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명상을 시작하던 무렵

잠시 제가 명상을 수행하던 초기 시절을 회고해 보겠습니다.

1989년, 제가 거해 스님으로부터 위빠싸나 명상을 배우던 때. 당시 저는 막 한마음 선원에서 나온 직후였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십니다만 저는 1985년부터 1989년까지 안양에 본원을 둔, 대행 스님이 창건하신 한마음 선원에서 선원을 도우며 지냈습니다. 대행 스님에 대한 책을 세 권 내어 모두 합쳐 약 10만 권 가량이 독자에게 보급되었고, 그 결과로써 많은 신자들이 한마음 선원을 찾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를 바탕으로 한마음 선원은 크게 번창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저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저는 대행 스님의 인격을 접하며 한편으로는 놀라고 다른 한편으로는 감동하였습니다. 그 놀라움과 감동이 저를 4년 동안 한마음 선원을 사랑하고 후원하게 한 힘입니다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저의 선원에 대한 사랑, 주인공 공부에 대한 열정은 식어갔습니다.

그 기간은 또한 대승불교에 대한 의문과 검토의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처음에는 감성적으로만 접근하던 불교를 지적으로, 또는 논리적으로 탐구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에게 큰 갈피를 잡아준 것은 일본의 불교학자 마스다니 후미오(曾谷文雄)였습니다.

마스다니 후미오의 저작은 저를 매혹시켰습니다. 그 분은 아함부경(阿含部經: 수천 편의 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을 중심으로 불교를 다루었는데, 천태지의(天台智懿) 스님의 오시교판(五時敎判)에 익숙한 한국 불교인들에게 있어서는 아함경은 소승(小乘) 수준의 낮은 근기를 가진 제자들을 위한 가르침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그 ‘소승’에 매혹되었습니다(오시교판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수준에 따라 각기 다르며 그 차원에는 5등급(다섯 시기)이 있다는 학설입니다. 이에 의하면 아함경은 부처님의 가르침 중 가장 낮은 등급에 속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때 불교의 가르침들이 상호 모순 때문에 큰 혼란에 빠져 있던 참이었습니다. 자력(自力)을 말하는 경이 있는가 하면 타력(他力)을 말하는 경이 있었습니다. 자성(自性)이 없다는 경이 있는가 하면 일체 중생에게는 불성(佛性)이 있다는 경이 있었습니다.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 부정(不淨)을 말하는 경이 있는가 하면 상락아정(常樂我淨)을 말하는 경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가르침을 통섭하고자 하였지만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부처님의 친설(親說)에 가장 가까운 초기 경전인 아함경을 읽으며 그 단순하고도 솔직하며 이성적이면서도 따뜻한 가르침에 감동하였습니다. “아함경만을 놓고 본다면 불교는 아무 혼란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아함경 공부는 저를 대승불교와 한마음 선원과 떼어놓았습니다. 마침내 저는 한마음 선원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나중에 저는 아함부경을 남방에 전해오는 빠알리(Pali) 경으로 대체하였고, 대승불교를 빠알리 경을 보조하는 제2차적 자료로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이제 스승의 지도 없이 제 혼자서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처음 그 ‘혼자 걷기’는 매우 힘겨웠습니다. 그러던 차에 남방 불교권에서 오랫동안 수행해 오신 거해 스님께서 위빠싸나 명상을 가르치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임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모임은 남산의 대원정사에서 있었습니다.

크게보기사실 그 이전에 저는 책을 통해 위빠싸나 명상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당시에는 지금처럼 ‘위빠싸나’라고 하지 않고 ‘비파사나’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책을 통해 읽은 방법만으로 수행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는 매뉴얼을 보며 전자 제품을 처음으로 가동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매뉴얼은 작은 책으로 되어 있고, 그 책을 읽으며 처음 보는 전자 제품을 가동하려면 매우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기사로부터 설명을 들으며 가동해 보면 그것이 생각보다 쉬운 것을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책을 통해서는 위빠싸나 명상에 대해 얼개를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거해 스님의 가르침이 주어졌는데, 그것은 강력한 호소력과 함께 저를 매혹하였습니다.

