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 경내 설법전에 마련된 법정 스님의 진영 앞에 스님들이 삼배를 올리고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던 법정 스님 사바세계를 떠난 지 3년이 되는 날. 스님을 추모하기 위해 방방곡곡의 스님과 불자들이 길상사를 찾았다. 경내 설법전에는 300여 명의 사부대중이 들어찼고, 미처 들어오지 못한 불자들은 문 밖에 서서 추모법회를 함께했다.

추모법회를 알리는 범종이 흐린 하늘 아래 낮게 울려 퍼졌다. 어장(魚丈) 동주 스님의 집전으로 종사영반이 봉행됐다. 송광사 방장 보성 스님이 법정 스님의 영단에 향을 피워 올렸고, 전 송광사 주지 영조 스님을 비롯한 어른 스님들이 헌다했다. 문도 스님들과 박청무 원불교 교무, 생전 법정 스님을 따랐던 불자들이 차례로 헌화했다. 평소 스님이 즐겼던 소박한 국수도 올려졌다.

크게보기

길상사 주지 덕운 스님(왼쪽에서 세 번째)이 문도 스님들과 나란히 서서 합장을 하고 있다.

“어른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더욱 맑고 청량한 도량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길상사 주지 덕운 스님의 짧은 인사말이 있은 후 법정 스님의 생전 육성 법문이 영상으로 흘러나왔다.

“무엇에 쫓기듯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영혼이 미처 따라올 수 없도록 살아서는 안 됩니다. 차분한 마음으로 사물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면서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가꿔야 합니다. 나무만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도 향기로운 꽃을 활짝 피울 수 있습니다.”

영상 속의 스님은 여법한 모습 그대로였다. 눈부신 봄날, 오늘 이 자리에서 행복을 마음껏 누리라고 말하는 스님의 음성이 생생하게 살아나 불자들의 마음을 쓰다듬으며 위로하는 듯했다.

크게보기

추모 영상 속의 법정 스님은 여전히 낭랑하다.

이어서 송광사 방장인 보성 스님이 추모법문을 했다. 보성 스님은 “오늘의 우리는 법정 스님이 남긴 좋은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며 “각자가 법정 스님의 모습을 다 실천한 후에야 참 법정 스님의 모습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추모사를 하기 위해 법단에 선 길상사 전 주지 청학 스님도 임종 직전 “생과 사는 본래부터 없다”고 한 법정 스님의 말을 전하며 “스님의 정신과 법신은 우리와 함께 하리라는 희망으로 정진하자”고 당부했다.

추모법회에 이어 진영 봉안식이 봉행됐다. “법정 스님이 그림을 뚫고 뚜벅뚜벅 걸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라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평가를 받기도 한 스님의 진영은 수묵 인물화 분야에서 명성이 높은 김호석 화백의 작품으로, 3주기 추모법회를 맞아 처음 사부대중에 공개됐다. 진영이 모셔진 진영각 안에는 스님이 강원도 수류산방에서 쓰던 유품과 스님의 옛 저서, 서책 등이 함께 전시됐다.

크게보기

그림을 뚫고 뚜벅뚜벅 걸어 나올 것 같은 모습과 손때 묻은 유품은 그대로인데….

형형한 스님의 진영과 스님의 손때가 묻은 물건이 전시된 진영각. 마치 법정 스님이 곁에 있는 듯한 진영각을 참배하는 불자들에게서 “조금 더 계셨더라면 좋았을 텐데”하는 회한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아직도 스님을 보내지 못한 이들이 많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날 추모법회는 ‘맑고 향기롭게’ ‘무소유’ 하라는 스님의 음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진영을 들여다보는 모든 이들의 얼굴에 스님의 모습이 얼핏 겹치는 것 같기도 했다. 여전히 쌀랑한 경내에 극락전 처마 그림자가 옅게 드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