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한국인의 마음을 숙연하고 절절하게 만드는 여섯 음절이 있다. ‘대한독립만세’, 그것이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간 이 땅의 한국인들이 타는 목마름으로 부르짖었던 말, 대한독립만세. 내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목숨과 바꿔 차마 뱉어내고야 말았던 말, 대한독립만세. 그로부터 1백여 년이 지난 오늘, 대한독립만세와 같이 민족의 혼(魂)과 염(念)을 담아 외치는 말이 있다. 제 몸을 불사르며 쏟아내는 최후의 한 마디, “프리티벳(티벳에 자유를)!”

그리고 3월 10일, 먼 땅 한국에서 티베트의 평화를 꿈꾸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티베트 민중봉기 54주년을 기념하고 분신 희생자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2009년 첫 분신이 발생한 후 2013년 현재까지 107명의 티베트인이 ‘달라이라마 귀국과 티베트 자유’를 요구하며 분신 시위를 했고, 이중 90명은 목숨을 잃었다. 소신공양을 불사하는 이들은 승려, 주부, 학생, 청년, 노인 등 남녀노소와 승속을 망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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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진 남카 스님(왼쪽)이 티베트 분신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이에 티베트 망명정부 공식 해외 사무소의 산하 기관인 ‘티베트하우스코리아’와 티베트 난민 자립 지원 단체 ‘록빠’, 국내 유일의 티베트 음식 전문점 ‘포탈라’, 티베트 뉴스를 전하는 ‘더 티베트 미러’ 등 국내에서 활동하는 티베트 관련 단체와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등 불교 단체가 의기투합했다.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 공연장에서 펼쳐진 이날 행사는 엄숙함과 재기발랄함의 앙상블이었다. 1부 행사인 민중봉기 54주년 기념식은 숙연했다. 티베트하우스코리아 대표 텐진 남카 스님의 희생자 추모 기도를 시작으로 티베트인 가수 까락 뺀빠 씨의 국가 제창이 이어졌다.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이 끝나고 다시 텐진 남카 스님이 연단에 섰다.

“티베트 어느 곳에서도 티베트어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인이 티베트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을 범죄행위로 간주하고 심하게 처벌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티베트 문화를 계획적으로 말살시키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벌목 작업과 동물 밀렵 등 천연자원, 자연환경 훼손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중국이 ‘평화’와 ‘해방’의 이름으로 티베트에서 하고 있는 행위들입니다.”

다시 일제강점기, 일본이 자행했던 우리말 신문 폐간, 신사참배·창씨개명 강요 등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을 공부하며 우리는 얼마나 분노했던가.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추진한 산업화의 궁극적인 목적이 제국주의적 수탈 강화와 대륙 침략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함이었음을 우리는 모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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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민중봉기 기념사를 하고 있는 텐진 남카 스님과 연대발언에 나선 퇴휴 스님, 뚜라 씨, 박원석 의원. (왼쪽부터)

각계의 연대발언이 이어졌다.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상임대표 퇴휴 스님은 “한국 정부의 중국 눈치보기 식 행보에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티베트 자치를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던진 그들의 희생(소신공양)이 진정 가치로웠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임용환 신부는 “몸은 묶어도 정신과 꿈만은 어찌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평화를 이뤄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며 티베트에 지지와 연대의 메시지를 보냈다.

버마행동 대표 뚜라 씨는 “전 세계가 적극 연대하지 않으면 약자가 죽게 되는 세상에서, 약자 편에 서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슬픔과 아픔을 느낀다. 다만 여기에 와 있는 분들은 절대 용기를 잃지 말고 지치지 말라”고 당부의 말을 건넸다.

박원석 진보정의당 의원도 “시대, 국경, 정치적 상황을 초월한 인간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신념을 갖고 실천하는 것이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원천이 될 것”이라며 목소리를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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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망명정부 수상 롭상 생게 박사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티베트 자치 운동에 지지를 보내줄 것을 당부했다.

티베트 망명정부 수상 롭상 생게 박사는 이날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누구도 그렇게 죽는 것(분신자살)을 원치 않습니다. 불교도로서, 우리는 고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티베트인으로서, 달라이라마 성하의 티베트 귀환과 티베트인들의 자유와 단결을 지지하는 것은 우리의 신성한 의무입니다. 제14대 달라이라마 성하와 티베트망명정부는 완전한 분리 독립이 아닌 자치권 회복이라는 ‘중도적 접근’을 추구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는 대화의 장에 나와야만 합니다.”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소설가 이호철, 영화감독 임순례, 레게그룹 윈디시티도 영상으로 연대의 마음을 보내왔다.

한편 2부 희생자 추모 및 평화 염원 공연은 재기발랄하게 펼쳐졌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동환 스님의 카랑카랑한 회심곡과 티베트인 가수 까락 뺀빠 씨의 전통적이고도 신바람나는 공연, 평화를 노래하는 인디밴드 ‘그릇’과 인디뮤지션 ‘솔가’, 몽골 가수 앵흐멘드의 통통 튀는 노래에 참석한 이들의 어깨가 들썩였다. 버마행동 스탑크랙다운 밴드의 공연 역시 참석자 모두가 큰 목소리로 “프리티벳!”을 연호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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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가수 까락 뺀빠(가운데) 씨의 그룹 공연.

이날 행사에서 티베트의 평화를 함께 염원한 이들의 바람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자치권을 요구하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요구에 중국 정부가 귀를 기울여줄 것이고 둘째는 티베트인들의 외로운 싸움에 한국을 비롯한 세계인이 관심과 지지를 보내줄 것이었다.

티베트가 중국의 침략과 점령에 항거하기 위해 민중봉기를 일으킨 1959년으로부터 5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강산이 변해도 5번은 더 변했을 시간동안 탄압은 심해지고, 프리티벳, 목소리는 작아진다.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이 봉기는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