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진치 삼독을 제거하라는 것은 불가에서 불문율의 가르침이다. 탐진치 3독이 무명과 윤회의 근원이라는 것은 불교에서 누누이 강조하는 것이지만,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고 지난한 길이다.

특히 아직 정신적으로 덜 성장한 청소년에게는 삼독심 제거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삼독 가운데 특히 분노에 관한한 이를 억누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청소년기에 분심을 이성으로 가라앉히기를 바라는 것은 현실적이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청소년들의 특성을 감안해 한국명상치료학회(회장 인경 스님) 명상상담연구원이 지난 10월 13일 오후 2시부터 장충동 불광산사에서 ‘청소년의 분노조절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학술발표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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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발표회 장면. 인경스님이 발제를 하고 있다.

이번 학술발표회의 핵심 주제이자 성과는 청소년들에게 분노를 극복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했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분노를 억누르지 말고 발산하라는 것이다.

발표자들은 분노를 인지하고 표현하는 과정과, 명상 등의 기법을 활용해 분노를 흘려보내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날 인경 스님(동방대학원대 교수)은 ‘청소년 분노조절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방법론적 제언’을 주제로 발표했고, ‘명상이 청소년의 분노조절에 미치는 효과’를 김도연 임상심리사(전북대)가, ‘분노의 인지적 자각과 문제해결 집단사례’를 이선숙 상담교사(서강대)가, ‘학습화된 화가 키운 분노 다스리기 개인사례’를 이정희 선생(명지대)가 각각 발표했다.

토론에는 김말환(동국대), 박영숙(이화여대), 황옥자(동국대), 김수인(전남대) 박사가 차례로 나섰다.

이번 학술대회는 분노에 대한 억제, 통제만을 강조해온 사회적 분위기가 자칫 분노에 대한 왜곡을 통해 그릇된 방식으로 표출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 착안, 건전한 분노의 표출이 사회와 개인을 건강하게 이끄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천착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분노 표현하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는데 유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학술발표회는 이런 문제의식에 근거하여 청소년의 분노에 대한 건전한 표출방식, 혹은 자기 조절방식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의 장이 열렸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특히 명상이 전통적으로 정서적인 안정과 더불어 직면한 현실 문제를 통찰하는 힘을 가져다준다는 것이 검증되고 있는 것에 주목, 청소년의 분노 문제에 불교적 명상의 역할을 접목하는 학술적 시도라는 점도 큰 인상을 남겼다.

분노를 대함에 있어 지나치게 개인적 치료법 위주에 머물러 있는 것에서 탈피해 분노를 제어하는 사회적 기술, 즉 의사소통 훈련, 갈등 중재 훈련, 문제 해결 능력을 배양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전환을 본격화했다는 점도 이번 학술발표회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분노에 대한 부정과 억압의 차원에서 수용과 표현이라는 긍정적 변화를 통해 청소년의 분노 문제를 해결하는 불교학적 단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그동안의 분노의 치료기법이 웃음치료,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에 머물러 있을 뿐, 명상이 분노에 효과가 있다는 학술논문이 단 한 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명상상담연구원이 이번 학술발표의 주제를 명상 프로그램을 통한 청소년의 분노의 조절 방안 개발을 시도한 배경이기도 하다.

인경 스님은 발제에서 ‘분노 표현하기’의 구성을 7단계, 즉 목표설정, 인지적 자각, 표현하기, 이완 및 대처, 문제해결, 의사소통, 유지평가로 제시하고 구체적인 실행프로그램을 담은 워크북을 소개했다.

크게보기인경 스님(사진)은 1990년대부터 본격화한 명상을 상담이나 심리치료에 활용하는 방식이 청소년의 분노조절에 매유 유용할 수 있다는 데 주목했다. 외국의 연구에 의존한 명상기법의 한계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 좋은 명상프로그램을 생산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전제한 인경 스님은 이날 ‘명상 프로그램의 정체성 확보, 기존 서구 프로그램과의 통합적 프로그램 운영, 프로그램의 부분적 단계에 명상을 직접적으로 융합하는 기법의 개발’ 등의 과제를 제기했다. 인경 스님은 결론적으로 “청소년 문제에 대해 명상 혹은 명상치료적인 접근의 증대가 최근 자주 등장하는 변화 가운데 하나”라며 “동양의 명상과 서구 심리학적 치료적 접근과의 융합 내지는 통합에 대한 연구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도연 심리치료사는 ‘명상이 청소년의 분노조절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발제에서 “명상에 기반한 청소년 분노조절 프로그램에는 사고와 정서조절 및 대인관계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다양한 핵심 기술 훈련이 포함되어 있어 분노 관련 문제에 해당하는 청소년의 여러 심리적 특성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며 “그러나 참가자들에게 세부적인 피드백을 제공하고 핵심내용을 교육하기 위해서는 치료자의 숙련된 경험과 지도가 필요한 만큼 전문적인 안내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강대 이선숙 선생은 ‘인지적 자각 및 문제해결에 중점을 분노프로그램 사례 발표’를 통해 다양한 세부프로그램 및 사례 결과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명지대학교 이정희 선생도 ‘학습된 화가 키운 분노 조절’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명상을 통한 상담이 아직까지 체계화하지 못한 데 따른 현장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더 많은 연구와 보완의 필요성을 사례를 통해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