스님의 설법을 들으며 저는 지금 막 제따와나(Jetavana, 기원정사:祇園精舍)에서 내려오신 부처님 당시의 스님이 내 앞에서 설법을 하시는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저는 스님의 지도를 받으며 위빠싸나 명상을 익혔습니다.

가르침을 받은 뒤 저희들은 모임을 구성하였습니다. 회장을 뽑자는 제안에 제가 이의를 제기하였습니다. “회장을 뽑았다가 그 회장이 물의를 일으킨다든지 하면 위빠싸나 자체가 손상을 받는다. 따라서 회장 없이 간사만 뽑는 것이 좋다.”는 취지의 제 의견이 채택되어 세 사람의 간사를 뽑았습니다.

저도 간사 중의 한 사람으로 선출되었고, 그때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회원들이 모였습니다. 처음 수행 모임을 구성할 때에는 가입자가 40여 명에 이르렀지만 막상 다음 토요일에 모인 사람은 열 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몇 번 나오다가 그만 두는 분도 많았습니다. 항상 고정적으로 나오는 수행자는 다섯 명 정도에 불과하였고, 저는 그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모임은 3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저는 수행을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논리적인 성향이 강한 저에게 위빠싸나‘는 단순히 여러 수행법 중의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마음을 ‘지금-여기(hear and now)’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구도적 결론이었는데, 위빠싸나는 거기에 ‘알아차림(바라봄)’을 추가한 것이었습니다. 저의 논리적 최종 귀결이 위빠싸나인 이상 저는 뒤로 돌아갈 길(퇴로)이 막힌 사람이었습니다.

저 자신의 논리에 의지하여 저는 위빠싸나 모임, 위빠싸나 수행을 꼭 붙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수행은 논리가 아니었습니다. 위빠싸나를 찾아오기까지는 논리가 필요했을지 몰라도 막상 명상을 할 때에는 그 논리는 방해자가 되어 저를 괴롭혔습니다.

생각, 생각, 생각, 생각….

생각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지금 저는 생각을 굳이 부정하거나 내치지 않는(그렇다고 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행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만 당시는 달랐습니다. 거해 스님께서는 생각을 ‘생각’이라고 부르지 않고 ‘망상’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되면 생각은 몹쓸 것이라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렇지만 생각은 몹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입니다. 우리는 생각을 없애려고 할 게 아니라 생각을 보아야(알아야) 합니다. 생각을 몹쓸 것으로 보고 부정하는 마음을 가지면 오히려 생각이 더 치성해지지만 생각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고 내버려 두면 오히려 생각은 잠잠해지는 법입니다.

당시에는 이 이치를 몰랐기 때문에 저는 생각을 끊으려는 의도를 갖고 명상에 임했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도무지 잠잠해지지 않았습니다. 수십 마리의 개구리가 머릿속에서 울어대었습니다.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시간보다 생각에 빠져 지내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명상은 행복도 즐거움도 아니었습니다. 불교는 이론적으로 불교를 알고 수행을 통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지혜를 마른 지혜, 즉 건혜(乾慧)라고 부릅니다만, 그때 제가 갖고 있는 불교에 대한 지식이 그것이었습니다(물론 그나마 지혜가 있었다고 할 경우에 한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저는 몇 차례 집중 수련회에 참석하여 수행에 몰두하려고 애써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생각과 더불어 몸과 의지력이 또한 문제라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저에게는 밤을 샐 정도의 체력도, 잠을 이길 정도의 의지력도 부족하다는 점이 명백해졌습니다.

어느 해 겨울, 해남에 있는 고찰 대흥사(大興寺)에서 일주일간 수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섯 시간인지 일곱 시간인지 차를 운전하여 겨우겨우 도착하였습니다. 피로를 쉬 느끼는 편인 저로서는 만만찮은 도전. 그러나 현저한 진보를 이루고 싶은 마음이 도전을 감행하게 하였습니다.

