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금강산의 만물상으로 오르는 중간지점에 칡이 하도 많아 칡덮이마을 이라고 부르는 오붓한 동네가 있었다.

구슬같이 맑은 금강산약샘을 마시며 사는 이 마을 총각들은 나이 열다섯도 되기 전에 벌써 힘이 장사 같아지고 날래기 또한 호랑이 같았다.

그중에서도 억쇠라고 하는 총각은 어찌나도 힘이 셌던지 그가 금강산의 뾰족 봉우리들을 이봉저봉 훌훌 건너뛰며 창을 던지고 활을 쏠 때면 쇠같이 굳은 바위에도 창파 화살이 푹푹 꽂히곤 하였다. 또한 그는 얼마나 날랬던지 금강산호랑이를 산채로 잡아다가 마당에서 우리도 없이 길들이곤 하였다.

억쇠는 노래도 잘 불렀다.

꽃피는 춘삼월에 억쇠가 마을의 청년 둘과 함께 들에 나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면서 한가락의 노래를 청 높이 뽑을 때면 그의 구성진 노래 소리에 금강산 일만이천봉우리까지 우쭐우쭐 춤을 추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해 여름이었다.

마을 앞바다의 알섬에 바다를 건너온 도적떼 한 무리가 기어 올라와 갈매기들의 보금자리를 털어내고 수천수만 개의 알을 긁어모으면서 금강산에 쳐들어올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해적놈들을 이 땅에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 알섬도 우리나라 땅인데 그 섬에 나가서 도적무리들을 족쳐야 한다.”

억쇠는 두 주먹을 불끈 틀어 쥐였다.

그는 자기가 사냥할 때 쓰던 창과 활을 메고 앞바다로 나가기로 결심하였다.

해질 무렵 억쇠는 놈들의 눈에 뜨이지 않게 돛을 달지 않은 배에 뛰어올라 포구를 떠났다.

명주필을 편 듯이 그렇게도 잔잔하던 바다에 세찬 바람이 일고 파도가 사납게 끓어 번지기 시작하였다. 그 바람에 배는 날이 환히 밝아서야 알섬에 가 닿았다.

억쇠가 타고 있는 배를 발견한 해적들이 와∼ 하고 덤벼들었다.

이놈들! 억쇠의 눈에서는 불이 일었다.

억쇠는 훌쩍 몸을 날리며 가까이 다가붙은 해적들의 어느 한 배에 나는 범같이 뛰어올랐다.

그는 뱃전에 붙어서있는 놈들을 창으로 연방 찔러서 바다에 내뿌렸다. 그리고는 또 다른 배에 뛰어올라 이번엔 창도 쓰지 않고 놈들의 덜미를 덥석덥석 움켜 쥐여서는 물위에 내던졌다. 그 솜씨가 어찌나 날랬던지 마치 밭에서 무를 쑥쑥 뽑아 던지는 것 같았다.

“이놈들아, 뭣들 하고 서 있는 거냐?”

겁에 질린 괴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나 어느 누구도 억쇠의 범같은 기상에 눌려 감히 접어들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억쇠는 숨 돌릴 사이도 없이 괴수가 타고 있는 배를 향해 노를 저어나갔다.

이때였다.

핑!

화살 하나가 날아와 억쇠의 어깨에 박혔다.

괴수가 날린 화살이었다.

“윽!”

어깨에 박힌 화살을 움켜잡은 억쇠의 손가락 짬 사이로 새빨간 피가 옷섶을 적시고 배전을 붉게 물들였다.

억쇠는 창을 견주어들고 괴수를 향해 힘껏 내던졌다.

괴수는 날아오는 창을 한손으로 덥석 잡아 쥐더니 마른 삭정이 꺾듯 꺾어버렸다. 그러고 보면 괴수도 힘이 어지간한 장수였다.

괴수가 타고 있는 배로 나는 듯이 뛰어오른 억쇠는 시중들던 놈들을 단번에 거꾸러뜨리고 괴수 앞으로 한 걸음 두 걸음 육박해갔다.

두 장수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다.

서로 붙들고 얼마동안 뒷치닥거리던 끝에 피를 많이 흘린 억쇠는 그만 괴수한테 깔리고 말았다. 악착같은 괴수와 싸우는 동안 배는 파도에 밀려 먼 바다로 정처 없이 떠 내려갔다.

흉물스러운 낯짝을 올려다보던 억쇠는 치미는 분노로 “욱!”하고 소리 지르며 괴수를 밀어 던지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금강산의 약샘을 먹고 키운 힘을 보라는 듯이 벽력같은 고함소리와 함께 괴수의 덜미를 잡아 허공중 들었다가 바닷속에 처박았다.

억쇠도 그만 기진맥진하여 쓰러지고 배는 파도에 밀려 어디론가 방향도 없이 떠가고 있었다.

이때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섬의 갈매기들이 새까맣게 하늘을 덮으며 날아왔다.

솩! 솩!

쌕! 쌕!

갈매기들은 날개로 바람을 일으키며 떠밀려가는 배를 돌려세우고 알섬 쪽으로 끌어갔다.

배가 알섬기슭에 와 닿았을 때 억쇠도 정신을 차렸다.

끼륵! 끼륵!

하늘을 쳐다보니 갈매기들이 배를 에워싸고 훨훨 날며 저들의 똘랑똘랑 눈물까지 떨구고 있었다.

내 나라 금수강산을 호시탐탐 노리던 해적떼를 요절낸 억쇠는 갈매기들의 축복 속에 고향마을로 돌아왔다.

마을사람들은 억쇠를 칡덮이마을의 장수로 내세우고 그를 환영하여 사흘 동안 큰 잔치를 베풀었다.

칡덮이마을의 젊은 장수 억쇠는 오늘 육화암 벼랑밑에서 굳은 말뚝잠에 들어있으나 그 기상에는 외적이 달려들기만 하면 잠에서 깨어나 그때 쓰던 그 창과 활을 다시 들고 원수들을 모조리 족쳐버릴 의지가 깃들어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