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선생의 시신이 발견된 곳에 와 보니 타살이라는 확신이 든다. 반드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과거를 역사에 맡기자는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를 규명하지 않고는 역사는 한 발짝도 진전될 수 없다.”

고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를 조속히 규명해야 한다는 불자와 시민들의 목소리가 선생의 유골이 발견된 후 처음으로 선생이 주검으로 발견된 포천 약사봉 약사계곡에서 지난 10월 6일 울려 퍼졌다.

고 장준하 선생은 유신에 반대하다가 권력에 의해 피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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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준하 선생이 죽임을 당한 장소에서 제사의식을 봉행하고 있는 명진스님, 임수경 의원, 혜문스님 등의 모습. 사진=사진가 김성헌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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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준하 선생에게 막걸리를 올리고 있는 민주통합당 임수경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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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택씨가 장준하 선생의 기구한 일대기를 다룬 창작 판소리를 열창하고 있다.

이날 4백여 명의 불자들과 시민들은 장준하 선생의 주검이 발견된 약사봉과 약사계곡을 직접 찾아 살펴보면서 타살이 확실한 만큼 즉각적인 재조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이들은 장준하 선생 타계 37년 만에 선생의 주검이 발견된 곳에 약식 제단을 차리고 제사와 함께 추모행사를 벌였다. 이들은 선생의 유골이, 특히 두개골이 지름 5센티미터 함몰된 채로 세상에 나툰 것은 민족의 명운을 가리게 될 12월 대선을 앞두고 선생이 우리 국민에게 진정한 애국과 민주화의 길을 알리려는 뜻이라며 현 정권의 은폐기도와 새누리당의 진상규명 방해를 강하게 질타했다.

이들은 약사봉 약사계곡 방문에 앞서 이곳에서 직선거리 3킬로미터 떨어진 백운산 흥룡사(주지 혜문 스님)에서 오전 11시부터 고 장준하 선생 천도재 봉행위원회(위원장 혜문 스님)이 주관한 ‘고 장준하 선생 천도재 및 의문사 진상 규명 촉구법회’를 단지불회 회주 명진 스님(전 봉은사 주지)를 증명법사로 해 봉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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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용사에서 봉행된 장준하 선생 천도재 및 진상규명 촉구법회에 증명법사로 참석해 장준하 선생의 영전앞에 분향을 하고 있는 명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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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법문에서 고 장준하 선생이 백골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온 것은 우리 국민에게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라는 뜻이라고 강조하는 명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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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준하 선생의 장남 호권 씨와 유족들이 영전 앞에 분향과 차를 올리고 있다.

명진 스님은 영가법문을 통해 “고 장준하 선생님께서 약사봉 약사계곡에서 의문의 죽임을 당한 이후 37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백골로 세상에 나타나신 것은 진실이 밝혀지고 이제 우리나라의 정치가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선생의 고귀한 희생으로 민주주의와 자유를 누리고 있는 우리 국민들은 1975년 8월 17일 일어난 고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진상 규명에 힘을 모아야 할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를 발전한다는 명분으로 한일 역사문제를 팔아 먹었다. 박근혜 후보는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로 가자고 한다. 그들의 논리라면 우리는 일본의 만행에 대해 입도 뻥긋할 수 없고 일본에게 배상하라는 소리도 못한다. 잘못한 사람들이 와서 무릎꿇고 용서를 구해야 피해자도 용서해 줄수 있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진실은 감출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다”고 강조한 명진 스님은 이어 “장준하 선생의 죽음은 그 하나의 죽음이 아니라 시대의 죽음이며, 전태일, 인혁당 사건과 함께 박정희 독재시대의 3대 죽음”이라고 규정했다.

명진 스님은 이어 “출세를 위해 나라를 빼앗은 일본군대에 지원했던 사람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경제발전을 내세워 사람을 죽이는 독재를 자행하며 대통령이 된 것은 이 나라의 도덕과 가치가 무너지고 전도된 것”이라며 “장준하 선생 죽음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이런 잘못되 가치를 바로잡는 것이며, 물질적 가치보다 사람이 우선시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천도재 봉행위원장 혜문 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최근 이장(移葬) 과정에서 밝혀진 두개골 함몰 부분으로 인해 타살의혹이 계속되고 있는 장준하 선생의 죽임 37년을 맞아 불교계를 비롯한 시민사회가 사건현장 인근인 백운산 흥룡사에서 고인의 천도재를 봉행하고 타살의혹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법회를 열게 됐다”고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2012년 10월 6일. 37년 전 장준하 선생이 의문사를 당했던 곳과 불과 3km가량 떨어진 포천시 백운산 흥룡사에서 장 선생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천도재가 열렸다.

고 장준하 선생의 장남인 장호권 씨는 인사말을 통해 “이렇게 많은 분들이 아버지의 넋을 편안하게 해드리려고 오신 점에 대해 너무 감사하다”며 “이번 대선에서 국민들이 얼마나 현명한 선택을 한다면 아버지도 그 때서야 편안하게 쉬실 것 같다”고 말했다.

직접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정동채 전 문화부장관이 대독한 추도사를 통해 “일제의 악재가 극에 달았을 때 이 땅의 한 젊은이는 혈서를 쓰고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다른 젊은이는 강제징병으로 끌려갔지만 탈출해 조국회복을 위한 광복군이 됐다”며 “장준하 선생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너무나 달랐던 선택이 우리 근대사를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후보는 또 “이 땅의 진정한 화해와 통합을 위해서는 진상규명이 돼야 한다”며 “장준하 선생님께서 국민들 앞에 구멍 뚫린 백골을 보여 준 것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라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천도재 참가자들은 장준하 선생에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잇따라 강조했다.

2003~2004년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이었던 고상만 씨는 “위원회에서 장준하 선생님 의문사에 대해 ‘진상규명 불능’이라고 결정한 것은 결코 실족사를 인정한 것이 아니”며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차후 조사를 위해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렸던 것”이라고 경위를 설명했다. 고상만 씨는 “조사를 하는 동안 당시 조난자료 등을 중앙정보부나 기무사 등 해당 부서로부터 제대로 협조 받지 못했다”며 “왜 이 사건이 벌어졌고 어떤 경위로 진행 됐는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 역시 “국정감사에서 고상만 전 조사관을 비롯해 유족들과 김용환(장준하 선생 시체 최초 목격자)씨를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며 “장준하 선생님 의문사에 대해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특별기구 설치와 특별법을 만들어 진실과 정의가 바로 설수 있도록 국회의원으로서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지난 4일 유족들이 요청한 장준하 의문사 재조사에 대해 "재조사를 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가진 기구가 없다"며 재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공식입장을 최근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