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단결’ 띠를 두르고 확성기를 통해 소리치는 노동자의 모습은 어느덧 익숙한 풍경이 됐다. 하지만 익숙한 풍경 뒤에 있는 ‘이야기’에 관심을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대량 해고와 구조조정 속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해고 노동자, 2천 648명이 감축되고 22명이 죽음으로 내몰린 쌍용자동차 노동자, 저임금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 자본과 기업이라는 거물 앞에서 휴지조각처럼 구겨진 노동자들의 인권을 함께 지켜내고자 조계종(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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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은 500여 명의 노동자와 함께 무차대회를 열었다.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본부장 도법 스님, 이하 결추본)는 지난 8월 29일 저녁 조계사 마당으로 노동자들을 초대해 첫 번째 시민초청 무차대회를 열었다. 무차대회는 승가, 재가, 빈부를 떠나 평등하게 법문을 듣고 공양을 나누는 불교의 아름다운 전통이다.

조금씩 어둠이 깔릴 무렵 가사장삼을 두른 스님들과 투쟁 구호가 적힌 조끼를 입은 노동자 500여 명이 조계사 마당에 집결했다. 참가자 전원이 결연한 표정으로 합장을 한 가운데 스물 두 번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쌍용자동차 희생 노동자를 기리는 타종으로 무차대회 1부 ‘노동자를 부처님으로’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 이어 짧은 묵념을 한 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노동자들을 맞이하는 인사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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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원 및 희생자 유가족들과 스님이 함께 타종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오늘 무차대회는 불교가 노동자의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고 위로의 손을 내밀며 함께 만나는 소중한 자리다. 오늘은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부처님이 되는 날”이라며 “불교가 그동안은 사회적 갈등 해소에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못했지만 이번에 발족한 노동위원회를 통해서 노동과 관련된 문제들을 고민·토론하며 불교적인 해법을 찾아가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정의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수석부위원장은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이 줄줄이 죽어나가는 안타까운 상황을 타계하고자 온몸으로 울부짖으며 투쟁을 전개해왔다. 불교계에서 우리 정의로운 투쟁에 위로와 격려해줘 고맙다”며 진심어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정 부위원장은 또 “불교계가 무차대회의 정신으로 모든 사람들의 힘을 하나로 묶어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는데 앞장서서 이끌어주길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이어지는 공양시간에는 스님들이 장삼자락을 걷어붙였다. 자승 스님을 비롯한 결추본 본부장 도법 스님, 총무부장 지현 스님 등은 노동자들에게 나물과 국, 밥, 떡 등을 손수 배식했다. 노동자들과 한 식탁에 둘러앉은 스님들은 함께 공양을 하며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조언과 위로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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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 스님은 노동자들에게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하며 손수 떡을 나눠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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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은 노동자들 사이에 앉아 함께 공양하며 노동자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2부에서는 ‘노동자, 불교와 만나다’라는 주제 아래 노동자들의 공연이 펼쳐졌다. 공연에 앞서 도법 스님은 “미안하고 부끄럽다”며 “사찰이 세상의 아픔을 품어 안는 곳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노동의 가치 문제에 관심을 갖고 배워서 자본과 노동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자”고 노동자들을 격려했다.

지난 8월 27일 정식으로 출범한 조계종 노동위원회 일동도 무대에 올랐다. 노동위 위원장 종호 스님은 “노동자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에 뛰어들어 그들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함께 투쟁하고 함께 조정해나가기 위해서 노동위원회를 발족했다”며 “앞으로 노동위의 활동을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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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위원회 위원장 종호 스님을 비롯한 위원들이 무대에 올라 노동자들에게 선을 뵀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도 이야기손님으로 연단에 섰다. 백 소장은 “노여움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노동자를 위해서 조계종이 노동위원회를 만들었다니 정말 감사한 일”이라며 “단순히 공양을 나누는 것보다 빼앗긴 노동의 대가를 찾아주는 진정한 무차를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찬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 인생도 시리고… 도와주는 사람 함께하는 사람은 있지만 정말 추운 건 어쩔 수 없더라. 내가 왜 세상에 농락당한 채 쌩쌩 달리는 차 소릴 들으며 잠을 자는지. 내가 왜 세상에 버림받은 채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됐는지. 찬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 인생도 춥더라…’

조계사 마당에 노래패 ‘꽃다지’의 연주와 노래가 울려 퍼졌다. 노동자와 스님들은 곡조에 몸을 맡기고 노랫가락으로 울분과 격정을 달랬다. 율동패의 무대도 무차대회의 흥을 돋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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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패 '꽃다지'는 담백한 연주와 목소리로 노동자들을 위로했다.

무차대회는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고 존중하고 보호하여 소박하고 정의로운 삶이 빛자는 삶이 되도록 평화로운 공동체를 가꾸는 불교인으로 새롭게 태어나겠다”는 ‘이 땅의 모든 노동자를 위해 올리는 서원문’ 낭독을 끝으로 회향했다.

결추본은 이날 노동자 초청 무차대회를 시작으로 향후 100일에 한 번씩 사회 소외계층을 초청해 공양과 불법을 전하는 시민초청 무차대회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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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으.로.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