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주역, 어떻게 상보(相補)할 수 있을까? 주역을 이해하는 의리와 상수와 점복 가운데 불교와 연결되어도 좋은 것은, 또 연결되면 좋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점복을 불교로 연결하는 것은 〈사문과경〉에서 부처님께서 그토록 경계했던 점복에 대한 배척에 따라 결코 용인될 수 없는 것이고, 상수역 또한 불교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불교와 연결 가능한 것은 의리역의 주역 이해일 것인데, 그렇다면 의리역은 불교와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의리역은 철저하게 유학적 윤리에 치중하는 측면이 있어, 유학적 이해를 넘어서는 불교적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과연 이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불교와 주역의 상보 가능성을 엿보는 주제로 불교평론과 경희대비폭력연구소가 논단을 열었다. 지난 7월 17일 신사동 불교평론 세미나실에서 열린 ‘불교와 주역’ 주제의 열린논단에서는 주역의 권위자이며 동시에 대표적인 재가불자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한 성태용 교수(건국대 철학과)가 발제하고, 불교와 주역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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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과 불교' 발제를 통해 상보 가능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는 성태용 교수.


성태용 교수는 이날 발제에 앞서 EBS에서 주역 강의를 하며, 자신이 ‘졸지에’ 주역의 대가가 된 사연을 털어놓으며 자칫 딱딱해질 수도 있는 발제를 고수의 면모를 풍기면서 흥미롭게 풀어갔다.

주역에 태극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태극기는 가운데 태극을 배치하고 팔괘 중에 뒤집어도 모양이 일치하는 네 개의 괘를 배치한 것이라고 소개한 성 교수는 우리나라 국기는 바로 주역의 이치를 표현하고 있으며, 주역은 점서이기도 하지만 국기로 사용될 만큼 철학적 원리가 들어있다고 강조했다.

성 교수는 불교와 주역의 연결은 주역의 삼역(三易), 즉 변역(變易), 불역(不易), 간역(簡易) 가운데 불교와의 접합점을 찾을 수 있는 변역에서 찾아봐야 한다고 밝혔다. 불교의 무상, 연기가 변화의 성질을 간파한 진리인 것처럼 주역의 변역 또한 변화의 원리를 다룬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주역은 우리의 삶을 기호(부호)를 통해 표현함으로써 가장 높은 원리를 통해서 가장 적합한 문제해결의 길을 제시하는 의미가 있는 대단히 고차원적인 점으로 역할을 한다”고 소개한 성 교수는 “주역은 언제나 역동성, 변화에 주목하는 매우 다이나믹한 철학”이라고 밝혔다. 예컨대 하늘과 땅을 의미하는 건, 곤의 괘에서 하늘과 땅이 차례로 배치된 천지(天地)는 ‘비색(否塞)’, 뒤집어 배치한 ‘지천(地天)’은 태통(泰通)으로 해석하는 것을 그 대표적 경우라는 것이다.

“주역은 가장 원초적인 관심에 주목한다. 점이라는 것은 갈림길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는 매우 원초적인 문제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늘 추상적인 부호, 원리로 답을 한다”고 밝힌 성 교수는 “가장 구체적인 관심과 가장 추상(형이상학)적인 (음양이라는 높은) 원리가 만나는 것이 바로 주역”이라고 정리했다.

성 교수는 주역은 기본적으로 점복이지만, 의리역으로 보려는 것이 있으며, 당연한 우리의 도리는 무엇인가를 주로 보는 것이 바로 의리역인데 주역의 의리는 점복과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주역의 의리는 그냥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점복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성 교수는 또 그동안 불교와 주역을 연결하는 시도가 있었으며, 그 가장 대표적인 책이 〈주역선해(周易禪解)〉라는 책이며, 우리나라에서는 탄허 스님이 연구해 널리 알려진 책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성 교수는 “기존의 불교와 주역을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그 일정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다 싶은 것이 없지 않았다”면서 “예를 들어 원형이정(元亨利貞, 주역에서 말하는 천도의 네 가지 덕)을 불교의 상락아정(常樂我淨)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사실 내 스스로 잘 납득이 가지 않는 너무나 큰 비약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주역과 불교의 공통점과 연결점을 찾는 것이 자신의 주 관심사라고 덧붙였다.

