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 정상으로 오른다. 무제봉에서 가쁜 숨을 고르며 세상을 한번 내려보니 모악산 정상이 엎어지면 코가 닿을듯 가깝다.

녹음 짙어가는 모악산 정상에 거대한 철탑이 흉물스럽게 하늘을 찌르고 섰다. 그 아래 전망대에 이르니 모악산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이 초라하다. 해발 793.5m임을 알려주던 표지석은 정상이 아닌 그 턱 아래 있는 듯 없는 듯 웅크리고 있다.

한국방송공사의 방송 송출탑과 그 시설인 송신소가 들어서 있어 그렇게 거대한 철탑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이다. 전망대에 걸려있는 안내판에 송신소 일부와 옥상이 개방되어 있다는 내용을 읽고 바로 송신소 옥상으로 오른다. 송신소의 옥상은 정상의 산허리를 돌아야 오를 수 있다. 아마도 모악산을 찾은 산행객에게 정상의 일부라도 열어 보여주기 위함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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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 오르니 세상이 훤하게 한눈에 들어온다. 치마폭처럼 펼쳐진 모악산의 산줄기들이 사방팔방으로 뻗어 흘러내리고 있다. 모악산은 천년고도 전주시에서 남쪽 12km 지점인 완주군 구이면 일대와 김제시 금산면에 위치한 호남 명산 중의 하나다. 1971년 전라북도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그 경관이 빼어나게 아름다워 호남4경의 하나로 꼽히고 천년고찰들을 품에 안고 있어 국보급 문화재들의 보고이기도 하다.

모악산(母岳山)이라. ‘어머니의 산’이란 뜻인데, 이곳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우리나라 최대 곡창지인 호남평야를 적시고 키우는 그야말로 어머니와 같은 산이다. 그래서 일까. 예로부터 그 기운이 영험하다 하여 모악산 일대는 각종 신흥종교를 태동해냈고 불교의 미륵신앙의 본거지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곳 모악산에서 증산교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각종 무속신앙을 뿌리로 한 신흥종교가 발생하였고 그와 관련된 암자만 해도 한때 80여개가 넘게 난립하기도 했으며 산의 기를 바탕으로 난세에는 사람들이 모여 사회개혁을 꿈꾸기도 했다고 전한다.

통일신라시대의 진표율사와 후백제를 세운 견훤왕이, 또 조선중기에는 정여립이, 그 후기에는 동학운동의 전봉준이 혁명을 꿈꾸고 그 정신을 키워낸 곳이 바로 이곳 모악산인 것이다. 넓고 큰 산은 기운이 넘쳐 명당지로 유명하였으며 그래서 그에 얽힌 전설도 많이 전해져 내려온다.

무제봉에서는 먼 옛날부터 모악산 주변마을 사람들이 무우제를 올리던 곳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몇 마을의 행사였으나 백제시대에는 모악산 일대의 모든 사람들이 이 제사에 참가했으며 조선중기에 와서는 전주감영의 감사가 산 돼지를 제물로 올리며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모악산의 정상 바로 밑 장군봉은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신성시해 오던 곳으로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알려져 사람들이 이 능선에 몰래 묘를 써 왔다고 하는데 이곳 장군봉의 능선에 묘를 쓰면 가뭄이 들어 한때는 입산금지령까지 내려졌으며 혹 가뭄이 들면 이곳에 주민들이 올라와 기우제를 지내고 땅을 파헤치면 수십 개의 유골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1975년에도 극심한 가뭄이 들어 온 주민들이 암매장한 묘를 파헤치는데 그 마지막 묘를 찾아 파는 순간 비가 내려 그해 풍년이 들었다는 기이한 이야기와 지금도 장군봉 근처에는 암매장을 못하도록 주민들이 감시를 하고 있다니 모악산은 오늘날까지도 산세만큼이나 명당지로도 그 이름을 떨치고 있는 셈이다.

이곳 송신소 옥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날씨가 좋은 날이면 호남평야의 지평선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하는데, 마침 연무가 낀 날씨라 아쉽게도 그다지 멀리까지는 시계를 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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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사 서울의 관악산의 모습을 하고 있는 모악산의 정상을 내려간다. 심원암과 금산사로 가는 능선길이다. 산등성이를 따라난 능선의 오솔길은 잡목 숲 아래 조릿대가 무성하다. 조릿대가 무성하던 오솔길은 서서히 송림이 우거지고 그렇게 능선 오솔길을 따라 하산하기를 한 시간여. 드디어 심원암 북강삼층석탑과 금산사를 알리는 이정표를 만난다.

