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개혁불사 2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위원장 법등 스님, 이하 추진위)는 94년 종단개혁을 어떻게 평가할까. 행정체계는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지만 고유의 불교관과 실천론은 20년 전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전진하지 못한 답보상태라고 자평했다.

추진위는 3월 11일 오후 3시 94년 개혁불사 20주년 기념세미나를 위한 좌담회를 열고 94년 종단개혁의 의미와 성과, 문제에 대해 돌아봤다.

좌담회에는 추진위원장 법등 스님을 비롯해 법안 스님(종회 부의장), 일문 스님(종회의원),일감 스님(기획실장) 등 승가 구성원과 류지호(불광출판사 주간), 박재현(월정사 종무실장), 윤남진(NGO리서치 대표), 이영철(전 우리는선우 운영위원장) 씨 등 재가자가 두루 참석해 기탄없이 의견을 주고받았다.

정부로부터 자주성 회복?

국가예산에 귀속 ‘우려’

먼저 일문 스님은 94년 종단개혁을 계기로 조계종단이 자주성을 회복하고 민주화와 법치를 확립시켰다고 평가했다. 일문 스님은 “당시 자주성 문제가 핵심으로 떠올랐고 94년 전후로 자주성은 회복했다. 현재 문화재와 관련 (국고지원에) 예속되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자주성 회복은 개혁의 큰 성과”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가예산에 귀속됨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법안 스님은 “국가예산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의존도가 너무 높다. 스스로 족쇄를 채우고 예속되는 것이다. 종교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지는데 템플스테이, 문화재, 문화재 보수 등 영향력은 커지고 있다. 국가예산을 수령하는 제도와 기준이 확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등 스님도 정부예산에 의지하는 것은 주권 상실을 의미한다고 우려했다. 스님은 “본사나 총무원 등 중앙 차원에서 문화재 보수 등을 컨트롤할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며 “차제 세미나에서 어떻게 하면 자립할 수 있을까 반성하면서 계획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등 스님은 예산을 받으면서도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천주교를 언급하며 “왜 같은 돈을 받으면서도 내 목소리를 못 내는가. 의식의 차이이다. 제도는 94년보다는 많이 개선됐는데 그걸 운영하는 주체의 의식은 따라가지 못한다. 의식 자체는 그때 이후로 퇴보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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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이후 민주·법치 확립

‘민주’ 귀결인 ‘삼권분립’ 작동 안 해

전근대적인 행정체계에서 효율적이고 민주적인 종단운영이 가능해졌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일문 스님은 “그동안 있어온 종단 분규가 종단의 사회적 이미지를 떨어뜨리는 요인이었지만 교구자치가 이뤄지면서 분규는 사실상 사라졌다. 종단 행정체계 역시 전근대적 형태라 지적 받았으나 94년 이후에 거의 법치가 확립되면서 효율적 행정과 민주적인 종단운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화’의 귀결인 삼권분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영철 전 운영위원장은 “삼권분립 확립 중 ‘사법’에 대한 부분이 정상적으로 됐었는가? 사법기능을 만들어놓고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건지 의구심이 든다. 법을 도입했다는 것과 사회적 중대한 사안들에 실질적으로 투명하게 적용됐는가는 엄정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등 스님은 현 사법제도에 독립성이 담보돼야 한다고 했다. 스님은 “사법제도가 94년도에 비해서는 개선된 점이 있다. 예전에는 호법부장을 총무원장 외호 신장 역할을 위해 뽑았다면 그 이후에는 호법부장을 중앙종회 인준철차를 거쳐 걸러내게 했다. 호계원 부분도 사건을 정치화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심리하는 제도로 바꾸면서 특별 재심제도, 재정신청제도 등을 도입했다”설명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사건, 힘이 있는 사건은 호법부 자체에서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부분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호법부가 독립성을 가져야 하는데 독립성이 안 된다. 이 부분이 과제”이라고 말했다.

알맹이 없고 외형만 남은 ‘걸레’ 법안

대중 의사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

개혁 과정에서 표출된 담론을 입법화 하는 과정이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의견도 다수의 공감을 얻었다.

