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연재 > 김상현의 에세이삼국유사

서방정토(西方淨土)를 향해 두 손 모으면

| | 2008-05-06 (화) 00:00

김홍도의 念佛西昇크게보기

이 풍진 세상을 고해(苦海)라 했던가? 사바세계는 근심도 많고 어려움도 많다. 바람 잘 날 없으니 파도 또한 높고, 난파당한 사람들은 물결 따라 부침(浮沈)한다. 욕심으로 오염된 세상은 예토(穢土), 그래서 깨끗한 나라 정토(淨土)는 우리의 희망이다.

피안(彼岸)의 땅은 서쪽으로 십만 억 국토를 지나서 있다고 했다. 아미타불이 계신 그 나라는 극락세계. 서방정토. 안락국. 안양(安養). 여러 이름으로 불려도 그곳은 이름처럼 편안한 곳. 어떤 괴로움도 없고 오직 즐거움만 있는 곳. 보배로 된 난간이 있고, 칠보로 된 연못이 있으며, 수많은 연꽃이 피어 있는 곳. 아름다운 천상의 음악과 새들의 노래가 있는 곳, 햇빛 아늑하고 바람도 시원한, 그런 멋진 나라가 서쪽 저 넘어 아득한 곳에 있다고 했다.

이 소식에 접한 신라 사람들, 그들도 그 멋진 나라에 가기를 원했다. 원왕생(願往生). 서방정토에의 왕생을 간절히 원했다.

달아 이제 서방(西方)까지 가셔서

무량수불전(無量壽佛前)에 일러다가 사뢰소서.

다짐 깊으신 존전(尊前)을 우러러 두 손을 모아,

원왕생(願往生) 원왕생 그리워하는 사람 있다고 아뢰소서.

아아! 이 몸 남겨두고 四十八大願 이루실까.

광덕(廣德)이 불렀던 향가 원왕생가다. 문무왕(661-680) 때의 광덕은 분황사 서쪽 마을에 은거하여 신 만드는 것으로 업을 삼고 처자를 데리고 살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수행했다. 밤마다 단정히 앉아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칭념(稱念)하거나, 16관(觀)을 하면서. 그리고 언제나 서방정토에 왕생할 것을 발원하며 노래했다. 법장보살은 일찍이 48대원을 발하면서 약속했다. 내 이름을 부르는 이 있다면 달려가 구해 주고, 만약 한 사람이라도 구하지 못한다면 성불까지도 포기하겠노라고. ‘아아, 이 몸 버려두고 48대원 이루실까’라고 노래한 까닭이다. 어느 날 광덕은 서방정토로 왕생했다. 구름 밖에서 하늘의 음악소리가 들리고 광명이 땅에까지 뻗친 저녁 무렵에.

8세기 중엽 경덕왕(742-765) 때의 일이다. 양산의 포천산(布川山)에는 사람이 깎아 만든 것 같은 기이한 바위굴이 있었다. 그 굴에 사는 다섯 명의 비구가 수십 년 동안 아미타불을 염송(念誦)하며 극락세계로의 왕생하기를 원했다. 어느 날 성중(聖衆)이 서쪽으로부터 와서 그들을 맞이했다. 그들은 각기 연화대(蓮花臺)에 앉아 하늘에 올라 서방으로 떠나갔다. 가다가 통도사 문밖에 이르러서 얼마 동안 머물렀다. 하늘의 음악 소리에 통도사 승려들이 나와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다섯 비구는 무상(無常)과 고(苦)와 공(空)의 이치를 설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리고 세상은 얽히고설킨 거대한 거물,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연기. 굳이 나라고 내 세울 것은 없으니 공이다. 무상과 공을 생각하지 않으면 고통이 따를 것이다. 이런 설법이었을까? 한바탕 설법을 끝낸 그들은 유해를 벗어버리고 큰 광명을 내쏘면서 서쪽으로 가버렸다. 미련 없이 육신을 벗어던지고 크고 밝은 빛을 발하면서 서방 극락세계로 갔다. 마치 우주선이 추진로켓을 떨어뜨리고 불기둥을 내뿜으며 우주를 향해 치솟듯이.

