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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된 법사님의 첫 장편소설<br>북-중 국경 넘나드는 디아스포라 이야기

이학종기자 | urubella@naver.com | 2012-12-14 (금) 14:00

크게보기이정<사진>. 절집에서 오래 산 이들에겐 꽤 낯익은 이름이다. 그이는 한 때 스님(군종법사)이기도 했고, 속세로 돌아와서는 불교방송과 경향신문 등에서 일을 했으며, <사찰사전>을 펴내기도 했던, 참으로 부지런했던 사람이었다.

2010년 소설가로 늦깎이 데뷔한 그가 첫 장편소설 <국경>(책만드는집)을 펴냈다. 소설을 쓰기 위해 그는 꽤 오랜 기간 강원도 인제 만해마을에서 마치 수도승처럼 살았다. 승려로서 정진을 거듭했던 것처럼 소설 집필을 위해 속세를 떠났던 것이다.

그는 경향신문에 근무할 때 민족문화네트워크연구소 부소장으로 일하면서 북한문화에 관심을 갖고 중국을 거쳐 북한을 자주 왕래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북한 사람은 물론이고 국경의 조선족들 등을 무수히 만났다. 그런 사이에 중국과 북한의 국경에서 이루어지는 방황하는 중생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목도했다. 그런 생생한 경험이 그의 손끝을 통해 한 권의 소설로 탄생한 것이다.

이 소설은, 소설의 형식이지만, 그 내용은 상당부분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실화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따라서 어쩌면 이 소설은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처절한 현장의 하나로 손꼽히는 현장을 생생하게 그린 기록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다 알다시피 북한과 중국의 국경은 방황하는 중생들의 고향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는 목숨을 건 탈북의 행렬이 이어지고, 잡혀서 되돌아가는 이들의 절규가 끊이지 않는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보다는 숫자가 줄었지만 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좀 더 나은 삶을 찾아서 고향과 가족을 떠나 낯선 땅으로 향한다.

소설 <국경>의 주인공은 일간지 북한 전문기자 이인철이다. 주인공은 국민의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처음 북한 땅을 밟았던 1998년으로부터 13년이 지난 시점에서 호형호제했던 황철호 참사관의 북한 탈출소식을 듣고 중국으로 향하는 것으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주인공 이인철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자연스럽게 남북의 만남, 방북 과정, 북한 내부 사정, 탈북자들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풀어놓는다. 흥미롭기도 하지만 정보적 가치로도 매우 유용해 보인다.

베이징 남북고위급회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북쪽 요인들과 몸싸움을 벌인 사건으로 이인철은 북의 실력자 황철호를 알게 된다. 나중에 형제의 연을 맺는 황철호는 이 소설의 처음과 끝을 일관하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이인철은 황철호의 도움으로 방북 기회를 얻는다. 이인철은 북한 문화재를 취재한다는 명분으로 북을 드나들며 황철호와 가까워진다.

