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호야, 알지? 아직 열아홉 명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하루빨리 돌아오도록 도와주라. 아들아, 사랑한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로 희생된 고 제세호 학생의 아버지 제삼렬 씨의 음성이 조계사 앞마당에 울려 퍼졌다. 다음 생에는 다시 만나지 말자는, 더 좋은 부모를 만나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자식을 앞세운 아버지의 회한에 곳곳에서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조계사에 자리한 모두가 꽃다운 아이를 가슴에 묻은 아버지에 다름 아니었다.

조계종은 5월 20일 오후 7시 조계사 앞마당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재를 거행했다. 희생영가 287위를 모신 영단이 극락전 앞에 모셔졌다. 국화꽃으로 장엄한 공동위패에는 ‘선세월호희생각렬위렬영가(先世月號犧牲各列位列靈駕)’라고 적혔고, 바다를 닮은 하늘 아래로 흰 영가등이 나부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17명(20일 현재)의 귀환을 바라는 노란 등도 함께 달렸다.

불교계의 애도의 마음을 표현하는 이날 추모재에는 단원고 학생 유가족 30여 명을 비롯해 총무원장 자승 스님, 중앙교역직 스님, 중앙승가대, 동국대 학인 스님, 서울 주요 사찰 신도와 시민 등 5천여 명이 운집했다.

단원고 고 진우혁 학생, 고 이진형 학생, 고 김수경 학생, 고 제세호 학생, 고 최정수 학생, 고 백승현 학생, 고 장진용 학생, 고 이승민 학생, 고 김대희 학생, 고 김영창 학생 가족 등 유가족 30여 명도 자리해 아이들 앞에 향과 꽃을 올렸다. 유가족들의 손목마다 108염주가 감겼다.

크게보기

크게보기

크게보기

크게보기

추모재는 성중의 강림과 의식도량의 정화를 발원하는 옹호게로 시작했다. 조계종 의례위원장 인묵 스님 등은 천수바라, 도량게, 거불, 창혼, 착어, 수위만좌 등의 희생연가 천도의식을 봉행했다. 아이들의 넋을 달래는 진혼무에 이어 선정 스님의 화청이 이어졌다.

금지옥엽 애지중지 고운님아 정든님아 다북다북 키운님아 서글서글 웃는님아 사월춘풍 꽃바람에 선들선들 어서오소 꿈이어라 헛이어라 어이하여 속절없이 수중옥에 갇혔느냐 어찌할꼬 어찌할꼬 어찌알리 뉘라알리 부르터진 두손끝에 참절비절 몸부림을

불쌍하고 가련하다 원통하고 절통하다 뉘가있어 동행할까 혼자서는 못가느니 찾아가세 같이가세 고운님아 정든님아 가지마오 가지마오 나를두고 어딜가오

횐 연등에 불을 밝힌 불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저마다의 손에 들린 손수건이 속절없이 젖어들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에 구명조끼를 입은 채 웅크리고 있었을 학생들을 떠올리며,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 바다에 남아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희망조차 희망할 수 없는 참석 대중들은 눈물로 참회하는 것 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것을 참회하는 추모사를 낭독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봄마다 사무칠 것입니다. 그 때마다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이치를 되새기게 될 것입니다. 떠났지만,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상주불멸(常住不滅)하니 희생자 여러분들은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자승 스님의 추모사에 이어 순정소년과 제니걸이 법석에 올라 세월호 참사 헌정 추모곡 ‘모두 함께’를 불렀다. 성의신 씨의 애절한 해금 추모연주도 이뤄졌다.

크게보기

크게보기

크게보기

크게보기

이어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제삼렬 씨가 무대에 올랐다. 아이들의 위패를 뒤로하고 대중을 바라보며 아들에게 쓴 편지를 읽는 제 씨의 목소리가 자주 떨렸다.

“사랑하는 내 아들 세호야! 사고 나는 날 팽목항에 도착했을 때 엄마가 ‘우리 호야는 수영을 잘하기 때문에 분명히 헤엄쳐서 돌아 올 것이라며..’ 우는데,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게 너무 없어서 내 마음은 찢어지게 아팠다. 이건 아닌데... 그래도 꼭 돌아올꺼라 믿었기에 엄마 아빠는 3일 밤낮을 널 기다렸단다. 혹시나 기적이... 아니 꼭 돌아와주길 믿었기에... 호야 걱정말거라! 너는 아니 너의 친구들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일찍 좋은데 간거야. 엄마 아빠가 나름 너한테 최선은 아니지만 잘 해줬다고 생각하면서도 못해준 게 너무너무 많아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고 아리고 아린다.

호야 다음생에는 우리 다시 만나지 말자. 더 좋은 부모만나 행복했으면 좋겠어. 정말 미안하구나 너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못해서. 하지만 하나만 믿어주라. 니가 내 아들이여서 너무 행복했다. 만약 다음에 다시 만난다면 조금 더 아주 많이 많이 사랑해줄게. 세호야 알지? 아직 열아홉명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하루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라. 사랑한다 아들아.”

소리꾼 장사익 씨가 무대에 올라 ‘허허바다’와 ‘찔레꽃’을 부르며 애도의 마음을 대신한 후에는 신경선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장이 사부대중을 대표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과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참회발원문을 낭독했다. 그는 “윗 사람과 아랫사람이 소통하기 쉬운 나라, 이웃과 이웃이 소통하기 쉬운 사회를 만들어 가겠다”며 “우리의 아이들을 모두가 내 자식이라는 마음으로 함께 키우는 나라를 만들어 가겠다. 사람이 존중받고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세상을 만들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추모재는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지 못한 것을 참회하는 중앙승가대 학인 스님 30명의 108배와 5천여 사부대중의 추모행진으로 회향했다. 이들은 백등을 들고 조계사에서 출발해 인사동 일대를 행진하며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한편 조계종은 다음달 희생자 49재를 봉행하는 한편 종단협 주최로 추모행사와 유가족 아픔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유가족과 국민의 아픔을 나눌 예정이다.

크게보기

크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