크게보기수행이 끝나가던 날 거해 스님께서 자신이 5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번역한 원고가 하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법구경》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어 있는, 빠알리 원전으로부터 《법구경》, 정확하게는 《법구경 인연 이야기》(게송만으로 된 《법구경》에 그 게송이 나오게 된 인연 이야기를 덧붙인 것)의 원고가 그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원고를 고려원 출판사에 소개하였습니다. 당시 고려원 출판사에서는 <다르마 총서>라는 이름 아래 깨달음, 또는 불교에 관한 여러 가지 책들을 내어 큰 호응을 얻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또한 저는 고려원 출판사의 주간인 장순용 선생과 교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고를 고려원에 소개하게 되었는데, 고려원에서는 책을 내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서 장 선생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이미 초교까지 진행되었지만 이대로는 도무지 책을 낼 수 없으니 저보고 원고를 재정리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윤문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8개월이 꼬박 걸린 그 작업 기간은 저에게 행운의 시간이었습니다(원고 분량이 5천 장에 이르러 책으로 펴냈을 때 상하권을 합쳐서 1300페이지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공동 번역자로 이름을 올리자는 스님의 제안을 사양하고 제 이름을 넣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글을 정리하면서 저는 초기 불교의 분위기에 심취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약간 동화 같기도 한, 순수하고 다정하며 따뜻하고 아름다운 초기 불교의 모습!

저는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제 사무실에서 오직 그 일에만 매달렸습니다. 거의 삼매지경이었습니다. 그동안 저의 사무실에는 전화 한 통 울리지 않았습니다(혹 전화가 왔다면 그것은 제 아내로부터의 전화였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지요. 저는 ‘입산’을 한 사람이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니 자연 묵언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점심때가 되면 저는 제 집필실 바로 앞에 있는 음식점에 들러 “김치찌개 주세요.”라는 말 한 마디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식사가 끝나자마자 돌아와 다시 일에 몰두하였습니다.

일을 마치고보니 그제서야 정신이 깨어나는 듯 하였습니다. 저는 거해 스님께 일이 다 되었으니 마지막으로 원고를 보아 달라는 전화를 드렸습니다. 약속한 날 김포공항에 들러 원고를 전해드렸습니다.

그 날이 일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원고를 드리고 집에 오니 한밤중,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내와 두 아들이 처가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튿날. 잠에서 깬 저는 오늘은 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무얼 하지? 저 또한 오는 토요일에는 제주도에 있는 처가에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의 시간이 비어 있었습니다.

수행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나서 명상을 시작하였습니다. 피곤하면 자고, 자고나서 다시 명상을 하고. 간간이 집밖에 나가 산책을 하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다음 날도 그렇게 보냈습니다.

셋째 날 몸에서 진동이 왔습니다. 자발기공(自發運動)이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몸이 흔들렸습니다. 얼굴이 씰룩거려지기도 하고, 저절로 스트레칭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처음, 저는 그것이 좀 겁이 났습니다. 자발운동의 원리에 입각한 활원 운동 때문에 고통을 겪는 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부처님을, 위빠싸나 명상의 위대함과 순수성을 믿기로 하였습니다.

거해 스님께 저에게서 일어나는 육체적 현상에 대해 여쭈어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스님은 별다른 대책이나 해석을 제공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나름대로 자발운동 현상에 대해 대처하기로 하였습니다.

자발운동은 약 이십일 정도, 제가 제주도 처가에 가서, 그리고 돌아와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면 저는 그때 그 현상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즐김은 또한 집착이며, 무슨 현상이든 집착을 하면 쉽게 그치지 않는 법입니다. 그때 제가 저의 집착을 알아서 관찰하였더라면 자발운동 현상은 곧 그쳤을 것이고, 저는 그에서 더 나아간 체험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십여 일 뒤, 저는 자발운동을 스스로 멈추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 과정을 통해 몸이 많이 유연해졌습니다. 좌선 자세를 비롯하여 모든 자세가 바르고 안정적인 상태가 되었습니다. 어떤 면, 저의 자발기공 기간은 마음으로 몸을 돌본, 또는 치유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