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과 원서공원(현대사옥) 사이로 난 길을 접어들다 보면 우측으로 긴 담장이 이어진다. 창덕궁의 돌담길이다.

조선 말기까지만 해도 이곳은 북촌의 한 구역으로 수많은 선비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그러나 흥망성쇠는 어느 한 곳 비켜가는 법이 없다. 삼십 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동네는 그저 낡은 한옥과 일본식 가옥들이 다닥다닥 붙은 다소 비루해 보이는 동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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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바람이 한강 남쪽으로 불어 닥치면서 강남이 고층 건물로 천지개벽을 하는 수십 년 동안 이곳은 케케묵은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렇게 변화와는 영원히 동떨어질 줄 알았던 이 동네도 현대그룹의 사옥을 들어서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차별 개발의 바람이 이곳을 피해간 것은 결과적으로 무척이나 다행한 일이다. 덕분에 창덕궁의 주변의 고풍스럽고 고졸한 경관이 이나마 보존이 되었고, 지금은 각광받는 북촌마을의 탐방코스 중에 하나로 남게 되었으니 말이다.

돌담길을 따라 걷다가 원서공원을 지나니 용수산이라는 음식점이 깔끔한 외관으로 시선을 끈다. 이곳을 지나 좌측으로 원불교 교당이 있고, 우측 담장 사이에 창덕궁의 쪽문인 경추문이 나타난다. 경추문을 지나 80여 미터를 더 진행하면 창덕궁의 돌담길은 어느새 그 끝 지점에 이르고, 바로 그 좌측을 박물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한국불교미술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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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미술박물관을 찾은 날은 북악의 능선을 넘어 치달려온 삭풍이 연일 계속되는 기록적인 한파와 더해서 뺨을 터뜨릴 듯 후려치고 있었다. 삭풍이 드러난 피부를 때릴 적마다 마다 머릿속이 한 덩어리씩 덜어 내지는 듯 정신이 없다. 찔끔찔끔 흐르는 눈물과 콧물을 훔쳐내며 박물관 사무실로 들어섰다. 반겨 맞아주는 박물관 관계자의 환한 미소에 살을 에는 추위가 봄눈 녹듯 사라진다.

“중생(衆生-人間)의 염원(念願)은 부처님께 귀의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고[壽命無量願] 무한(無限)한 행복을 창조하면서[光明無量願] 이 땅에 부처님 세계[淨土]를 이룩하는 것[淸淨國土願]으로, 이는 또한 부처님의 염원이기도 합니다.”

한국불교미술박물관 권대성 관장의 말이다. 이러한 염원을 이루기 위해 수없이 많은 중생들이 부처님을 향한 지극하고 간절한 정성을 미술로 승화, 표현한 것이 불교미술이라는 것이다.

“저의 염원은 우리 박물관이 불교미술전문박물관으로서 확고히 자리매김하여 많은 이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이로 인하여 중생의 염원이 이루어지는 밑거름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소중한 우리 불교문화재가 열악한 환경에서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 한국불교미술박물관을 개관하게 됐다는 권대성 관장의 원력은 감동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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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관장의 안내로 박물관을 돌아봤다. 1층 상설전시실에 들어서니 절집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다소 투박해 보이는 우리의 유물들이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다. 목조금강역사상, 고려 철불좌상, 범종, 금동불상과 각종 탱화들…. 화려함 보다는 균형미와 절제된 아름다움이 빛나는 소중한 성보들이다.

2층의 미얀마 특별전시실은 1층 상설전시실에서 만난 우리 성보들과는 무척이나 비교가 된다. 섬세하고 화려함만으로 따지자면 우리의 유물들이 다소 위축될 소지가 많다. 화려한 것이 절제미를 강조하는 우리의 성보와는 상반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다.

미얀마는 남방불교의 수행법과 문화가 온전히 남아 있는 국가다. 바닷길을 따라 인도에서 스리랑카로, 스리랑카에서 미얀마, 타이, 라오스, 캄보디아로 전해진 불교가 남방불교인 것이다. 불교의 전파는 교리만이 아니라 예술적 성향까지 그대로 전해지게 마련이다. 예컨대 간다라 미술은 불교가 그리스의 헬레니즘 예술과 만나 융합된 문화현상인 것처럼. 간다라 미술의 특징은 불교를 주제로 한 불상에서 나타나며 오똑한 콧날이나 서구적인 외모와 화려하며 섬세한 표현 양식과 수법에 있다.

바다를 통해 미얀마로 전해진 불교의 미술은 변화의 과정이 짧아 그 시대의 사조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불교는 티베트를 넘어 온 북방불교 계통이다. 육로를 통해 높은 산과 사막을 넘어 중국을 거친 불교가 우리나라까지 전해졌다. 그 과정에서 불상을 점점 더 자애로우며 고상한 모습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리고 토착화된 불교미술은 더욱 한국적인 모습으로 변화했다. 오똑했던 콧날이 조금씩 뭉뚝해지고, 각진 얼굴은 점점 동그랗게 우리네 모습을 닮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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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미얀마의 유물의 특징이 화려하고 섬세함에 있다면, 우리의 유물은 균형감과 자애로움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비유한다면 미얀마의 불교미술이 고려청자와 같다면, 우리의 불교미술은 조선백자와 같은 맛이 나는 것 같다.

어찌되었든 미얀마의 불교미술과 우리의 불교미술은 그 전파과정이 달라 그 꾸밈이나 형태에서 다르고 그 시대에 나오던 광물이나 재료가 다르기에 화려함에 이끌려 우리 유산을 폄하하는 우를 범할지 모르기에 사족을 달아보았다.

2층 특별전시실에 들어서니 눈이 번쩍 뜨이기는 번쩍 뜨인다. 여기저기서 찬란한 금빛이 번뜩 거린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불단이다. 옥과 주칠, 금박, 유리비즈로 장식한 불단은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을 상징한 것인데, 금박과 유리의 장식이 무척이나 화려하며 섬세하여 순식간에 그 아름다움에 빨려 들어간다.

미얀마의 불교유물로 가득한 2층 특별전시실에는 불상뿐만 아니라 불단 장엄구며 칠기,

아라한은판진언, 사리, 불전도와 목조상과 악기 등 다양한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눈에 들어온 성물은 사웅가옥이라는 악기다.

마치 범선 같은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는 사웅가욱(버마하프)이라는 하프의 일종인 악기는 그 모습이 아름답다. 어떤 소리가 날까 무척이나 궁금하다.

전람실을 모두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박물관 마당의 석탑에 섰다. 하얀 눈을 뒤집어쓴 석탑이 모습이 환상적으로 아름답게 다가왔다. 자연석을 인공으로 다듬어 세위놓은 탑 위에 다시 자연의 조화인 눈이 쌓인 모습이란, 인공과 자연이 만들어낸 절묘한 조화가 아닌가.

눈이 내리면 세상은 공평하게 흰 눈으로 덮인다. 흰 눈으로 덮인 세상은 평등한 세상이다. 마치 부처님의 자비가 그렇게 세상에 공평하게 퍼지는 것처럼 말이다.

불자라면, 아니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서울 강북의 한 복판에 위치한 한국불교미술박물관을 찾아 볼 일이다. 이곳에서 우리의 불교미술 유물과 미얀마의 불교미술 유물을 비교하며 관람한다면 문화재와 역사에 대해 또 다른 시각을 갖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니.

관람문의 : (02) 766-6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