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람은 누구나 남이 알아주기를 바란다

이 이론은 제 나름대로 부처님의 사상을 음미하는 가운데에서 나왔습니다만, 공자님의 사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나아가, 이 이론은 동양에서 발생한 종교(철학)의 일반적인 방향성과 통합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공자님의 사상은 수기(修己), 즉 나를 닦는 것과 안인(安人), 즉 남에게 이익을 베푸는 것이라는 두 국면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공자님의 사상은 “나를 수양한 다음 그 수양된 마음으로 남에게 봉사하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눈은 밖을 향해 열려 있고, 귀와 코와 혀와 피부의 감각 또한 밖의 것을 받아들이는 일을 먼저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들 다섯 감관과 마음을 합쳐서 육입(六入)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에게 먼저 무언가가 들어오고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것이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불교가 이 정신적 능력(과정)을 수(受)라고 수라고 부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그대로입니다.

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은 발신자(發信者)이기 이전에 수신자(受信者)라는 사실입니다. 즉, 우리는 먼저 남과 세상을 보고 듣고… 생각합니다. 이 기초적인 조건 때문에 사람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가 어려워지는 결과가 나옵니다.

만일 사람의 눈· 귀· 코· 혀· 피부가 밖으로부터 접촉해 오는 것을 먼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라면, 즉 안을 돌아보아 자기 자신부터 살피도록 되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요?

그랬더라면 모든 사람이 다 구도자가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랬더라면 아마도 모든 사람은 아니더라도 거의 모든 사람이 구도자가 되어 공자님이 말씀하신 수기로부터 삶을 시작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기 때문에 공자님이 굳이 수기를 먼저 한 다음에 그것을 기초로 안인에 나서라고 하신 것일 터입니다.

이때 자기 자신을 먼저 닦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을 역행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어진 조건은 남과 세상부터 바라보도록 되어 있지만 그것을 거슬러 먼저 나 자신부터 돌아보는 것이 수기이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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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그 역행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공자님을 비롯한 현자들의 가르침을 들은 다음 자기 자신을 돌아보려고 하지만 그게 쉽지 않습니다. 저는 마음을 되돌려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힘을‘구심력(求心力)’이라고 부릅니다만, 마음은 내버려 두면 구심력보다는 ‘원심력(遠心力)’, 즉 대상 쪽으로 끌려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공자님의 제자들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공자님이 위대한 모범자로서 눈앞에 앉아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공자님의 제자들 또한 안을 향하는 구심력보다는 밖으로 향하는 원심력 쪽으로 마음이 쏠렸습니다.

그런 사정은 《논어(論語)》를 일별해 보기만 해도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논어》에서 공자님은 탄식합니다. “나에게 3년을 배우고 녹(祿)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수기 공부가 다 익지 않았는데도 밖으로 나가려 한다.”, 이런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사정을 배경으로 공자님은 자주 말씀하고 계십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나의 실력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을 걱정하라.” 이 말의 의미 또한 “자기 수양이 깊어지면(배움이 충실해지면) 자연히 남이 알아주게 된다. 그러니 밖으로 향하는 마음을 돌려 철저하게 자기 자신부터 수양하라(공부하라).”는 뜻일 터입니다

여러분은 《논어》의 첫말씀을 잘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논어》의 첫말씀은“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이고, 그 의미는 “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입니다(이 구절을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로 읽는 분도 계신데 저는 그 독법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경우 앞의 절이 조건절이 되어 그 조건 때문에 즐거움이 일어난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앞절은 조건절이 아닙니다. 즉, 배우고 익히고 나면 그 결과로서 기쁨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익히는 그 과정 자체가 기쁘다는 것이 이 말씀의 참된 의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과’의 기쁨이 아닌‘과정’의 기쁨은 명상 수행에서도 매우 중요한 기본적인 마음가짐이기 때문에 저는 뒤에서 다시 한 번 이 문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그런데 《논어》의 첫절에는 이 말씀 말고도 두 말씀이 더 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까지는 여러분도 아실 줄 압니다. 두 번째 말씀은 “유붕(有朋) 자원방래(自遠方來) 불역낙호(不亦樂乎)!”이고, 그 의미는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입니다.

