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 스님은 94년 종단개혁의 뿌리를 불교정화에 따른 통합종단 출범과 10.27법난에서 찾았다. 근본을 찾자는 정화운동과 정치적 자주화에 대한 모색이 종단개혁의 단초가 됐다는 것이다. 스님은 “94년 종단개혁은 반불교적인 형태로 불교의 자주성을 훼손하며 종권을 사유화하려던 당시 종단 지도부를 사부대중의 힘으로 교체한 것”이라고 회고했다.

종헌종법으로 종단 운영 제도화…승가화합 훼손은 아쉬워

크게보기설정 스님은 종단개혁의 공적으로 종단운영의 제도화가 가능하게 됐다는 점을 꼽았다. “구체적이고 지속가능한 그리고 예측가능한 제도 속에서 승단을 체계적으로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스님은 당시 승가에 맞는 제도적 입법 자료가 빈약했기 때문에 사회적인 틀로 종헌종법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면서도 ▲종단의 정상화 ▲교육을 통한 승가의 질적 향상 ▲포교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 ▲삼보정재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재정확충을 위한 재정투명화를 실현할 수 있는 입법기조 위에서 종헌종법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정투명화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점은 아쉬운 점으로 꼽혔다. 스님은 “각급 사찰재정투명화를 통해 삼보정재가 유출되는 것을 철저하게 막을 수 있어야 한국불교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할 수 있다”며 “좀 더 강력하고 지속가능한 재정투명화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종단개혁의 과실로는 선거로 인해 승가화합이 분열됐다는 점이 지적됐다. 승가화합과 장로정신의 부재는 개혁 4년 후에 발생한 98년 사태로 연결된다. 설정 스님은 “승가의 근본인 화합의 정신이 깨져버렸고 이와 함께 한국불교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했던 승가의 장로정신이 함께 무너져 버렸다”며 “98년 종단사태는 불교가 불교답지 못하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줬다”고 말했다.

스님은 종도들에게 ‘근본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했다. “불교에서 정화와 개혁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철저한 수행과 정진으로 신심을 정화하는 것이요, 정화된 신심으로 오염되고 잘못된 환경과 중생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며 수행자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되짚고 “인격이 없는 정화와 개혁은 실효를 거둘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조계종의 20년은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재정의 확충을 위한 시스템의 변화 ▲승가의 완벽한 복지보장제도의 마련과 수행과 교육시스템 ▲중생들의 문제에 답을 해줄 수 있는 불교적 진단해법시스템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존폐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설정 스님은 “불교의 핵심은 시대를 떠나서 ‘자리이타’이며, 철저하게 자신을 정화하고 수행해 절제된 인격체로 거듭나지 않으면 결코 사회에 기여하는 승려가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청화 스님 “개혁은 진화할 뿐 완성이란 없다”

크게보기토론에 나선 청화 스님(전 교육원장)은 종단개혁 20주년을 기념하게 된 이유와 의미가 서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화 스님은 “개혁 후 20년이나 지나 기념을 할 때는 무엇 때문에 그것을 기념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가 있어야 되고, 이유를 통해야 의미를 도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청화 스님은 또 개혁은 진화할 뿐 완성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오늘 발제의 제목이 ‘개혁의 완성 불교의 미래’인데, 종단의 조직과 체계완성은 어느 곳에서나 변화·진화될 뿐 완성이란 있을 수 없다”며 “완성의 기준에 따라 관점을 달리할 수 있지만 완성이란 말은 무리가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와 함께 입법과정의 이견이 소개되지 않은 점을 안타까워했다. 청화 스님은 “개혁입법은 이견이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며 “총무원장 선거법이나 비구니 스님들의 참종권과 종회의석수를 가지고 논란이 있었던 것을 발제문에 담아서 알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청화 스님은 특히 당시 언급됐던 총무원장 선거 직선제와 비구니 종회의석 확대 등의 요구가 반대 여론에 밀려 좌절된 사실을 강조하며 “입법과정의 진통이 설명됨으로 해서 논란의 중심이 됐던 사안에 대해 미래의 희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응 스님 “제도 자체 문제보다 시행 여부 따져봐야”

크게보기현응 스님(교육원장)은 개혁당시 사회제도를 받아들여 입법안을 마련했다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다른 견해를 드러냈다. 현응 스님은 “대중공의에 의한 갈마로 결정한다는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정신이 종헌종법 전반 내용 속에 들어있다고 본다”며 “사회적인 제도가 94년에 처음으로 도입된 것이 아니고 1920년대부터 제시돼 온 모든 종헌종법의 모델이 국가사회 제도였다”고 말했다.

현응 스님은 “우리가 삼보정재야말로 공공재산이라고 판단하고 그것을 유지 운영하는 제도를 만들 때 가장 선진화되고 효율적인 것이 국가제도”라며 “불교와 승단이 불교운영시스템의 공공성을 지향했기 때문에 도입 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현응 스님은 또 제도 자체가 지닌 문제보다 제도의 시행여부를 따져야 한다고 지적하며 “94년도에 입법한 내용들이 개혁 후 7대에 걸친 역대 집행부에 의해서 몇 프로나 시행됐는가, 왜 못했는가, 왜 안했는가에 대한 부분이 평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사찰재정의 투명화와 공공성을 담보하는 사찰예산회계법과 사찰분담금제도는 15%도 시행되지 않고 있다. 있는 제도도 시행하지 못하는 것에 분노하고 요구하고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승무 교수 “행정적 개혁 이외는 열망하지 않은 것이 한계”

크게보기유승무 중앙승가대 교수는 정치·행정 이외의 영역은 전혀 개혁하지 않았다는 점이 94년 개혁의 한계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당시에는 사부대중들 사이의 관계, 종단의 문화, 관행, 의식, 태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주목하지 않았다”며 “개혁종단이 들어서고 나서 실행해야 하는 과제가 훨씬 컸는데 그걸 못했고, 그 문제가 20년 지난 우리 앞에 과제로 다가와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또 “2030년 한국불교의 구성원은 지금과 완전히 다른 세대가 될 것”이라며 “베이비붐세대가 사회일선에서 은퇴하고 10대부터 60대까지 현재의 스마트 세대, 정보화 세대, 세계화 세대, 성평등 세대, 민주화 세대 등 현재 사는 사람들과 사회성이 다른 사람들이 살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현재 종단처럼 수많은 장벽에 갇혀서 꼼짝 못하는 토양 위에서 살지 않을 것이고, 종단 내의 장벽을 견디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이 장벽들을 지금부터 허물지 않으면 불조혜명을 이어갈 사람이 없어 열세에 처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