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시선을 먼저 밖으로 이끄는 기독교

그러나 공자님의 3천 제자 가운데 이런 즐거움의 경지에 이른 사람은 오직 안자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안자를 제외한 다른 어떤 제자도 스승으로부터 안자가 받았던 것 같은 높은 수준의 칭찬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마음을 되돌려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다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해도 그 길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경지, 그 즐거움으로써 외적인 조건을 초월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종교(길)의 가르침 속에 마음을 자기 자신 쪽으로 돌리는 내용이 없을 경우라면 어떻겠습니까? 쉼없이 구심력을 강조하는 공자님의 제자들로서도 그것이 쉽지 않았는데, 하물며 그 공부가 없는 길에서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나타나는, 남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빈발하는 것은, 헐뜯음과 비난이 난무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게 아니겠습니까?

다음은 널리 알려진 ‘어느 성공회 주교의 묘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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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라면 종교 조직에서 매우 높은 직위입니다. 그런데 주교가 될 정도로 신심이 깊었던, 얼핏 볼 때 높은 경지의 수양을 쌓았을 것으로 보이는 분이 죽을 때에 이르러서야 이런 내용을 깨달았다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정도의 깨달음이라면 《논어》를 제대로 읽을 경우 첫날 첫시간에 얻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를 생각해봅니다.

저는 그것이 기독교 철학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대신 하느님(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우선’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나 자신으로서는 하느님 또한 남(타자)에 속하는데, 기독교는 남에게 먼저(그리고 끝까지) 마음을 집중하는, 바꿔 말하여 원심력을 강화하는 체계로 되어 있는 면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사정은 이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런 원심력을 통해서도 지극한 내적 평화를 이룰 수 있으니까요. 훌륭한 기독교인은 하느님에게 자기 자신을 모두 바칩니다. 그럼으로써 그는 삶의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 기독교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신자의 덕목은 하느님에 대한 겸손, 즉 믿음입니다. 기독교적 시각에서 볼 때 이 세상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이고, 나 또한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따라서 나는 하느님 앞에 주장하거나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그릇' 중에서 질그릇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하느님께 “저를 왜 도자기로 만드시지 않고 질그릇으로 만드셨습니까?”라고 따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성 바울의 말인데 비슷한 의미의 말이 《장자》에도 있습니다).

이 기독교 논리를 끝까지 밀고나갈 경우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본질적으로 흙이요 먼지다, 아니 흙과 먼지조차 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되어 기독교 신자는 자기 자신을 신 앞에 던져버리고 자아 소멸, 즉 무아(無我)를 이루게 되며, 이 무아에 의해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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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다시 논하겠습니다만 무아, 즉 자아의 무화 내지 약화는 모든 종교(모든 영적인 길)가 공통적으로 나아가는 방향입니다(불교는 처음부터 무아를 가르칩니다. 예를 들어 《금강경(金剛經)》은 “어떻게 마음을 항복시킬 것인가?”를 주제로 설해지고 있는데, 이때의 항복기심(降伏其心)은 다름아닌 무아의 다른 표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공통점이 생기게 된 것은 인간의 모든 짐이 자아 위에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자아가 존재하는 한 인간의 짐,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땀 흘리고 출산하는 고통이, 불교적으로 말하면 번뇌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알게든 모르게든 모든 종교, 모든 길, 모든 지혜로운 가르침은 자아의 약화 내지는 무화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됩니다. “모든 종교는 결국 같다.”는 말을 저는 액면 그대로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만, “모든 종교는 자아의 약화를 지향한다.”는 제 의견을 수정하거나 폐기할 만한 증거를 저는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기독교 또한 자아의 약화 내지는 무아를 지향하고 있고, 그리하여 기독교는 위대한 종교 중의 하나입니다. 실제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아를 약화시킴으로써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또한 우리는 어제까지 평범했던 기독교인이 자신을 신 앞에 굴복시킴으로써 오늘 갑자기 백 배, 천 배의 영적인 힘을 지닌 존재로 재탄생하는 것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에 비할 때 불교인으로서 그런 수준의 내적 변혁에 성공한 사례를 만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기독교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아를 지향하고 있는데 비해 불교는 처음부터 내놓고 무아를 가르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런 결과가 나온 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습니다만,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기독교 못지 않은 위대한 종교일 수 있는 점은 뒤에서 따로 논할 예정입니다만, 여기에서는 제가 기독교를 단순히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우수함, 기독교의 위대함을 인정하고 존경한다는 것만을 밝혀두기로 하겠습니다.

종교를 논하는 데에는 두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기 자신의 경지를 고려하면서 논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자기 자신의 경지를 차치하고(논외로 하고) 순수한 논리적 입장에서 논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입장에서 저는 기독교를 논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에는 저보다 높은 경지에 이른 분들이 무수히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입장에서야 제가 어떻게 예수님을 논하고 바울을 논하며, 아우구스띤을 말하고, 키에르케고르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이 입장에서 저는 부처님 또한 논할 수 없습니다. 상좌불교와 대승불교도 논할 수 없습니다. 《청정도론(淸淨道論)》에 대해, 남방의 여러 사야도(sayadow, 큰스님)에 대해, 달마(達磨)와 혜능(慧能)에 대해, 용수(龍樹)와 원효(元曉)에 대해 말할 수 없습니다. 화두선(話頭禪)과 염불(念佛) 수행에 대해, 사마타(samatha) 명상과 위빠싸나(vipassana) 명상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의 입장에서는 다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의 주인입니다. 그 주인으로서 나는 종교를 선택해야 하고, 그러자니 여러 종교를 비교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기독교 옆에 불교를 놓아봅니다. 예수님과 부처님을 비교하고, 그밖의 다른 여러 위대한 성자·현인들의 가르침을 곰곰 음미해 봅니다.

물론 나의 비교와 음미는 일천한 수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나 자신의 삶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그나마 갖고 있는 최대한의 지성을 발휘하여 나는 나 자신이 가게 될 길을 고르고, 또 골라야 합니다(부처님께서는 “그대 스스로 잘 조사해보고 그것을 믿으라.”고도 하시고, “그대들은 정신적 스승을 잘 감별한 다음 섬겨라.”고도 하셨습니다).

바로 이 두 번째 입장에서 저는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 한하여 기독교를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때 나의 언급이 비판으로 흐르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비판’일지언정 ‘비난’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나는 기독교를 비판하지만(때로는 찬양합니다) 그 비판이 그릇된 것으로 판명나는 순간 비판을 그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불교를 옹호하지만 나의 옹호가 그릇된 것으로 판명나는 순간 나는 옹호를 그칠 것입니다.

비판은 이성적인 것이지만 비난은 감정적인 것입니다. 나의 기독교 비판은 기독교인을 화나게 하거나 나의 자기 만족을 위해서 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요점은 남을 깎아내리는 데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올바른 길을 찾는데 있을 뿐입니다.

남을 깎아내리는 것은 남에게 나를 알아달라고 하는 심정의 반영입니다.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 동양적(불교적) 진리의 출발점임을 생각할 때 저는 기독교를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그 자체가 이미 내가 선택한 동양적(불교적) 진리를 배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를 비난할 때(비판이 아니라) 나는 원심력을 따르는 소인으로서의 행동을 하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계속>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었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아,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일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