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소귀고개라고도 불리는 고개가 우이령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우이(牛耳)는 우리말로 소의 귀를 뜻하며 이는 북한산(삼각산)의 정상 봉우리들이 소의 귀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던 우이령길이 지난 2009년 7월, 41년 만에 개방되었다. 정식으로 개방이 되기 전 상장능선을 넘어 북한산에서 도봉산으로 넘어갈 때 일부 구간을 걸었던 기억이 새로워 우이령 옛길을 다시 한 번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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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울창하고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우이령길은 탐방객 숫자를 제한하고 있어 한적하다.

수십 년간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던 덕분에 고갯길은 자연환경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 그래서 다시 개방을 하면서 환경보호를 위해 사전 예약제를 실시해 탐방객 숫자를 제한하고 있다.

우이령길을 걸으려면 북한산국립공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회원등록을 하고 탐방예약을 하면 된다. 우이탐방지원센터에서 500명, 송추 교현탐방지원센터 500명, 이렇게 하루에 1000명만이 사전 예약을 통해 우이령길을 걸어볼 수가 있는 것이다.

우이동 종점에서 내려 우이동 먹자촌으로 들어선다. 평일 낮이라서 그런지 산행객의 발길이 뜸하다. 숲은 아직 봄빛이 번지기 전이라 겨울 빛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하지만 발밑 길섶은 제법 연록빛깔로 가득하다. 벌써 꽃을 피워낸 보라빛 제비꽃 무리들이 반갑고 고맙고 대견하다.

저 작고 여린 꽃들이 유난히도 혹독하던 겨울을 견뎌내고 이렇게 앙증맞은 고운 꽃을 피워 냈으니 이 얼마나 신기하고 위대한 일인가.

우이탐방지원센터에서 예약 확인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우이령 옛길로 들어섰다. 소귀고개를 넘는 널찍한 길은 삼삼오오 무리 지어 이야기꽃을 피워가며 걸어도 좋을 길이다.

이 소귀고개는 수도권과 경기북부를 잇는 지름길로 생필품과 농산물의 교류가 이루어지던 작은 도로였는데 한국전쟁 당시 미군 공병대가 군사작전용 도로로 개통하면서 길이 넓어지고 우이령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따라 오르다보니 노란 꽃을 터트리기 시작하는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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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 길에서 만난 생강나무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을 하고 있다.

생강나무다. 산수유 꽃을 빼닮은 생강나무의 노란 꽃을 비벼 코끝에 갖다 대니 연한 생강 냄새가 풍겨 난다. 상큼한 내음이 머릿속까지 번져온다. 생강나무와 산수유의 꽃은 얼핏 보면 분간이 쉽질 않은데 산수유나무의 줄기는 각질이 일어나듯 나무 껍데기가 일어나는 것에 반해 생강나무의 줄기는 매끈하니 우선 그렇게 구분하는 것이 편하다. 또 생강나무 꽃은 나무의 줄기에서 바로 꽃들을 뭉쳐 피워내지만 산수유는 작은 가지 끝에 꽃이 맺히는 게 차이다.

생강나무는 옛날 동백기름이 귀하던 시절 이 생강나무의 열매로 기름을 짜 머리에 발랐다 하여 산동백, 개동백이란 이름으로도 불렸다.

노란 꽃이 피기 시작하는 생강나무를 바라보다 문득 이 나무의 이름이 생강나무가 아니라 생각나무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평온하고 한적한 산길을 걷다 보면 자연 많은 생각들이 일어나고 그래서 시나브로 사색을 하게 되는, 그런….

그 사색의 길에서는 이름 모를 꽃에게도 말을 걸어보게 되고 지저귀는 산새들의 재잘거림에 대답도 해주는 소통의 걸음이 이어지는 것이다. 풀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 언제 우화를 했는지 모를 부전나비와 쉴 새 없이 나뭇가지를 옮겨가며 구애를 하고 있는 동고비. 이들과 동화되고 편재하며 걷는 길. 우이령 길은 그렇게 자연과 생명과 하나가 되고 소통을 나누는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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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 정상에는 전차의 진입을 늦추기 위해 대전차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다.

고개의 정상에 이른다. 서울의 경계를 벗어 날 때면 늘 마주치게 되는 풍경이 이곳 우이령 정상에도 흉물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커다란 콘크리트 덩어리들을 탑처럼 쌓아놓은 구조물로 전시에 탱크들의 진입을 늦추기 위해 세워 놓은 대전차 장애물이다.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폭파를 하거나 지렛대를 이용에 길목을 막는 용도인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땅이 분단된 국가이고 아직도 휴전 중인 전시국가임을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놓여진 이 흉물스런 구조물을 통해 실감하는 순간이다.

경기북부 지역을 돌다 보면 주요 요충지마다 이런 장애물들을 쉽게 마주치는데 그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일곤 했었다.

“어서 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그래서 저런 흉물스런 콘크리트 덩어리들을 치워 버렸으면…”

휴전선과 함께 남과 북을 가르고 있는 또 하나의 커다란 장벽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던 것이다.

대전차 장애물을 지나면 넓은 쉼터가 나오고 그제야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언제 봐도 신묘한 모습을 하고 있는 오봉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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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전망대에서 바라 본 오봉의 신기하고 아름다운 풍경.

쉼터를 빠져 나와 얼마간을 걸어 내려가니 전망대 하나가 나타난다. 우이령 길에서 오봉의 풍경을 가장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이다.

다섯 개의 바위 봉우리 마다 공깃돌 같은 바위 덩어리를 저 마다 하나씩 얹고 있는 모습. 볼 때 마다 신기하고 환상적인 풍경이다.

