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북한산의 영봉을 찾았다. 아직 붉은 단풍이야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웅장한 아름다움이 가득한 인수봉을 올려다보고 싶어서다.

오후에 비소식이 있어 흐린 날씨이기는 하지만 산행하기에는 더없이 좋다. 우이동 종점에 내려서 도선사행 셔틀버스를 타고 절 입구까지 오른다.

이쯤이면 해발 604m의 영봉도 반쯤은 ‘날로 먹는’ 산행이 된다. 반이나 ‘날로 먹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스팔트 포장길을 걸어 오르는 것은 영 마뜩찮다.

도선사 입구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했다. 하루재로 오르는 길, 이 길은 여전히 숨이 깔딱거리는 깔딱고개의 면모를 잃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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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재에서 휴식을 취하고 영봉으로 오른다. 하루재에서 영봉으로 오르는 거리는 얼마 안 되는 거리지만 몹시 가파르다.

정상 부근에 이르니 훌륭한 조망이 펼쳐지기 시작을 한다.

하늘은 온통 비구름이지만 낮게 깔린 비구름이 만들어낸 풍광은 몽환적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꼭 파란 가을 하늘 만이 기막히게 좋은 풍경은 만은 아니다. 수락산 너머로 보이는 구름 깔린 첩경은 이 순간무엇보다도 아름답다. 이런 풍경은 이른 아침이나 새벽 등산을 해야만 감상할 수 있는 풍경이거늘….

한낮인데도 구름이 서린 산봉우리들이 중첩된 풍경은 겸재의 그림에서나 보았을 만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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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봉 정상에 올라 하늘을 향해 우뚝 치솟은 인수봉의 거대한 화강암을 올려다본다. 역시 언제 봐도 장엄하고 웅대한 풍경이다.

멀리 보이는 상장능선도 오봉산의 오봉도 그리고 도봉산의 주능선도 그림 같이 아름답다.

영봉을 오르면 이렇듯이 이런 풍경들을 바라 볼 수 있어서 좋다. 인수봉을 등 뒤에 두고 사진을 찍는다.

오랜만에 산에서 찍어보는 사진이다. 앞으로 얼마나 이곳 북한산을 찾아올 수 있을까. ‘올 수 있을 때 많이 찾아와야지. 이 그림 같은 풍경들을 모두 가슴속에 기억속에 담아 둬야지.’라고 혼잣소리로 되뇌어 본다.

영봉능선을 따라 육모정고개로 향한다. 여러 개의 암봉을 오르고 내리면서 걷는 산행로는 아름다운 풍경들의 파노라마다.

간간히 만나는 고사목이 구름 서린 산 풍경에 더해 쓸쓸한 여운까지 더해 묘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들을 바라보며 걷는 길은 어느새 육모정고개.

육목정고개에서 상장능선으로 가는 길은 어느새 폐쇄되어 막혀있다. 상장능선이 개방된지 몇 해 안됐지만 다시 보호구간으로 지정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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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능선은 몇 차례 산행을 해봐서 그 아름다움을 잘 아는 터. 그 멋진 능선은 이제 원경으로만 감상해야 한다.

계곡 길을 따라 내려 오다보니 이끼가 가득 낀 긴 기와담장이 나타난다. 용덕사라는 조계종 종단 소속 작은 절집의 담장이다. 긴 담장을 돌아들어 용덕사의 경내로 들어선다.

절집 마당에 일궈놓은 작은 텃밭과 화단이 고운 화초와 결실들로 가득하다. 이곳 주지스님이 얼마나 부지런한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광경들이다. 절집 우측으로는 명경 같은 계곡수가 잔잔한 물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작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절집이다.

대웅전에 들러서 참배를 드리고 대웅전 뒤편으로 돌아드니 작은 건물에 내부공사가 한창이다. 스님과 일꾼 몇 분의 일손이 무척이나 바쁘다.

“스님, 스님께서 이곳 주지 스님이신가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이는 스님께 합장을 드리고 고생하신다는 인사를 남기고 돌아선다.

스님께 이 절집의 내력이라도 여쭐 겸 찾아뵌 것인데 일손이 워낙 바쁘셔서 괜한 결례가 될 듯싶어서다.

‘그래 이렇게 쉴 틈 없이 원력을 다하시는 스님이시기에 이 작은 절집이 이토록 정갈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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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덕사의 내력은 간략하게나마 대웅전에 계시던 보살님께 들을 수 있었다. 용덕사는 1910년 경에 창건돼 올해로 약 100년 정도가 된다.

대웅전 계단을 다시 걸어내려 가는데 우측의 커다란 바위 아래로 좁은 계단길이 나타난다. 계단을 올라서니 바위에 마애여래입상이 나타난다.

용덕사의 산신각은 천연동굴로 용의 입으로 그리고 그 바위는 용의 여의주라고 여겨 예로부터 기도처로 명당지로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리고 100년 전 동굴 앞 바위에 마애여래를 조성하고 불사를 일으켜 지금의 용덕사의 모습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인자한 모습으로 웃고 계시는 미륵부처님께 정성껏 삼배를 올린다. “부처님. 부처님. 이 세상 근심 한 덩어리만 지워주세요.”

미륵부처님께 기원하는 마음이 전해졌음일까? 가슴 한 켠이 가볍게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했다.

산행로를 빠져나와 소귀령 옛길에 이르니 조금씩 빗방울이 비추기 시작을 한다. 추적추적 가을비는 잎사귀 큰 참나무 잎을 두둘기고, 그 소리는 성큼성큼 가을이 걸어오는 소리가 되어 귓전을 파고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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