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29 (월) 14:17
<외도를 한 김동>
장안동 삼불암 못미처에 널리 알려진 울소가 있다. 바위에는《명연》(울리는 못)이라고 새겨있고 려조초의 기록에는 《울연》 또는《운담》이라고 하였다.
‘울소’의 ‘울’은 소리가 울린다는 우리 말 소리의 한자표기이고 ‘운담’의 ‘운’은 소리가 화합한다는 뜻을 반영하고 있다. 확실히 울소에서는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여느 곳과는 유별나게 들리며 손뼉을 쳐도 펑펑 울린다.
울소의 이러한 특성에서 갖가지 전설이 생겨났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가공되어 여러 갈래의 이야기로 번져갔다.
고려 때에 울소에서 좀 떨어진 골짜기에 ‘김동사’라는 작은 절간이 있었다. 절은 작아도 모든 것이 아주 풍요하였다. 그것은 이 절을 짓고 사는 주지가 바로 김동이라는 개경의 이름난 부자였기 때문이다. 김동은 어렸을 적부터 불교를 믿었는데 장사를 하여 돈을 많이 벌게 되면서 독실한 불교신자로 되었다. 장사에서 노상 이득만 보고 갑부로 될 수 있는 것이 전적으로 부처님의 덕이라고 믿고 있는 그는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리려면 절을 짓고 중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김동사라는 절간은 이렇게 되어 생겨났다.
이 절에는 김동의 재산을 엿보고 많은 중들이 찾아왔으며 대웅전에는 크고 작은 금부처들이 10여개나 앉혀있었다. 재를 올려도 금강산의 4대 절로 이르는 이웃의 장안사, 표훈사보다 더 요란했고 불공도 놀라울 정도로 사치하였다. 절간 경비를 보충하기 위하여 집에서는 매일과 같이 짐수레들이 줄지어왔는데 수레행렬은 개경까지 늘어설 정도였다.
김동은 자기만큼 부처에 지성을 다하는 사람이 없다고 자부했으며 불원간 부처의 현신을 보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개경의 자기 집 재산이 비로봉 높이로 쌓여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교전파를 위하여 금강산에 와있던 지공이라는 술사가 내금강에 찾아왔다. 김동은 자기 절에 들린 지공에게 모든 성의를 다하였다.
그런데 웬 일인지 지공은 매우 못 마땅한 눈치로 김동사의 안팎을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김동을 불러 하는 말이 “김주사는 부처님을 잘못 섬기고 있소. 부처를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외도(外道)를 하고 있단 말이요.” 하는 것이었다. 불교도는 불교이외의 교를 외도라고 하였다.
이 말은 김동에게 있어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소승은 모든 재산을 털어 부처님을 섬기고 있소이다. 4대 절간에 세워진 공덕비의 임자가운데도 저만큼 독실한 신자는 없는 줄 아오. 하물며 나더러 외도를 하고 있다니 이것은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인줄 아오.”
김동은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원통함을 하소연하였다. 듣고만 있던 지공은 웅글은 목소리로 김동에게 말했다.
“당신의 말을 듣고서는 누가 옳은지 알 수 없구려. 그러니 이일을 하늘의 판결에 맡김이 어떠하오. 만일 당신이 옳고 내가 그르다면 내가 천벌을 받을 것이고 내가 옳고 당신이 그르다면 당신이 천벌을 받게 될 것이요.”
김동이 쾌히 승낙하였다.
그날 밤 김동은 자기 집에서 판결을 기다렸고 지공은 마하연에 가서 앉아 있었다. 그런데 과연 새날이 다가올 무렵 갑자기 번개가 번쩍하더니 이러 지축을 뒤흔드는 우뢰소리가 나면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삽시에 온 골짜기가 물속에 잠겼으며 바위들이 굴러 내리는 소리가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김동은 “무슨 변이 일어나는가 보다.” 하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뒷산이 무너지면서 바위들이 절간을 깔아 뭉겠다. 김동사의 건물과 종, 부처 그리고 모든 중들과 재산이 밀려갔으며 김동도 그 속에 끼어 울소에 빠져죽었다. 김동이 이처럼 천벌을 받게 된 것은 사치와 욕심으로 그 마음이 순결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슬피오는 울소>
장안사에 나옹조사가 살고 표훈사에는 김동거사가 살고 있었다.
나옹은 금강산에서 이름난 중이었고 모든 중들의 스승뻘 되는 위치에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차츰 제자들 가운데서 우두머리(상좌라고 함)로 될 사람에 대하여 걱정하게 되었다. 그는 어느모로 보나 표훈사에 있는 김동거사가 가장 알맞춤한 것 같아서 그를 상좌로 정하고 각별한 관심을 돌려 불교교리를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김동은 차츰 야심이 커져서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빨리 자기 스승인 나옹조사를 금강산에서 내쫓고 자기가 그 자리에 앉을 수 있겠는가에 대해서만 골똘하였다.
나옹조사는 김동의 이 속내를 알아 차렸다.
어느 날 김동을 부른 나옹은 내색을 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총명하고 지략이 깊기에 나는 자네를 나의 상좌로 삼은 것이네. 이제는 내 나이도 많아 조사의 자리를 자네에게 넘겨줄까 하네. 헌데 오늘 자네 재간을 시험해 보아야 하겠네.”
김동의 표정을 살피며 조사는 계속하였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나와 부처조각내기를 하자는 것이네. 자네가 이기면 나는 자리를 넘겨주고 금강산을 떠나겠네. 그러나 자네가 지면 그럴 자격이 없는 것으로 알아두게. 알겠나?”
김동은 스승의 이 제의에 동의하였다. 그는 이 노인과 경쟁하면 문제없이 이기리라고 확신하였던 것이다.
