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오늘날 한국사회에 오셔서 정당을 만든다면 어떤 성격의 정당을 만드실까? 보수정당일까? 진보정당일까?

사실 이 문제에 관한한 무아, 무상 등 안정보다는 변화를 중시하는 불교의 특성상 진보적 정당이 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나왔던 이야기였다. 흥미로운 주제이기도 한 이 문제에 대해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부처님께서 오늘날 나오셔서 정당을 만든다면 개혁적 보수 또는 개혁적 진보가 아닐까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불교와 정치-정치발전과 불교의 기여’를 주제로 1월 17일 열린 <불교평론>과 ‘경희대비폭력연구소’ 공동 주최 ‘열린논단’에 발제자로 참여한 박세일 이사장은 자신의 정치경험과 불자로서의 입장 등을 바탕으로 한 불교와 정치에 대한 흥미로운 견해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박 이사장은 “헌법적 질서를 준수하는 선 안에서 진보와 보수의 견해는 70~80% 같다. 다른 20~30%는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는 건강한 지수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은 견해를 밝혔다.

박 이사장은 앞으로 정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합리성과 정직성, 포용성과 통합성, 세계성과 자주성의 3가지 덕목을 갖춘 정치세력이 승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불교는 정치발전에 어떠한 기여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박세일 이사장은 첫 번째로 ‘원융성- 불이(不二)의 사상’를 꼽았다. 자기의 시각만 고집하거나 절대시하는 것은 불교의 정신이 아니며, 진보와 보수가 각자 자기를 상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자기주장을 확실하고 정직하게 하면서도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하여, 오히려 서로의 견해 차이를 잘 활용하여 더 큰 공동체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큰 시각을 가져야 하면 그것이 대 원융이고 대중도”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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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7일 열린 불교평론 '열린논단'에서 '불교와 정치'를 주제로 발제를 하고 있는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이어 박 이사장은 ‘연기성-상호의존성’의 불교정신을 더욱 연기적으로 조직화해가는 21세기 세계에 적용시켜야 하며, 연기적 세계관을 가진 국민만이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정책 문화를 만들 수 있고 세계화 시대에 성공하는 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보살정신으로 세계를 대해야 한다는 ‘보살의 세계’ 구현을 제시한 박 이사장은 중생이 아프면 보살도 아프다는 것이 대승의 정신인데, 무수히 많은 보살이 있다고 했는데 과연 사실인가? 의문이 든다며, 1970년대 경기도 광주로 쫓겨온 난민들이 민란을 일으켰을 때, 그 현장을 가보고, 만일 성철스님이 해인사가 아닌 이런 곳에 방을 하나 얻어 찬섬수행을 했다면 어떠했을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고 술회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불교지도자들의 행보를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박 이사장은 또 정치와 종교의 올바른 관계를 흔히 ‘정교분리’라고 하지만,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중생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종교인이 중생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를 외면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또한 국민의 이익을 생각해야 하는 정치인이 국민의 삶에 큰 영향력을 주는 종교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종교인도 정치에 대해 발언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한 박 이사장은 문제는 행위자가 사심(邪心/私心)이 있는가, 없는가라고 지적했다. 박 이사장은 이 같이 불교와 정치의 관계를 설명한 후, 이런 불교정신을 반영한 정치체제가 현재 자신이 제창하고 있는 ‘공동체 자유주의’라고 소개했다.

박 이사장은 특히 통일문제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불교의 역할을 강조했다. 박 이사장은 첫째 통일의지를 가져야 하며, 둘째 이웃나라에 우리의 통일의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하고, 셋째 북한동포의 마음을 잡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3개 원칙을 제시했다. “경제대국이었던 백제, 군사대국이었던 고구려가 아닌 가장 힘 없는 신라가 통일을 이룬 것은 당시 신라의 왕과 귀족 등 지도자들, 신라 국민의 분명한 통일 의지에서 그 배경을 찾아야 한다”고 전제한 박 이사장은 “신라가 통일의지를 갖게 한 것은 불교였으며, 그것이 현실로 제시된 것이 원광법사의 세속오계”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지난 정권에서 남북관계가 단절되었고, 이런 단절이 풀리지 않는다면 북한의 중국화가 가속되는 심각한 사태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박 이사장은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의 제2 티베트화’, ‘제2의 만주국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북한과 인접한 동북3성은 한반도의 통일을 기다리고 있으며, 한반도를 통해 태평양 진출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소개한 박 이사장은 “만일 북한의 중국화가 이루어지면 중국은 북한을 통해 태평양에 진출하게 되고 북한을 통해 동해로 진출한 중국의 상선들과 함께 중국의 군함들이 동해와 일본의 근해를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게 돼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는 제2의 냉전기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박 이사장은 “남한으로 탈북한 사람들이 남한 사회를 자신들이 살 곳으로 동경하지 않고 있는 심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그들은 통일이 되어 2등 국민으로, 멸시와 차별을 당하며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의 통일 운동은 북한 동포들의 마음을 얻는, 남한의 사회를 그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세계로 받아들이게 하는 보다 큰 통일의 그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 이사장은 또 “남과 북의 분단, 한국전쟁 등으로 인하여 고통과 아픔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며 “통일 과정에서 이들의 아픔과 한을 대대적으로 해원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며 불교가 이런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지난 해 <불교평론> 폐간 사태로 3개월 만에 열린 이날 ‘열린논단’에는 평소보다 많은 불자들이 참가해 자리를 가득 메웠고, 뜨거운 열기 속에 토론이 진행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