먼저 심원암 북강삼층석탑을 찾아보기로 한다. 울창한 숲 사이로 오롯이 난 오솔길 끝에 나타난 다소 소박해 보이는 삼층석탑. 바로 보물 제29호인 심원암 북강삼층석탑인 것이다. 북강이란 북쪽의 언덕이란 뜻으로 심원암의 북쪽 산등성이에 자리잡고 있어 북강삼층석탑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통일신라의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각층 지붕과 2층 이상의 몸체를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고 받침부 위아래의 너비가 일정한 점으로 보아 고려탑의 성격을 담고 있다고 안내판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안정감이 덜하고 조각기법도 거칠다는 평과 아울러 깊은 산중에 세워진 탑이라서 지금까지 거의 온전하게 보존되어 왔다는 설명도 덧붙여져 있다.

이 탑을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널리 알려져 조선시대에는 서민층과 사대부집 아낙네들의 발길이 그칠 새 없이 몰려들어 몇 채의 요사채를 지어 불편을 덜어주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그 터만 남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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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강삼층석탑을 돌아보고 심원암으로 내려간다. 새로 지은 듯한 전각의 검은 기와지붕이 빼꼼이 그 얼굴을 내민다.

심원암은 신라 제36대 해공왕 당시 진표율사가 금산사를 중건하면서 선객들의 수도도량으로 건립한 산내암자로 많은 선객들이 도를 이룬 호남 유일의 선도량이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소실이 되어 인조 13년에 수문선사가 복원하였으나 철종 원년에 남쪽 250m 아래인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고 하며 현재의 전각은 근래에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심원암 마당이 들어서니 적막하리만치 고요한 절집은 인기척이 없다. 아마도 코앞으로 다가온 석탄일 행사 때문에 모두 금산사로 내려가 절집이 텅 빈 듯싶다. 지금도 이 조용한 산중 암자에서는 누구나 찾아와서 작던 크던 도를 이루어 갈듯 싶을 만큼 조용하고 고즈넉하다. 마당에 세워진 비석 모양의 관세음보살님께 삼배를 올리고 심원암을 빠져나온다.

오솔길이던 산길은 황토와 콘크리트를 섞어 포장한 널찍한 길로 바뀌기 시작을 한다. 넓어진 길 만큼이 하늘을 가리고 섰는 송림이 더욱 울창하다. 송림을 따라 맑고 시원한 계곡물을 따라 터벅터벅 내려가다 보니 이정표 하나가 반갑다.

근처에 사랑나무가 있음을 알려주는 이정표였다. 사랑나무라면 두개의 나무가 하나의 가지로 연결된 연리지를 말함일 터인데…. 가까운 거리니 들러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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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 우거진 숲길을 200m가량 들어서니 마루에 목재 울타리가 쳐진 곳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올려다보니 높게 자란 소나무 두 그루가 가지를 이어 한 몸이 되어 있었다. 연리지를 보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로 맨 처음 본 것은 북한산 동장대지를 내려오다 만난 떡갈나무 연리지이고, 두 번째는 외연도에서 보았던 동백나무의 연리지다. 금산사 뒷편에서 만난 바로 이 소나무 연리지는 세 번째가 되는 것이다.

자연은 참 신비한 현상을 잘도 만들어낸다는 생각을 해보며 금산사로 발길을 옮긴다. 금산사에 이르기 전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이 부도전이다. 부도전으로 들어선다. 역시 대가람답게 부도전의 부도들도 참 많다. 오랜 세월을 그대로 보여주듯 돌이끼가 가득한 부도탑들을 돌아본다. 그리고 그 가운데 차양을 쳐서 보호하고 있는 비석 하나. 혜덕왕사 진흥탑비로 보물 제 24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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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왕사는 고려시대 숙종의 왕사로 말 그대로 왕을 가르치던 스승이었으며 숙종은 혜덕왕사를 스승으로 평생 동안 불교에 귀의했다고 한다. 진표율사 이후로 쇄락해가던 금산사를 다시 크게 중창한 분이 혜덕왕사이기도 하다.