주역을 영역하면 변화의 책(The book of change)이며, 철학적 측면에서 보면 주역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만유유전(=제행무상)이나 베르그송, 헤겔, 불교(찰나생 찰나멸)에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즉 주역은 파르메니데스적 사고, 즉 자기존재를 인정하는 (불변의 존재) 사유의 관점인 플라톤이나 우파니사드(힌두)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주역은 언제나 변화를 말하며, 언제나 흐르며, 고정적인 것으로 표현할 수 없음을 강조하므로, 불교와 주역의 공통적인 사유기반이 될 수 있다”고 전제한 성 교수는 “관계론적인 사유방식에서도 주역과 불교를 연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컨대, 조지부시가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한 것은 존재론적, 실재론적인 사유방식에서 나온 것이지만, 주역이나 불교에서 말하는 관계론적 사유방식에서는 선악도 관계성에서 나오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기독교적 사유방식은 존재론적 사유방식에 가까우며, 기독교에서 사탄 등 말살해야 할 존재를 말하는 것은 제로섬적인 논리이며, 악은 없애야 하고 소멸해야 할 대상으로 파악하는 상당히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불교와 주역의 사고방식은 연기론적, 관계론적인 사유방식이며, 예컨대 불교를 소재로 한 소설인 서유기에 고정된 악이 없는 것으로 잘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손오공이나 사오정, 저팔계는 서유기에서 인간정신을 대변하고 있고, 그들이 저지르는 악행이나 실수는 참된 수행으로 가기 전의 문제들에 지나지 않으며, 삼장법사 모시고 구법여행을 하는 것도 결국 수행의 과정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유기를 게임으로 만들면, 게임은 재미는 있는데 따지고 보면 괴멸해야할 적이 없는 게임이 된다는 것이다. 즉 요괴가 보살이 되는 '요괴 좇던 손오공 문수보살 쳐다보기'식 게임이 된다는 것이다.

“불교처럼 주역의 사고방식 또한 근본자체가 관계론적”이라고 밝힌 성 교수는 “음과 양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양은 남성이 아니고, 밝은 것이 아니라 남성적인 것이 대입될 수 있고, 밝은 성질의 것이 대입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사원이면 사장을 양, 사원은 음이므로 내가 음에 대입될 수 있다. 나라는 존재가 이렇듯 관계에 따라서 양도, 음도 되는 것이므로 존재론적 사유방식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불교학자가 아니라서 불교의 교학적 이해에 한계가 있다고 전제한 성 교수는 “불교의 연기도 초기불교의 종적 연기에서 대승에 이르러 횡적연기로 확대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관계론적 사유의 극치로 보인다”고 밝혔다. 따라서 주역을 다루는 일부 사람들이 태극을, 음양을 실체화시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주역의 곁가지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성 교수는 “태극에서 양의, 사상, 팔괘가 나온다. 태극에서 팔괘가 나오는 것이지, 만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실체가 아니다. 태극도설 같은 데에서는 실체화를 하는데, 이것은 약간 주역과 다른 방식으로 '발전'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 교수는 주역과 불교가 다른 점에 대해서도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불교는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변화를 어떻게 읽느냐가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밝힌 성 교수는 “그러나 주역은 이 변화를 읽어내는 데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그래서 이것을 주역에서 (불교에게) 제공해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불교에서 느끼는 아쉬운 점에 대해서도 성 교수는 솔직하게 털어놨다. ‘무식한 도깨비는 부적을 몰라본다’는 식으로 말하겠다고 ‘피할 구멍’을 마련한 성 교수는 “불교는 천년 동안 정체되어 있다고 저는 강하게 말한다. 불교가 중국에 온 후 일상, 일반인들을 끌어주는 역할 사실상 상실했다. 일상의 윤리, 삶의 윤리를 적당히 유교에 떠넘기고, 수양의 논리, 수행의 논리에 치중했다. 이런 것이 큰 문제이다.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불교의 논리가 나오지 않는다. 선종에서 수처작주 말을 하는데 정작 작주를 어떻게 하라는 기준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주역에서는 구체적인 판을 보여준다고 성 교수는 덧붙였다. 성 교수는 이어 “이것이 더 기막힌 것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역동적인 판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주역은 허공에 문제를 띄우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의 구체적인 기준을 준다. 유학은 공부이고, 불교는 신앙인데, 다산이 말하기를 불교는 마음 닦는 것을 제일로 하고 유학은 사업을 통해서 마음을 닦는다고 말했다”면서 “구체적인 판을 통해서 각각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불교의 모자란 점을 주역을 통해 보완해줄 수 있다고 본다”고 나름의 주역의 불교보완론을 전개했다.

성 교수는 “주역을 불교 쪽으로 억지로 끌어들여 해석하려는 것보다는 주역을 통해서 불교의 모자란 점을 보완하는 것이 중요하고, 불교는 폭이 넓은 것이니까 주역을 통해 불교를 더 기름지게 해야한다고 본다”며 “주역의 틀을 채용하거나, 사유방식을 도입한다면 불교가 추상성과 관념성을 넘어서서 구체적인 현장에서의 실천으로 나갈 길이 열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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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가 끝난 후 참석자들은 성태용 교수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


발제가 끝나자 예리한 질문이 쏟아졌고, 차분하면서도 능수능란한 답변이 이어졌다. 문답으로 정리했다.

문: 주역에서 해석의 능력이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이것을 언어 이전에 그 의미를 어떻게 풀어내는가가 매우 중요하게 보이는데, 일정한 기준이 필요할 것 같다. 경우에 따라 해석의 기준이 달라지는 것도 보이는데, 예를 들어서 지천(地天), 즉 순서가 뒤집힌 것을 좋게 보는가 하면, 산수몽괘에서는 여자에 대해 부정하게 풀어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문제가 아닌가?

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