햇볕정책으로 인해 북한 관련기사의 수요가 많아지자 이인철은 중국을 자주 드나들면서 탈북자와 그들을 돕는 조선족을 취재한다. 그러다 탈북여성 정연화를 만난다. 북한에서 대학까지 나온 그녀는 중국으로 팔려와 성노리개로 전락하고 사생아를 낳은 뒤 갓난아이와 함께 동굴에서 짐승처럼 거주하고 있다. 이인철은 정연화를 빼내 자신이 알고 있는 조선족 최씨의 식당에 취직시키며 풋풋한 사랑을 키워간다. 이후 이인철은 황철호로부터 월북화가 이쾌대의 그림,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전한다. 황철호는 자신의 부하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문화재를 조금씩 빼냈던 것이다. 이인철을 신뢰하게 된 황철호는 마침내 문화재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할 만큼 가치가 높은 신라금관을 거래하자는 제안을 한다. 형제의 연을 맺은 황철호를 살리기 위한 이인철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끝을 맺는 이 소설은 마치 한편의 생생한 다큐를 본 듯한 느낌을 준다. 그만큼 줄거리나 상황의 묘사가 사실적이다. 작가의 풍부한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크게보기실제로 언론사에서 대북 관련 업무를 맡았던 그는 주인공 이인철처럼 1998년 8월 처음으로 북한 문화재 조사를 위해 방북했다. 이어 남북관계가 경색되기 전까지 북한을 서너 차례, 중국은 수백 차례 다녀왔다. 초기에는 회사일로, 그 다음에는 사업을 하기 위해, 사업이 잘 안된 다음에는 그곳 사람들과의 인연 때문에, 그리고 결국에는 소설을 쓰려고 끊임없이 국경을 넘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북한 주민들의 속내 역시 간단하지 않다. 탈북여성 정연화가 이인철의 남한행 권유에 내내 망설이다가 입국한 뒤 수중의 돈을 모조리 사기 당하고 교통사고로 죽는 것처럼 무조건 남한으로 오는 게 능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황인철 역시 인민을 굶어죽게 만든 당국에 불만을 품고 불법행위를 저지르면서도 조국에 대한 애착과 일말의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탈북자를 돕는 조선족들을 보더라도 연민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한계상황으로 내몰린 탈북자들은 갈팡질팡하며 변덕과 배신을 거듭한다. 그 과정에서 온갖 군상들의 성정들이 배설물처럼 역겹게 드러난다. 소설은 이렇듯 복잡한 속사정을 그려내고 있다. 이인철과 정연화의 조심스러운 사랑, 이인철과 황철호의 불안한 우정에 얹어 신라금관의 행방이 소설의 뼈대를 이룬다.

이인철은 우여곡절 끝에 금관을 손에 넣은 뒤 금관을 매개로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보려고 하지만, 경색된 남북관계를 반영하듯 금관은 빛을 잃고 오랜 세월 창고에 처박히게 된다. 작가는 “소설의 세부는 거의 대부분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는 “진짜 신라 금관이 북한에 있었는데 문화재 브로커를 통해 골동품상의 손으로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소설에 대해 장윤익 문학평론가는 “남북교류 협력 시대 이후의 남북 현실을 반영한 최초의 장편소설”이라며 “통일문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문학사적 의미를 지닌 작품”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탈북자나 이산가족, 간첩 등이 아닌 북한 주민을 본격적으로 작품에 등장시킨 이전의 분단소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소설이라는 것이다.

소설가 백시종 선생도 이 소설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스마트폰에 생각을 저당 잡히고 사는 이 시대에, 사소한 일상사가 아닌 거대 담론, 그것도 남북 갈등을 통한 민족의 혼을 강조한 탄탄한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는 사실이 우리를 믿음직하게 하고 안도하게 한다”고 평한다. 특히 “몸소 체험한 현장 경륜과 균형 잡힌 문학적 감성으로, 새로운 시각의 남북문제를 정면으로 돌파시킨 진정성 있는 작가의 출현”이라며 소설가가 된 법사님의 이름을 명명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적 사유와 문장력을 갖춘 역량 있는 소설가가 드문 시절에 소설가 이정의 출현은 우리 절집에서도 기뻐할 일이 아닐 수 없다. 304쪽. 13,000원


저자 이정?

소설가 이정은 충남 논산 출생으로 동국대학교에서 승가학과 학사, 전산학과 석사를 마치고 2010년 봄 <계간문예>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정부 출연 연구소와 불교방송, 경향신문 등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경향신문 민족문화네트워크연구소 부소장 재직 시 1998년부터 북한에 관심을 갖고 남북문화교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북한을 왕래했다. 이때부터 중국과 북한에서 북한 사람들을 수백 차례에 걸쳐 만나왔다. 현재는 통일문학포럼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단편소설 <붉은 댕기머리새> <별밤 너머> <삼지연 카페> <유산> <만리장성>, 중편소설 <국경의 봄> 등이 있다. 주로 북한과 북한 사람을 소재로 한 창작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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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김경 2013-12-17 10:5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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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작가 이정씨를 만나고 싶습니다
가능할가요? 저는 중국 길림신문 한국지국에서 편집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경 기자입니다
전화 010-48078268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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