그렇지만 세 번째 구절까지 아시는 분은 드물더군요. 그런데 바로 이 세 번째 구절이 제가 지금 말씀드리고 있는, 원심력을 돌려 구심력으로 돌아오는 수행과 관련이 있습니다.

《논어》 첫편 첫절의 세 번째 구절은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이고, 의미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언짢아하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니냐?”입니다.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

그것은 마음이 원심력에 쏠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원심력에 저항하는 것으로부터 마음의 수양이 시작됩니다. “남이 알아주는 것을 바라지 마라, 남이 주기를 기대하지 마라.”가 《논어》의 첫절 세 번째 말씀의 의미이고, 이것이 곧 수기의 기초인 것입니다.

공자 사상을 따르기로 결심한 선비는 처음, 배우고 익히기를 시작하고 그것을 기쁨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그 길을 함께 걷는 좋은 벗이 있습니다. 그 벗이 선비를 찾아옵니다. 그때 선비는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벗은 누구입니까? 벗은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벗을 지기(知己)라고 하는 것인데, 세 번째 말씀에 이르면 공자님은 벗의 가치까지도 부정하는 듯이 보입니다. 남이 알아주는 것을 바라지 말라는 것은 곧 벗에게도 기대를 걸지 말라는 의미일 수밖에 없으니까 말입니다.

타자에 대한 일체의 기대를 포기하는 것.

참 차갑게 느껴지는 이런 마음가짐이야말로 수양(수행)의 기초입니다(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러 이 ‘차가움’은 ‘따뜻함’에 이르게 됩니다). 당연하게도 이 포기가 타자를 미워하거나 싫어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먼저 나 자신으로 확실하게 돌아오기 위해서, 먼저 수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타자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는 것뿐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만, 그러나 그 포기는 어렵습니다. 아주 어렵습니다. 매우 어렵습니다. 지극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공자님께서도 그 어려움을 감안하여 “언짢아하지 않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유가(儒家) 철학에 따르면 사람은 수양의 수준에 따라 다음과 같이 나뉩니다.

(1) 소인(小人)

(2) 유사(儒士)

(3) 군자(君子)

(4) 현인(賢人)

(5) 성인(聖人)

먼저 소인은, 지금까지의 논의에 비추어 말한다면 마음이 밖을 향해 있는, 자기를 돌아보지 않는, 자기를 수양하지 않는 지극히 원심적인 사람입니다.

그랬던 어떤 사람이 가르침을 받고 수양 길에 접어듭니다. 그가 유사, 즉 선비입니다. 그렇지만 아직 그는 초심 수행자에 불과합니다. 그가 어느 정도 수양이 되어 남의 모범이 되면 그때의 그의 경지를 가리키는 말이 바로 군자입니다.

그렇다면 군자는 어느 정도의 사람일까요? 역시 《논어》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군자에 대한 공자님의 말씀은 무수히 많지만 저는 그중에서 “무엇이 잘못되었을 때 군자는 그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군자구저기 소인구저인: 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라는 말씀을 골라 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군자라고는 해도 잘못을 자기에게서 찾는 일이 반드시 즐거운 것은 아닌가 봅니다. 앞에서 인용한 “인부지이불온”을 보십시오. 여기에 쓰인 온(慍)이라는 글자는 성낼온 자입니다. 그렇지만 그 성냄은 성낼노(怒) 자의 성냄과는 다릅니다. 은근히 언짢아하는 정도의 성냄, 온은 그런 의미의 글자입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소인은 성을 내고 선비는 언짢아합니다. 그렇지만 군자는 그 성을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군자는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을 때 언짢아지려는 마음을 은근히 억제하면서 참다운 길에 대해, 구심력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음미합니다.

바꿔 말해서 그때 군자의 마음이 즐겁지는 않습니다. 그가 즐거울 때는 자기와 같은 수준의 벗이 찾아올 때입니다. 혼자 있을 때는 언짢지 않는 정도이지만, 벗이 찾아오면 아연 생기가 돋고 활기가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입니다.

그에 비해 현자는 다릅니다. 그는 남이 알아주지 않을 때 굳이 마음을 억누를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 안에 촉촉한 기운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건조한 사막 지대는 이제 끝났습니다. 오아시스를 만났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내 입 하나를 축일 정도의 작은 우물을 만났습니다.