여종 욱면(郁面)의 염불서승(念佛西昇). 지성으로 염불하던 욱면이 서쪽 하늘로 날아갔다는 이야기다.

미타사(彌陀寺)에 만일회(萬日會)가 개설된 것은 대개 9세기 초, 서방정토로의 왕생을 발원하며 만일을 기약하고 염불을 하는 모임이었다. 귀진(貴珍) 등 도속(道俗) 수십 인이 참여하는 결사(結社)였다. 귀진의 집에는 욱면이라는 계집종이 있었는데, 그는 주인을 따라 절로 가면 마당에 서서 염불했다. 주인은 그 꼴이 싫었다. 그래서 곡식 두 섬을 하루 저녁에 다 찧게 했지만, 종은 초저녁에 다 끝내고는 절로 달려가 염불했다. 그의 염불은 간절했다. 마당 좌우에 긴 말뚝을 세우고 두 손바닥을 뚫어 노끈으로 꿰어 말뚝 위에 매고 합장하고 염불할 정도로. 공중에 하늘의 외침이 있기를, “욱면 낭자는 법당에 들어가서 염불하라.” 절의 대중이 그를 법당에서 예법에 따라 정진하도록 했다.

얼마 있지 않아 서쪽으로부터 천악(天樂)이 들려왔다. 욱면은 몸을 솟구쳐 법당의 대들보를 뚫고 날아갔다. 서쪽 교외에 이르자 육신을 버리고 진신(眞身)으로 변해 연화대(蓮花臺)에 앉아 큰 광명(光明)을 내쏘면서 천천히 서쪽을 향해 날아갔다. 하늘의 음악은 그치지 않았다.

크게보기

한 번 상상해 보라. 미리부터 황당한 이야기로 치부해버리지 말고. 환상적인 만화영화를 보듯 마음 편하게. 현실의 삶이란 얼마나 부자유스러운가? 그러기에 하루에도 열두 번 꿈꾸는 자유, 그리고 초월. 우리를 묶어둔 지상, 우리를 가두고 있는 지붕. 그래서 꿈꾸는 것이다. 지붕을 뚫고 나비인양 공중을 자유로이 나는 꿈을. 엘리아데의 말처럼, 지붕의 파괴와 비상(飛翔), 그것은 초월과 절대적 자유의 상징이다. 하루 저녁에 두 섬의 곡식을 찧어야만 했던 고달픈 현실, 종이라는 무거운 삶의 굴레, 어찌 욱면이 그 굴레 벗고 싶지 않았겠는가? 자유의 날개 달고 싶지 않았겠는가? 어찌 고달픈 삶의 짐 벗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러기에 손바닥을 뚫는 아픔일랑 잊을 정도로 간절한 염원, 원왕생. 그는 이미 공중을 솟구쳐 미타사의 법당의 지붕을 뚫을 때 자유를 얻은 것. 그리고는 종이라는 육신을 벗어 던졌다. 마치 허물을 벗듯 인간의 여러 조건과 제약으로부터 초월한 것이었다. 꽃방석, 그것도 연꽃으로 만든 연화대좌에 올라앉은 욱면, 그는 이미 구박받던 종은 아니었다. 하늘의 멋진 음악 소리를 들으며, 아득히 먼 서방정토를 향해 날아가는 해탈한 인간이었다. 절대 자유의 날개 짓하며 제약 많은 존재에서 이제는 더 이상 제약 없는 존재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었다.

서방정토에로의 왕생, 그것은 신라 사람들의 꿈이었다. 그 꿈으로 하여 그들은 무거운 육신 벗어던지고 연화대좌에 올라 앉아 하늘의 음악 들으며 서쪽을 향해 날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광덕과 욱면의 간절한 기도 소리 아련히 들려온다. 왕생설화가 들려주는 상징의 언어 그 너머로. 원왕생 원왕생 ……

김 상 현(동국대 교수)



기사에 만족하셨습니까?
자발적 유료 독자에 동참해 주십시오.


이전   다음
Comments
krmom 2008-05-06 19:13:54
답변  
역시 김홍도의 '염불서승'은 최고의 그림이예요..
비밀글

이름 패스워드

© 미디어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