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연재 > 금강스님의 茶談禪談

새벽, 부도전을 걸으며

| | 2008-04-11 (금) 00:00

여명을 만끽합니다.

어스름한 새벽 부도전 가늘 길에서

오랜 친구처럼 찾아오는 여명을 맞이합니다.

고요하게 아주 천천히 걷습니다.

귀에 들려오는 휘파람새, 박새, 곤즐박이들의 상쾌한 노래 소리.

눈에 들어오는 땅에 수북이 쌓인 동백꽃들과 진달래 꽃잎들,

그리고 나무에 돋아난 연초록의 새움들.

코에 살며시 다가오는 숲의 봄내음들.

살갗을 스치는 상쾌한 바람.

조심스런 발자욱 소리와 가벼운 숨소리.

그리고 마음 깊숙이에서 일렁이는 고요한 소리.

텅 빈 우주공간에 허공을 밟아 나가듯,

내면 깊숙이 침잠하여 한 점에 머무르는 듯,

밖의 경계보다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혹시 행동과 마음에 흐트러짐이 없는지 살핍니다.

귀와 눈과 코와 입과 피부와 마음의 빗장을 다 열어 놓으라.

이렇게 오감을 다 열고,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라.

여러 사람들과 부도전 길을 걸을 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를

지금 이 순간 나를 향해 던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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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틱낫한 스님과 백양사에서 함께 걸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그것을 '걷기명상'이라고 불렀지요.

이름을 무엇으로 정하든 행동하는 순간순간

고요하게 마음의 움직임을 자세하게 관찰하는 것은

우리의 참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걷는 다리를 관찰하고, 보이는 것들을 집착 없이 관찰하고,

들리는 것들의 순간에 머물며 걷는다면

현재를 바로 볼 줄 아는 직관이 생겨나게 됩니다.

현재의 순간을 20%, 지난 일이나 앞으로의 일에 80%의 마음을 쓴다면

그 사람은 평생 20%의 삶에 머물 것입니다.

나중에 안정되면 그때 부모님께 효도해야지 하는 마음과 같은 것이지요.

현재를 100%로 인식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그 사람은 항상 깨어있는 사람으로 하는 일마다 기쁨이 넘치고,

만나는 사람마다 새로울 것입니다.

단 한번뿐인 이 삶을 언제까지 ∼했더라면하고 후회하며 살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가라는 말처럼

산책을 하든, 직장에서 일을 하든, 집에서 밥을 먹든

그 순간에 집중하는 힘이 모아진다면

자신들의 일에 실수는 없을 것입니다.

땅 끝에 살다보니 삶에 지치고 일상을 일탈하고자하는 사람들이 찾아오곤 합니다.

갈수록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땅끝이 유명해서인지 내가 사는 절이 유명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인생의 막다른 길을 만나

땅끝이라는 곳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고자하는 것이지요.

오래도록 역사의 변두리로 취급되던 땅끝이

세상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땅이 되었으니 아이러니하지요.

훌륭한 인심과 아름다운 자연에

깨어있는 마음 씀을 더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조금씩 달라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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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희망 2008-04-12 17:12:40
답변  
스님의 글은 언제나 맑고 평온하군요. 숲의 봄내음 맡으며 부도전의 여명을 함께 맞이해보고픈 맘 간절합니다.
다솔사 2008-04-14 09:52:41
답변  
글을 읽는 내내 저도 천천히 부도전을 걸으며 그 자연과 우주와 내가 하나임을 알게 됩니다. 그 바쁜 와중에도 항상 한결같으신 스님의 모습에서 우린 희망을 꿈꿉니다.
송숙희 2008-05-18 10:33:51
답변  
땅끝 그 어질어질한 곳에서 서울까지 걷기 코스를 개발하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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