부도전을 나와 금산사 경내로 들어선다. 평일 한낮의 금산사 역시 한산하고 나른하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가 절집 마당을 후끈하게 달구고 있다. 금강문을 지나니 우측으로 거대한 당간지주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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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간지주 하나만 보더라도 그 절집의 규모를 알 수 있다. 이렇게 큰 당간지주라면 옛날 여기에 걸렸을 탱화는 얼마나 컷을 것인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야단법석에 몰려왔을 것인가? 하기사, 금산사는 예나 지금이나 알아주던 대가람이 아니던가.

키 높이보다 높은 당간지주를 지나 보제루로 들어선다. 햇볕 내리쬐는 마당에는 철사 줄이 한창 걸리고 있었다. 연등을 걸기 위해 일손 바쁜 처사님들의 손놀림이 정신이 없다. 대장전 앞에 이르니 아름다운 모습의 석등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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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으로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노주라는 것이 세워져 있다. 금산사에 있는 것들은 한결같이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고 모두 보물이고 문화재다. 대적광전 앞의 석련대도 그렇고 육각다층석탑도 그렇다.

특히 삼층으로 올려진 미륵전은 장엄함과 수려함을 모두 갖추고 있는 대전각이었다. 그러니 국보 62호로 지정된 보불중에 보물이 아니겠는가. 1층에는 대자보전, 2층에는 용화지회 그리고 3층에는 미륵전이라고 현액이 따로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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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달라도 모두 미륵불의 세계를 나타낸다. 미륵전 안으로 들어서니 거대한 입불이 모셔져 있다. 가운데는 미륵본존불이 좌우로 협시보살이 모셔져 있다. 미륵 본존의 높이가 11.8m이니 그 거대한 모습 앞에선 중생은 더욱 초라하고 작아만 지는 것이다.

미륵전 뒤로 있는 방등계단을 오른다. 적멸보궁이 먼저 보인다. ‘적멸보궁’, 그렇다면 이곳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졌다는 말인데, 적멸보궁 안으로 들어서니 역시 따로 불상은 모셔져 있지 않고 커다란 창 너머로 탑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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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건봉사를 찾았을 때 그곳 적멸보궁이 이러한 모습이었는데.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곳에는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이렇듯 부처님 사리탑에 참배를 올리는 예배소가 적멸보궁인 것이다. 부처님 사리탑에 참배를 드린다.

원래 이 적멸보궁은 예전에는 나한전이었으나 이곳 방등계단을 성역화하면서 크게 다시 개축할 때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향해 적멸보궁을 새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금산사는 599년 백제 법왕때 창건된 자복사찰로 진표율사의 중창으로 대가람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진표율사가 금산사로 들어와 대가람의 면모를 갖추고 미륵신앙의 본거지로 자리매김을 하니 모악산이 미륵신앙의 성지로 전국에 알려진 것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조계종 17교구 본사인 금산사는 그 역사와 규모만큼이나 수많은 국보급 유물과 문화재들의 보고였다.

아름답고 소중한 문화재로 가득한 금산사 경내를 돌아보다가 그만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는 안내판들을 보면서 잠시 충격에 휩싸인다.

“낙서를 금합니다. 문화재가 아파해요.” 이런 안내판이 걸린 법당 외벽에는 여지없이 낙서들이 벽면의 단청을 파헤치고 긁혀내져 있었다. 누가누가 다녀갔다는 이름이나 별명이 적힌 낙서들. 대부분 수학여행을 왔던 학생들의 소행이지 싶다.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무지하고 그에 관한 교육이 얼마나 부족한지 여지없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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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의 피부를 그렇게 무자비하게 후벼 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몰지각한 짓을 하지는 못할 터인데. 훗날 이 소중한 유산들의 주인이 자신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철없는 행동은 하지 않을 터인데. 그들에게 역사를 가르치고 문화를 가르치는 교육자들이 조금만 더 강조하고 일러주면 함부로 이렇게 훼손하는 일은 없어 질텐데. 아름다운 금산사 경내에서 보았던 가장 참담함이 느껴지던 순간이고 광경이었다.

거대하고 웅장한 금산사의 일주문을 빠져 나온다. 아름답던 모악산과 그 산사의 풍경들이 김제역으로 향하는 버스 차창으로 파노라마가 되어 지나가고 있다. 전주와 모악산 일대에 유난히 그 흔적을 많이 남겼던 진묵대사의 시 한편이 문득 떠오른다.

하늘을 이불로, 땅을 자리삼고

산을 베개로, 달을 촛불로 삼고

구름을 병풍으로, 바다를 술통삼아

크게 취하여, 혼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행여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릴까 염려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