박재현 실장은 “개혁을 온전하게 담지 못하고 시작된 것은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개혁의 주체는 사부대중 모두인데 법제화하는 과정에서 당사자나 모임간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절충되고 만들어지면서 많은 법들이 반쪽이 났다. 권한은 보장받지 못하고 외형만 남는, 입법안이라는 게 속된 말로 ‘걸레’같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토로했다.

또한 “재야가 제도권 안에 들어오고 이 분들을 중심으로 모든 것들이 이뤄지면서 대중의 의사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모든 게 결정되고 진행돼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94년의 성과로 종무행정 체계화를 말하는데 정작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는 정치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안 스님은 “종권을 세울 때는 대중이 있고 종권 만들고 나면 대중은 없다”며 “우리가 세운 제도와 법령이 지금도 유효할 건가를 엄정하게 평가하고 그런 조망 속에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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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개혁불사 2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11일 법등 스님의 주재로 세미나에 대한 좌담회를 열고 대중의 공의를 모았다. (사진=미붓DB)

1994년 포교종책 = 2014년 포교종책?

사람 변화시키는 ‘인재육성’에 사활 걸어야

20년 전의 포교종책과 지금의 포교종책이 한결같은 것은 답보를 넘어선 퇴보라는 질타도 나왔다.

류지호 주간은 “종단에 포교종책이 없다. 많은 스님의 관심사가 포교에 없다. 재정문제도 원론적으로 신도에서 나와야하는 것인데 현재 종단은 정부지원금이나 관람료, 관광상품 템플스테이로 운영된다. 94년 체제가 현 시대에 맞는 시스템인지 종단적 차원에서 전반적으로 재검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윤남진 대표는 “포교원 자체의 존립 가치가 무엇인지. 오히려 포교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제가 있어 보인다”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윤 대표는 “불교사회연구소 같은 연구기능이 합쳐져 새롭게 세팅하고, 신도 관련 부분은 총무원 차원에서 책임 있게 다룰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신도 역량을 강화해서 신도 참여를 증진시키는 기회를 주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물적토대를 동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철 전 운영위원장은 민간단체 지원을 확대하는 정부에 빗대 조계종의 폐쇄적인 포교시스템을 꼬집었다. 이 전 운영위원장은 “조계종이란 체제 안에 들어오면 자유로운 눈빛으로 보고 조계종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위험한 단체로 본다. 대불련, 대불청의 조계종 등록은 본말사에서도 논쟁이 됐던 문제”라며 “사회는 오히려 사단법인이나 민간단체 통제권에 들어가지 않아도 많은 지원을 하는데 종단은 점점 반대로 가지 않는가. 이른바 혁명군의 포용력이 더 얇아졌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또 “96년 당시 대학·청년·군포교 삼각 연결 시스템을 개발하지 않으면 어렵다고 했는데 근 20년 지난 지금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전략 비슷한 걸 주면 기본적으로 이해는 하는 건지, 공유점을 찾기 어려운 현실이다. 20년 전에 초코파이 군포교를 얘기했다면 요즘은 햄버거 타령이다. 20년 전과 일하는 집단의 역량은 거의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이 전 운영위원장은 결국 답은 ‘인재’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종단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부분에 초점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을 육성하고 교육과 포교를 종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전문기관이나 연구원 없으면 계속 예산은 낭비되고 질적인 변화는 멀어져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행정체계 발전했으나 실천론 답보

무엇을 지키기 위해 소통을 안 하는가

옳은 소리, 다른 소리, 불편한 소리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일감 스님은 “일을 해보니까 우리 종단은 뭔가 논의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집단이다. 뒷방공사는 잘하는데 장(場)에서 꺼내놓고 논의를 할 수 없다. 옳은 소리하는 싹을 밟는다”며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소통을 안 하는가, 이걸 논의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희망 갖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님은 “행정체계는 눈부신 발전을 이뤄낸 것이 사실이나 고유의 불교관이나 실천론에 있어서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20년 전에 활발했던 대중운동을 키워나가고 포용했다면 지금도 살아있을 것이다. 여전히 지금도 옳은 말 바른 말을 하면 재가나 승가나 끼워주지 않는다. 이번 차제에 과거 20년을 바라보고 앞으로는 어떻게 이끌 것인가를 고민하자”고 말했다.

앞서 추진위는 추진위 및 실행위 연석회의에서 종단개혁 20주년 기념식 계획안을 논의했다. 기념 세미나 기조발제에는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 스님을 초빙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