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동종은 명치유신 이후 태평양전쟁 패전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해외 포교라는 미명하에 당시의 정치권력이 자행한 아시아 지배야욕에 가담하거나 영합하여 수많은 아시아인의 인권을 침해해왔다.(중략) 특히 한반도에서 일본은 명성황후 시해라는 폭거를 범했으며 조선을 종속시키려 했고, 결국 한국을 강점함으로써 하나의 국가와 민족을 말살해버렸는데, 우리 종문은 그 첨병이 되어 한민족의 일본 동화를 획책하고 황민화 정책을 추진하는 담당자가 되었다···” (참사문 중 일부)

일본 정부는 잘못에 대한 사과를 외면하고 도리어 망언을 거듭하고 있지만, 일본 불교는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를 표명했다. 일본 불교의 최대 종단인 조동종(曹洞宗) 소속 스님들이 일제의 만행을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내용이 음각된 '참사문비(碑)'를 지난 9월 16일(일) 오전 11시 전북 군산시 동국사(東國寺) 경내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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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6일 동국사에서 봉행된 일본 조동종의 참사문비 제막식 장면. 사진=군산 동국사 제공

가로 3m, 세로 2.3m 크기의 참사문비의 비문은 일본 조동종이 20년 전 발표한 참사문 일부를 발췌한 것으로 일제가 저지른 과오에 대해 참회와 사죄의 뜻을 담고 있으며 왼쪽은 한국어 번역문, 오른쪽은 일본어 원문이 새겨져 있다.

조동종의 대표로 참석한 이치노헤(一戶彰晃) 스님은 지난 1992년 11월 교의에 어긋나는 부끄러운 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는 ‘참사문’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참회의 뜻이 한국사회에 널리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워하던 중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아예 경내에 참사문비를 세우게 된 것이라고 참사문비 건립 배경을 설명했다.

참사문은 “조동종을 비롯한 일본 종교가 국가와 언어는 물론 민족문화에 기반을 둔 이름까지 빼앗는 만행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맡았고, 중국 등지에서는 민중에 대한 선무공작을 담당했으며 그중에는 자진해서 특무기관에 접촉, 첩보활동을 한 승려도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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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종의 대표로 참석한 이치노헤 스님이 참사문비 건립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조동종 스님들은 이날 일본은 불법을 국가 정책이라는 세속적 법률에 예속시키고, 타민족의 존엄성과 정체성을 침탈하는 두 가지 잘못을 함께 범했으며 우리는 두 번 다시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일본 조동종은 한국의 조계종 격에 해당하는 일본 최대 종단이며 일제패망(1945) 당시 한반도에 160여 개 사원과 포교소를 거느렸던 일본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이다. 경술국치(1910) 이전부터 조선에 진출한 일본 불교(조동종)는 정부의 전쟁 정책을 적극 선전하고 참여했으며 물자 공출을 강권했다.

이날 참사문비 제막식은 일본의 동지회(東支會) 회장 이치노헤(일본 아오모리 현 운상사 주지) 스님이 주도했고, 제작비용도 일본 불교계에서 부담했다. 일본의 뜻있는 승려와 신도들이 동국사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11년 12월 창립한 '동지회'는 2012년 1월 동경에 사무국을 개설한 종교단체이다.

제막식에 앞서 일본 스님과 한국 스님들은 대웅전에서 열린 동국사 창건 104주년을 기념하는 한·일 합동 다례제(茶禮祭)를 봉행했다. 이날 다례제는 한국·일본의 불자들과 군산시민, 동국사를 찾은 관광객도 함께했다.

이날 제막행사에는 이치노헤 스님을 비롯해 오다케 동지사 부대표, 일본인 작가 도다 이쿠코(도서출판 토향 대표), 동국사 주지 종명스님, 성불사 주지 종걸 스님, 문동신 군산시장, 이복웅 군산문화원장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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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종 참사문비 동국사 경내 건립이 성사되기까지 견인차 역할을 했던 종걸 스님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편 종걸 스님(성불사 주지)은 오는 10월에 동국사에서 토론자 20여 명이 참여하는 ‘제1회 한·일 불교 대토론회’를 열고 12월에는 서울에서 한국에 남아 있는 일본 범종(주조장 다카하시가 만든 종) 관련 학술 발표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동국사(국가등록문화제 64호)는 1909년 일본 조동종 승려(우찌다)가 군산 외국인거주지 1조 통에 포교소(금강사)를 세우고, 1913년 현 위치에 대웅전과 요사를 신축하였다. 해방 후 김남곡 스님이 동국사로 개명하고 1970년 대한불교 조계종 24교구 선운사에 등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