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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골 지우고 보살 얼굴 되찾으라”<br>강정마을 공동체 회복 기원 ‘용왕대재’ 봉행

모지현기자 | momojh89@gmail.com | 2012-12-14 (금) 09:19

제주제일(濟州第一)이라는 강정마을의 아버지와 아들이, 형제자매가, 피보다 진한 정으로 묶인 이웃사촌이 돌아섰다. 미군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갈등 때문이었다. 매년 음력 정월 보름을 전후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봉행했던 별포제와 용왕제 등 동제는 해군기지 문제가 불거진 2007년 이후로 5년간 맥이 끊겼다.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 화쟁위원회(위원장 도법 스님)가 반목의 골이 깊이 팬 강정마을의 공동체 회복을 위해 12월 13일 오후 2시, 강정포구에서 ‘강정의 안녕과 희망을 위한 마을 용왕대재’를 봉행했다.

화쟁위원회는 강정마을 주민 대다수가 불자인 것에 착안해 마을 전통행사인 ‘용왕제’와 불교의식인 ‘재’를 결합한 용왕대재를 기획했다. 불교계가 주도해 강정마을 사람들의 고단하고 지치고 응어리진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이를 통해 서로 화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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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대재를 시작하며 불·보살·성현을 모셔오는 시련(侍輦)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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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포구에 마련된 제단에서 의식을 행하는 스님들의 옷자락이 바닷바람에 나부꼈다.

용왕대재는 제주지방 무형문화재 제15호 제주불교의례 보유자인 구암 스님과 전수자·이수자 회원 외 제주교구 범패 스님 등 12명의 시련(侍輦)으로 시작했다. 행사에 참가한 강정마을 주민들과 사부대중도 시련 행렬을 따랐다. 불·보살·성현을 모신 후에는 부처님이 그려진 괘불을 모시는 괘불이운, 불법의 수호신인 신중을 초청하는 신중작법(神衆作法), 진언을 하며 바라춤을 추는 천수바라, 관세음보살님에게 기도를 드리는 관음기도, 부처님·보살님·신중님 등에게 공양을 바치고 소원을 비는 의식인 권공(勸供), 징·북·목탁 등의 타악기를 치며 회심곡 등을 부르는 화청(和請) 등의 의식이 차례로 이어졌다.

이날 용왕대재에서 조계종 포교원장 지원 스님은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대신해 “서로에게 향했던 미움을 내려놓고 마음 속 깊게 패인 갈등의 골을 지우라. 여러분이 먼저 마음을 내고, 여러분이 먼저 보살의 얼굴을 되찾으라”고 법어를 내렸다.

이에 앞서 태고종 제주교구 종무원장 법담 스님은 “우리는 삶의 터전인 바다와 강정마을을 지키는 용왕의 넓은 아량이 베풀어지기를 기원하고 있다”며 “오늘 법석을 계기로 상대를 이해하고 어려움을 나누는 관용과 실천의 덕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발원한다”고 봉행사를 했다.

해군기지 문제 이후 20여 차례 강정마을을 찾았다는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은 “찬성이든 반대든, 모두 예전처럼 이웃으로, 형제로, 마음의 한 가족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며 “서로의 입장을 살펴보고, 이해하려고 하기도 하고, 또 용서할 일이 있다면 용서도 하고, 화해도 하면서 따뜻한 이웃으로, 형제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자”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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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용왕대재에 참가한 300명여 명의 사부대중은 한 마음으로 강정평화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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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관음사 주지 성효 스님이 강정평화기원발원문을 낭독하는 가운데 사부대중이 합장을 하고 있다.

용왕대재는 제주 관음사 주지 성효 스님의 강정평화기원발원문 낭독과 강정마을 주민들의 소원을 적은 다라니 소각으로 마무리됐다. 성효 스님은 “먼 훗날 강정포구의 불빛이 제주를 평화롭게 하는 환희의 파도가 되도록 해 달라”며 “서로가 자비심을 발하여 예전의 이웃보다 더 사랑하게 하시고, 무엇이나 나누는 아름다운 이들이 되게 하소서”라고 발원했다.

조계종 화쟁위원회와 제주불교연합회(회장 성효 스님)가 주최하고 조계종·천태종·태고종·법화종·일붕선교종을 비롯한 제주불교연합회 산하 모든 종단과 제주도 내 각 사찰이 함께 주관한 이번 용왕대재에는 조계종 포교원장 지원 스님,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장 도법 스님, 제주불교연합회장 성효 스님, 제주 문강사 주지 래장 스님, 태고종 제주교구 종무원장 법담 스님, 조계종 재무부장 일감 스님, 조계종 사회부장 법광 스님, 조계종 교육부장 법인 스님, 조계종 노동위원장 종호 스님,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 사무총장 원명 스님 등 각 종단 스님들과 김정민 강정마을 노인회장, 윤한범 강정불자회장, 고권일 해군기지대책위원장, 김승속 사회협약위원회 위원장, 고옹렬 강정마을 부녀회장 및 주민 300여 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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