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병인양요 이전의 강화도 군수물자 현황을 알려주는 문헌이 발견됐다. 군수물자 현황을 기록한 문서의 이면이 부처님의 일대기를 기록한 <팔상록> 제작에 활용된 것이다. 관문서를 이면지로 사용해 경전을 만든 경우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국대 불교학술원은 9월 11일 동국대 본관 로터스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 같은 사실을 발표했다.

군기 고문서 내용 중 일부가 누락됐다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에 발견한 군기수목은 19세기 중반 병인양요 직전 강화부의 방어 태세 전반을 살필 수 있는 사료로 조선의 군사적 수준과 외세에 대한 방어능력을 살펴보는데 매우 긴요한 군사적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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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불교학술원 HK 겸임교수가 <군기수목>을 들고 있다. 이면에 기록된 <팔상록>이 비쳐보인다.

불교학술원은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ABC)사업’의 일환으로 2012년 상반기 강원도 평창의 지암정사 소장 도서 170책에 대한 목록 조사와 촬영 작업을 수행하던 중 1854년에 필사된 언해본 <팔상록(八相錄)> 권4에서 군수물자 내역을 담은 관문서를 발견했다.

이 문서는 ‘강화부 부상각진보상각돈대상 각양군기잡물수목(江華府 府上各鎭堡上各墩臺上 各樣軍器雜物數目, 이하 군기수목)’으로, 1854년(철종 5, 함풍 4) 2월 13일 현재 강화부 각 진보 및 돈대가 소장한 화약, 소총, 장총, 활과 화살, 불랑기(佛狼機, 서양식 대포) 등 각종 군기 현황을 강화유수(江華留守)의 책임 하에 정리한 것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당시 강화부 전체의 보유 화약은 모두 6만 6천 400여근에 달하는 막대한 양이다.

군기수목에는 강화부 전체의 군기 상황뿐 아니라 각 진보 및 돈대, 4영(營) 등에 배치된 무기 및 군수 물자 현황과 전등사(傳燈寺), 천자암(天齍菴), 진해사(鎭海寺)등 강화 소재 사찰과 암자의 솥(鼎) 개수까지 파악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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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학술원이 촬영한 <군기수목> 일부. '화약(火藥)'이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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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일대기를 담은 <팔상록>은 전문 한글로 쓰여 있다. 불교학술원은 <팔상록>을 조사하던 중 <군기수목>을 발견했다.

군기수목을 이면지로 활용, 같은 해 여름 제작된 언해본 <팔상록>은 최성엽이라는 사람이 우봉 최씨 일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옥야부인견불수훈>, <신일독반견불생신>, <취녀승불위력개용>, <취아견불위능득도> 등 총 10개의 항목이 수록돼 있다. <팔상록> 뒷부분에는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 앞선 기록과 전혀 다른 글씨체로 부기되어 있는데, 말미에 ‘서울 관동정 5의 73 불교시보사’라고 적혀 있어 후대에 이를 필사하여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팔상록>은 전집 중 권4에 불과해 불교사적 가치는 크지 않으나, 전권이 한글로 쓰였다는 점에서 한글사적 의의가 있다.

한편 불교학술원 측은 관문서가 경전 제작에 이용된 것에 대해 “군사 기밀을 은폐하기 위해 불교경전으로 위장했을 가능성과, 왕실에서 경전 제작할 때 질이 좋은 관문서를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정확한 이유나 경위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 책의 발굴은 불교기록문화유산의 조사 및 정리 사업이 불교, 유교를 포함한 한국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아우르는 다방면의 문헌자료와 고문서를 발굴, 소개할 수 있음을 입증시켰다.

이와 관련 이종수 불교학술원 HK 겸임교수는 “향후에도 전국적 규모의 기록문화유산 조사사업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학제적 연구에 이바지하고, 한국의 역사전통에 대한 문헌을 발굴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으면 한다”며 “외규장각이 있던 강화도의 군기수목을 이면지로 활용해 만든 본서의 성격을 고려할 때, 팔상록의 유통과 왕실 및 관인 층에서의 불교신앙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