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연재 > 김정빈 시인의 감꽃마을
침 묵―타고르의 임종시의 시상을 빌려서
2008-09-28 (일) 00:00
아침
분홍빛 노을 떠도는 아침
구름은 장미꽃 짙은 골짜기로 흘러갑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꽃 한 송이가 나직하게 묻습니다.
산기슭, 고요하게 맑은 능금맛 속에서
그러나 장미는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합니다.
낮
거울 같은 고요, 여름 호숫가
백조는 고개를 숙이고 수면을 응시합니다.
―무엇이 보이는지요?
어린 갈대 한 포기가 속삭이듯 묻습니다.
은빛 햇살이 내리는 한낮의 눈부심 속에서
그러나 갈대는 가냘픈 바람소리 하나 듣지 못합니다.
저녁
바닷가, 꾸중 듣던 일은 까마득 잊고
아기는 모래 장난을 하며 놀고 있습니다.
―오, 정녕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
기쁨과 함께 눈물 속에서 엄마가 묻습니다.
저녁 어스름이 감싸 안은 대지의 끝에서
그러나 아기는 초승달처럼 조그맣게 웃을 뿐입니다.
밤
천만 년 드높은 궁륭 한 모서리
문득 별똥별 하나가 아득히 사라져 갑니다.
―오, 정녕 너는 어디로 가느냐?
길게 잠긴 하늘목소리가 묵직하게 묻습니다.
흩뿌린 듯 별보석들의 눈부신 장엄 속에서
그러나 그 사라짐으로부터는 어떤 메아리도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 타고르의 임종시를 읽고나서 감동 속에 시상을 음미하다가 어느 순간에 문득 태어난 시이다. 그래서 시상이 타고르의 것과 매우 닮아 있는데, 그러나 어떠랴. 그토록 위대한 시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그 결과가 모방에 가까운 데 이른다고 할지라도 충분히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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