다음날 조각경쟁이 벌어졌다.
나옹은 표훈동 입구에 서 있는 바위앞면에 3구의 큰 부처를 새겼고 김동은 그 바위뒷면에 60구의 작은 부처를 새겼다. 다 새긴 날 그들은 장안사, 표훈사의 여러 중들과 함께 창작품을 검열 하였다. 나옹조사의 3불은 나무랄 데 없는 걸작이어서 모든 중들의 한결같은 감탄을 자아냈다. 미륵과 석가, 아미타의 세 부처는 모두가 살아있는 것 같고 웃는 눈과 덩실한 코, 열릴듯말듯 한 입을 보면 금시 사람에게 무엇인가 말하려는 것 같았다.
그런데 김동의 작품은 졸작일 뿐 아니라 60불 가운데 한 부처는 귀가 없었다. “아니, 이 부처님은 귀가 없네그려. 귀없는 부처님도 있는가?”
모두 혀를 찼다. 내기에서 거사는 졌다. 지고 보니 스님의 자리를 탐낸 자기의 더러운 성품에 모진 가책을 느끼었다. 더욱이 스님이 자기의 야심을 알아차리고 이 경기를 조직하였다고 생각하니 더는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없었다. 김동은 슬며시 빠져나와 울소로 갔다. 형제암 위에 올라서니 발밑에서는 시퍼런 소가 감돌고 있었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사랑하는 자식들의 모습을 그려본 다음 울소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
뒤늦게야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그의 아들 3형제는 못가에 엎드려 “아버지!” 하고 부르며 슬피 울다가 물에 뛰어 들어갔다. 이때 하늘에서 불시에 뇌성벽력이 울리고 폭우가 쏟아졌다.
날이 개인 후 울소에는 길게 누운 큰 바위가 생겨났고 그 바위쪽을 향해 엎드려있는 세 바위가 물위에 떠 올랐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큰 바위를 감동의 ‘시체바위’라 하고 작은 세 바위는 그의 아들 ‘삼형제바위’라 하였고 소에 떨어지는 폭포는 삼형제의 울음소리를 닮아 구슬픈 소리를 낸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명연’은 울린다는 ‘울소’로서가 아니라 슬치 운다는 ‘울소’로 뜻이 바뀌었다.
<라화의 모함>
표훈사에 나옹조사의 먼 동생벌이 되는 주지 라화가 살고 있었고 표훈사의 아래 골짜기에 있는 김동사에는 김동거사가 주지로 있었다.
라화는 나옹조사의 권위를 믿고 거들먹거리기를 좋아하였으며 불경공부도 하지 않았거니와 절간일도 잘 돌보지 않아 동료들 속에서도 미움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김동은 학식도 있거니와 재간이 또한 뛰어났으며 덕망도 높았다. 이것으로 하여 김동은 라화의 시기질투대상으로 되었다.
라화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동을 헐뜯었으니 그의 이 못난 행위는 오히려 사람들의 비난과 혐오를 불러일으켰으며 자신을 더욱더 고독한 처지에 빠뜨려 놓았다. 궁지에 빠진 라화는 권세에 의탁하여 김동을 없애치울 계책까지 꾸미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옹조사가 찾아와 라화와 김동을 불러다놓고 표훈사입구에 있는 선바위에 부처를 새길 것을 당부하였다.
“자네들도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표훈사는 내금강에서 장안사 다음으로 가는 이름난 절이네. 그런데 장안사에서 표훈동으로 넘어오는 지경에 아무런 표식도 없구려. 내 생각에는 영선교 옆에 있는 선바위를 다듬어 부처님을 새겼으면 하오. 정면에는 미륵존불과 석가불, 아미타불을 모시고 모서리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그리고 뒷면에는 60나한상을 새기는 것이 좋을가 하오.”
두 제자는 정중하게 읍하면서 스님의 명을 기어이 수행할 것을 속다짐하였다.
그후 라화는 김동이더러 “자네는 재간도 있고 덕망도 높으니 정면 세존불을 새기는 것이 어떠냐?”고 묻고 “만일 우리들이 스님의 기대를 어기어 제 날짜에 새기지 못하면 살아갈 면목이 없는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라고 위협하였다.
김동은 하는 수 없이 그의 제의에 동의하였다.
그는 모든 정성을 다 들여 한 홈 한 홈 파나갔다.
그런데 라화는 잔꾀를 부리었다. 어디서 재간 있는 중들을 불러다가 재빨리 60나한상과 모서리의 두 불상을 새겨놓고 김동을 재촉하였다.
김동은 운명의 마지막시각이 다가왔다는 것을 짐작하였다. 그래서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바에는 후세에 길이 전할 걸작을 남겨놓고 죽는 것이 옳겠다고 생각하고 삼불조각에 더욱 정력을 쏟아 부었다. 드디어 삼불이 완성되었다. 그의 조각술은 확실히 정교하였다. 미륵과 석가와 아미타의 세 부처는 모두다 살아있는 것 같고 웃는 눈과 덩실한 코, 열릴 듯 말 듯 한 입을 보면 금시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말하려는 것 같았다. 모여온 사람들 모두가 한결같이 김동의 기술과 정성에 대하여 칭찬하였고 라화의 서툰 솜씨를 비웃었다. 김동은 기뻤다.
사람들의 절찬보다 진심을 알아주는 그 마음이 더욱 고마웠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미 약속한 완성날짜를 어긴 김동은 그 죄를 죽음으로 속죄하려고 말없이 울소쪽으로 걸어갔다. (그 다음은 ‘슬피 우는 울소’의 마지막과 같으므로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