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부처님이 오늘날 태어나셨다면,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

다른 남자가 생겼다며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를 둔 남자에게, 목숨처럼 사랑하던 연인에게 버림받은 여인에게, 9∙11테러로 가족을 잃은 이에게 부처님은 무슨 이야기를 하셨을까.

수년전 특이한 제목의 책 한권을 만나 읽는 기회가 있었다. 『유마와 수자타의 대화』. 불교계에는 전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김일수라는 작가가 쓴 그 책은 당시 불교계 출판 담당 기자들의 입에 한참 오르내렸다.

“이런 내공의 인물이 숨어있었다니….”

마치 부처님이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절 한귀퉁이에서 만난 노스님이 울고 있는 어린애를 달래듯이 이 책은 부처님의 말씀을 너무도 쉽고 간결하게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그를 뒤늦게 수소문했지만 그를 인터뷰하기에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 그 책이 출간되기 이태전 그는 이생에서의 모든 인연을 끊고 떠나가 버렸던 것이다.

그로부터 3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번에는 『유마와 수자타의 대화』가 완간됐다는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그 책이 그렇게 세상에 묻히는 것이 안타까웠던 도피안사 송암 스님이 고 김일수 씨가 남긴 유고 원고들을 모아 유마와 수자타의 대화와 함께 네 권의 책으로 출간했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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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와 수자타의 대화 완간을 기념해 9월 28일 안성 도피안사에서는 조촐한 완간기념회가 열렸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고 김일수 작가의 부인 이성진 여사와 유마와 수자타 카페 회원 등 약 100여명의 인연 있는 이들이 모였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짐작했겠지만, 『유마와 수자타의 대화』는 김일수 작가가 생전 인터넷 카페에 올리던 글을 묶어 낸 책이다.

유마는 붓다 재세시 활동했던 대표적인 재가불자이다. 김일수 씨는 자신의 인터넷 대화명을 유마라고 칭했고, 그에게 질문을 던지던 이에게 수자타라는 대화명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두 사람의 대화체로 쓰여진 이 글은 어느 종교 사이트의 토론방에 올려지다, 나중에는 '유마와 수자타의 대화'라는 독립 카페가 만들어져 그곳에 게재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왕성한 저작 활동을 하던 김일수 씨는 감기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급성백혈병이라는 병명을 통보받고 10여일만에 이 세상과의 인연의 옷을 벗었다.

그의 카페 회원들은 그가 남긴 글들을 묶어서 책으로 만들자는 운동을 벌였고, 그래서 세상에 나온 첫 번째 책이 『유마와 수자타의 대화』였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08년에 이르러 송암 스님과의 인연으로 그의 유작들은 『위없이 심히 깊은 미묘법이여』, 『백천만겁인들 어찌 만나리』, 『내 이제 보고듣고 받아지니니』, 『부처님의 진실한 뜻 알아지이다』라는 제목의 책들로 묶여져 나왔다.

책의 제목이 경전을 독송할 때 외우는 게송인 '개경게', 즉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 아금문견득수지, 원해여래진실의를 우리 글로 푼 것이니, 아마도 송암 스님은 이 4권의 책을 경전의 반열로 생각한 듯싶다. 이는 바꿔말해 이 책이 담고 있는 의미와 내용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일게다.

이 책의 저자 김일수 씨는 아주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스물다섯에 교회 장로직을 맡고, 일본의 기독교 교리서를 구해다 읽을 정도로 돈독한 믿음을 가진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반평생을 그리스도의 아들로 살아온 저자는 어느날 대승기신론을 읽고 불교에 깊이 심취하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불교신앙을 설명해야 했고, 불교교리를 이야기했다. 그렇게 나눈 대화는 후일 ‘유마와 수자타의 대화’라는 내용으로 바뀌어 인터넷에 오르게 됐다.

그의 시작점이 기독교이기 때문인지 그의 이야기에는 기독교인들의 질문, 기독교에서 출발되는 화두가 유독 많다. 또한 다른 믿음을 지닌 이들에게도 어색하지 않은 언어와 해설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의 언어는 결코 관념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이같은 그의 명료하고 논리적인 언어는 인터넷이라는 공간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쉽게 읽고 공감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

유마와 수자타의 대화 첫 번째 권 『위없이 심히 깊은 미묘법이여』는 유마거사가 부처님의 열반 후 이웃처녀 수자타에게 붓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고기를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우리 존재의 제1원인은 무엇인가, 중생의 몸을 타고 났는데 몸으로 짓지 않고 마음대로 이룬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무엇으로 부처님을 믿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수자타에게 유마는 쉽고 담담한 언어로 붓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 번째 권 『백천만겁인들 어찌 만나리』에는 수자타 대신 유마의 수많은 인연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십계명의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는데 왜 다른 신을 섬기느냐, 천국이 어디냐, 뇌종양으로 죽음을 앞둔 이가 죽을 때 어떤 마을을 가져야 하느냐고 묻는다.

세 번째 권 『내 이제 보고듣고 받아지니니』는 인터넷에 등장한 그의 시와 산문들을 엮은 것이며, 네 번째 권 『부처님의 진실한 뜻 알아지이다』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김일수 씨의 일기들을 묶은 글이다.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알게 된 김일수 씨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3권에 수록]

시작이 있으면 마침내 다함이 있다는 단순한 진실을 누구나 알고 있음에도, 자신의 삶이 다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몇이나 될까.

그의 부재가, 그의 다함이 우리는 여전히 안타깝고 슬프다. 진리의 경계지점이 더욱더 모호해지는 오늘날, 그러나 그가 남긴 이 책은 분명 우리에게 크고 밝은 등대가 되어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도서출판 도피안사, 1권 9.500원, 2,3,4권 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