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삶의 참의미를 진지하게 묻는 소설

이학종 | urubella@naver.com | 2008-09-16 (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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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틈에 정찬주 장편소설 <천불탑의 비밀>을 읽었다. 정신없이 지나간 시간이었지만 시간을 쪼개니 장편소설 한 권을 읽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하긴 장마철에도 빨래 널 틈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불교 책을 주로 내는 출판사인 클리어마인드가 펴낸 첫 번째 소설이 아닐까 한다. 첫 소설로 불교소설은 물론 불교관련 저술이 많은 대표 불교작가 정찬주 선생의 작품을 펴냈으니 편집기획자가 안목 있는 분인 듯싶다.

이 소설을 펼쳐들었을 때 추리소설 형식의 불교장편이라는 호기심으로 거침없이 책장을 넘겨나갔다. 왜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왠지 사람을 잡아끄는 그런 매력이 있지 않은가. 불교작가가 추리기법을 활용한 소설을 냈다는 자체가 흥밋거리이고, 또 그 추리기법으로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불교적 메시지를 찾아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천불탑 불사는 신라 황룡사 9층탑의 복원불사이다. 옛 신라를 대표하는 황룡사 탑을 복원함으로써 불보살의 가피를 만 중생에게 전하고, 나아가 자신의 구세원력을 다잡으려는 천불탑 불사의 주인공 지웅 스님이 이 탑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기 위해 속가 시절 친구였던 선승 법상을 인도로 보내는 것으로 이 소설의 이야기는 전개된다.

천불탑을 설계한 최림은 지웅과 법상으로 대표되는 두 대조적 인물을 연결하고, 거기에 천불탑을 둘러싼 얼키고설킨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실상의 화자이자 소설전개의 윤활유역이다.

천불탑 불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투자하는 지웅, 그의 부탁을 받아 사리를 구하러 인도에 갔다가 거기에 머물며 무애자재한 수행자의 삶을 살아가는 법상, 그 사이에서 두 스님의 삶의 목표와 출가승려로서의 서로 다른 길에 대한 가치를 읽어가는 최림의 삼각관계는 결국 사리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결말을 맺는다.

즉 이 소설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의문을 통해 우리네 삶은 과연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드러나는 것이 아닌 내면의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키고 있는가에 천착한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드러나는 모습과 내면의 모습 중에 어떤 것에 더 큰 가치를 줄 것인가에 해답을 마지막까지 내놓지 않는다. 그것에 대한 판단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또 실제로도 어느 것이 더 소중한 가치를 갖는가를 판단할 근거나 기준은 있을 수 없다.

이는 색즉시공이 있으면 공즉시색이 있는 이치와 다르지 않다. 색즉시공을 통해 부처님의 심심미요한 지혜를 배울 수 있고, 공즉시색을 통해 불보살의 광대무변한 자비와 복덕을 공부할 수 있는 원리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소설가 한승원 선생도 “우리들의 가벼워진 삶에 의문을 던지는 소설”이라고 평가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소설가 최인호의 이 소설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자.

“이 소설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주제가 있다. 그 하나는 신화와 같은 ‘황룡사 9층 목탑’이요, 또 하나는 ‘인도로 가는 길’이다. 이 두 가지의 씨줄과 날줄과 같은 주제 위에서 인생의 의미를 작가는 갠지스 강의 그 장엄한 풍경을 바라보면서 젊은 건축설계사를 통해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진지한 질문이 그러나 매우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소설의 전개 위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인생의 의미를 이처럼 소설 공간 속에 훌륭하게 마법의 융단처럼 펼쳐 보이는 정찬주 작가의 소설에 깊은 찬탄을 보낸다.”

부처님의 사리를 끝내 찾아오지 못한 최림. 그는 자신이 설계한 천불탑 회향법회에 참석해 웅장한 탑을 바라보면서 묻는다. 눈에 보이는 천불탑을 향해 ‘저것이 내 마음 속의 천불탑인가’를 물었던 그가 눈을 감자 이내 마음속에서 등신불처럼 솟아오르는 천불탑 발견한다. 이어 그는 마음속의 천불탑 바라보고는 그것이 자신이 갈망해왔던 진정한 천불탑임을 알아차린다. 그 탑이야말로 지웅이 자신의 마음속에 씨를 뿌리고 법상이 혼을 불어넣은 등신불이었던 것이다.

천불탑의 비밀을 푸는 것은 절대적으로 독자들의 몫이다. 이는 소설가가, 또 책을 소개하는 기자가 설명할 수도 알려줄 수도 없는 화두와 같은 것이다. 각각마다에 비밀을 푸는 답이 다르기 때문이다. 화두를 참구하는 마음으로 이 가을 일독을 권한다.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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