오봉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옛날 한 마을에 다섯 총각이 있었는데 고을 원님의 어여쁜 딸에게 장가를 들기 위해 맞은편의 상장능선에서 오봉에 바위를 던져 올리기 시합을 하여 봉우리 마다 바위 덩어리가 얹어져서 지금처럼 기묘한 모습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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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 고개를 넘어 석굴암삼거리로 걷는 길은 오봉의 풍경이 더해 걷기에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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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삼거리 유격장 입구. 북한산과 도봉산의 맑은 물이 모인 저수지다.

아름다운 오봉을 바라보며 걷는 길은 어느새 삼거리에 도달한다.

이곳에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는데 지금도 군에서 사용하는 군대의 유격장이 있다. 계곡의 맑은 물이 모인 저수지에는 버들치 떼가 햇빛을 좇아 유영을 하고 몽글몽글 흐늘거리는 산개구리의 알들은 물빛만큼이나 투명하다.

이 삼거리가 바로 석굴암 삼거리다. 작은 다리를 건너 석굴암으로 간다. 경사진 길을 따라 오르는 길옆으로는 각각의 유격장 시설이 눈에 보인다. 여러 형태의 장애물 시설을 비롯해서 계곡을 건너는 외줄과 양줄은 다시 보아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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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으로 오르다 보면 주변에 여러 유격장 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이제는 기억 너머로 아련해진 군대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제대하거든 두 번 다시 군생활을 하던 곳을 향해서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던 다짐은 이미 지워진 지 오래다. 이제는 가끔은 그때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니 세월이 약이란 말은 아무래도 진리 중에 진리 일듯 싶다.

유격장 시설들이 눈에서 안 보일 즈음 석굴암의 전각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을 한다. 오봉의 커다란 암봉들을 머리에 이고 있는 듯한 절집 석굴암. 천년고찰 오봉산 석굴암이다.

오봉산 석굴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봉선사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 공민왕 당시 왕사였던 나옹화상께서 3년간 수행정진했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또 조선시대에는 무학대사의 제자인 설암관익대사가 주석하며 석굴에 지장과 나한 두 존상을 조성했으며 1455년에는 단종왕후가 왕세자를 위해 왕후 원찰로 중수하기도 하였다.

그후에도 수많은 대덕고승들이 선맥을 이었던 가람이었으나 한국전쟁을 치루면서 소실되었다가 근래에 초안스님과 그 상좌인 도일스님의 원력으로 불사를 일으켜 오늘날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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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의 관음봉을 머리에 이고 있는 듯한 석굴암 대웅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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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의 석굴 나한전의 모습. 석굴암은 나한신앙으로 잘 알려진 사찰이다.

오봉의 관음봉을 떠받치고 있는 듯한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나오니 석굴에 조성된 나한전이 보인다. 석굴암은 나한신앙의 성지로 옛날에도 이 석굴에는 나한을 독성으로 모셨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이름난 나한기도의 도량으로 잘 알려져 있다.

범종각 위로 바위벽에 걸터앉은 듯한 삼성각에 올라서 내려다보니 그림 같은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절집 기와지붕과 함께 드러나 보이는 상장능선의 풍경이 기막히게 아름답다. 북한산의 절경 중에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상장능선. 지금은 통제구간이 돼서 아쉬움이 크지만 이렇게나마 바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 애틋함이 전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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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각 앞에서 바라 본 상장능선의 아름다운 풍경. 이곳에서 노을 풍경을 감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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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하게 치솟은 오봉의 암봉의 풍경과 더해 절경을 자랑하는 석굴암이다.

뿌옇게 들어 찬 연무 때문에 흐릿한 풍경이라서 아쉽기는 하지만 예전 몇 번의 산행으로 느꼈던 아름다움들이 상기되어 아쉬운 마음을 채워주고 있다.

지금도 불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석굴암은 새롭게 약사불좌상이 조성되었고 초안스님의 사리탑도 새롭게 봉안되었다. 새로 조성된 약사불좌상은 바위나 조각의 형태가 하남시 선법사의 보물 제981호인 태평2년명마애약사불좌상과 닮아 있어 조형미가 수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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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조성한 약사불좌상. 하남시 선법사의 마애약사불과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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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조성하여 봉안한 초안스님의 사리부도탑.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오봉산의 석굴암. 도봉과 삼각의 자연절경을 한눈에 보여주는 이 아름다운 절집에서 상장능선으로 넘어가는 일몰이 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 하나를 남겨두고 석굴암을 빠져 나온다.

다시 석굴암 삼거리로 나와 송추 교현탐방지원센터로 향한다. 맨질맨질하게 판판한 흙 길을 걷고 있는 보살님들은 신발은 배낭 꽁무니에 걸어 매고 맨발로 이 흙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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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걷기 좋은 우이령 숲길은 자연과 하나가 되고 건강을 지키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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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탄하고 부드러운 흙 길을 걸어가는 보살님들. 진정한 참살이의 한 방편이리라.

웰빙! 우리말로는 참살이가 아닌가. 이렇게 맨발로 흙 길을 걷는 것 역시 진정한 참살이일 것이다. 자연의 기운을 맨살로 전해 받으니 그야말로 여과 없는 에너지의 전이가 아닐까 싶다.

개울가의 버들가지에는 수채화 물감 번지듯 봄빛이 스며들고 발밑에서는 자연의 소리들이 발바닥을 간질이는 우이령 고갯길. 우이령 고갯길에는 삼라만상과 합일을 이루는 자연의 기운이 한껏 넘쳐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