이제 내면에서 우러나는 도의 기쁨으로서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대체할 만한 힘이 생겼습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어떠냐, 나는 자신을 수양하는 공부 자체로부터 생겨나는 기쁨을 맛보고 있지 않느냐?”인 것입니다.

이 또한 《논어》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논어》에는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낙지자: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에 대입하여 말하면 군자는 도에 대해 ‘아는(知)’ 사람이고, 현자는 그것을 ‘좋아하는(好)’ 사람이며, 성인은 그것을 ‘즐기는(樂)’ 사람인 것입니다.

저는 《논어》를 읽을 때 가장 유념해서 읽어야 할 글자(단어) 중 하나가 즐거울낙(樂) 자라고 생각합니다. 앞에 인용한 구절에서도 보듯이 즐거움은 도의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 성인의 심정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거친 밥에 맹물을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워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으니, 옳지 못한 부귀는 나에 있어서 뜬 구름 같다(자왈 반소사음수 곡굉이침지 낙역재기중의 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 子曰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공자님의 이 말씀에서도 즐거울낙 자는 당신의 홀가분한(해탈한?) 심정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또한 공자님께서 유일하게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인정했던 제자 안회(顔回)에 대한 찬탄에서도 즐거울낙 자가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질구나, 회여! 한 그릇 밥과 한 바가지 물로 누추한 곳에 살면 남들은 그 걱정을 견디지 못하거늘, 회는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으니, 어질구나, 회여!(자왈 현재회야 일단사일표음 재누항 인불감기우 회야 불개기락 현재 회야: 子曰 賢哉 回也 一簞食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 不改其樂 賢哉 回也)”

인용한 말씀에서도 보듯이 공자님과 안자(안회)가 누리는 즐거움은 외적 조건과 상관이 없습니다. “거친 밥에 맹물을 마시고 팔을 베고 눕는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님은 즐겁습니다. ‘옳지 않은 부귀’를 뜬구름처럼 멀리 물리친 상태에서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안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한 그릇(삼태기) 밥과 한 바가지 물로 뒷골목에서 사는” 안자. 이처럼 비루한 경제 조건에서 즐거울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런 조건에 처하면 모든 사람이 전전긍긍 우왕좌왕, ‘걱정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안자는 다릅니다. 그런 조건에서도 안자는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습니다.” 이 말씀으로 보아 안자는 이미 즐거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외적 조건이 바뀐 지금 이 시점에서도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습니다.”

공자님과 안자가 누린 즐거움.

재론의 여지없이 그것은 수기를 마친 사람으로서의 즐거움입니다. 외적 조건에 의지하여 일어나는 즐거움이 아니라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무조건적인 즐거움, 또는 오직 수양만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난 즐거움입니다.

그 즐거움은 외적인 조건에 의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돈이라든가 높은 직위라든가 여자(남자)라든가 명예라든가 권력이라든가 하는 외적 조건과 상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세속이 아니라 초세속적인 것이며, 그래서 세속적인 것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갖습니다.

비유하자면 그것은 한 송이의 꽃이 자신의 내면에 향기를 품는 것과 같습니다. 꽃은 벌나비를 위해 향기를 품은 것이 아닙니다. 벌나비(바깥 대상)를 멀리 물리쳐 잊은 상태에서 오로지 자기 자신 속의 불순성, 자기 자신 속의 탐진치(貪瞋痴)를 대상으로 치열하게 투쟁할 뿐입니다.

그럼으로써 마침내 마음의 모든 독성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마음 안에서 향기가 우러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독성이 적어져 가는 가운데 그는 군자로서의 ‘언짢아 하지 않음’이라는 작은 복을 누렸습니다. 향기가 생기는 첫단계에서 그는 현자(도를 좋아하는 자)로서의 적으나마의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성자(도를 즐기는 자)로서의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 행복으로써 공자는 부귀를 뜬구름으로 여길 수 있었습니다. 그 수양의 힘이 얼마나 강했던지 안자는 가난하게 뒷골목에 살면서도 ‘즐거움을 고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경지 쪽으로 마음의 방향과 삶의 방향을 돌리는 것, 그것이 수기이고 또한 수양(수행)의 출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