진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리는 표지석을 만나게 되고 거기서 오는 자긍심에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것이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융건릉 안으로 들어선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상쾌해지는 길이 열리고 있다. 하늘을 찌를 듯 자라 오른 송림을 걷는 즐거움은 이루 표현할 길이 없다. 코끝을 간 지르는 솔향기가 가득한 길을 따라 먼저 융릉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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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릉의 전경. 융릉은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이다. 비 온 뒤끝이라 푸르름이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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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릉의 풍경. 잘 정비된 능역은 신록의 아름다움이 더해 사도세자의 한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융릉은 영조의 둘째 아들이자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와 그의 부인인 홍씨의 능이다. 보통 왕자의 신분이나 세자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난 경우는 능(陵)이 아니라 원(園)이라 하는데 사도세자의 경우 사후에 왕으로 추존되어 능호를 붙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원래는 배봉산에 수은묘로 있다가 정조가 등극하던 해 영우원으로 승격하고 다시 현융원으로 개칭, 정조 13년 12월 사후 왕 장조로 추존되면서 능호도 융릉이 된 것이다. 새벽부터 아침나절까지 비가 내리고 난 뒤라서 그런지 능침을 덮고 있는 잔디가 더욱 푸르고 또 푸르다.

잘 정비된 융릉의 능역은 수풀이 푸르고 아름다워 그 어디에서도 사도세자의 한은 찾아 볼 수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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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이 돌다 보면 어느 왕릉이나 이처럼 금천교를 만날 수 있다. 생전의 궁궐의 구조를 재현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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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릉의 풍경. 건릉은 조선 22대 왕 정조의 능이다. 융건릉을 돌아 보면서 정조의 대단한 효심을 느껴보던 순간이다.

다시 솔숲 아름답고 상쾌한 오솔길을 걸어 건릉으로 간다. 건릉은 조선 22대 왕인 정조와 그 왕비 효의왕후 김씨의 왕릉이다. 건릉 역시 푸른 수풀이 우거져 싱그러움이 그득하다.

정조는 조선 르네상스의 꽃이었다. 실학을 받아들여 과학적 업적을 많이 남겼을 뿐만 아니라 문물제도도 크게 정비해 많은 편찬유적들도 남겼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개혁의 꿈이었던 수원화성은 또 하나의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남게 됐다.

빗물을 머금고 있는 촉촉한 오솔길을 따라 융건릉을 돌아본다.

이 길은 정조의 대단한 효심을 느껴보기도 하고 우리 조선왕조의 왕릉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가를 다시 느껴보는 길이기도 하다.

푸름 가득한 왕릉의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한 겨울 이곳에 백설이 덥혔을 때를 상상해 본다.

화성8경의 제1경이 머리속에 그려지는 순간이다. 흰 눈 가득한 왕릉의 풍경은 언제 봐도 황홀한 한 폭이 수묵화이니 이곳 융건릉에 백설 가득한 풍경은 당연히 화성의 제1경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