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역차별 시대가 도래했다고 한다. 현실정치에 여성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등장한 이 시점에 ‘불교에서 여성은 열등한가’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열린 것은 어쩌면 시대를 거스른 주제일 수도 있겠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무슨 배짱으로 여성을 차별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적으로 불교 안에서 여성은 여전히 차별적 존재로 남아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여성에게 설법과 사제의 권한을 부여하기 않고 있는 다른 종교에 비교하면 불교는 매우 양성평등적 종교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참신하지 않다. 외려 진부하게 들린다.

<승만경>이라는 대승경전에서 보듯이 이미 여인의 이름을 딴 경전까지 유통된 마당에 ‘여성불성불설’이라든가, ‘변성남자성불설’ 등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불교 안에서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비구니팔경계법은 평상시엔 잠복해 있다가 기회가 생기면 다시 고개를 내밀고, 비구니는 종단의 여러 요직에 진출할 수 없거나 진출이 어렵게 제도가 고착되어 있다.

제도나 시스템은 고치면 되는 일이지만, 남성과 여성 사이의 의식에 공히 깊숙이 뿌리내린 불평등 의식이 더 큰 문제다. “다음 생에는 남자의 몸을 받아…”라고 적힌 경북 문경의 한 비구니 사찰 공양간 벽에 걸린 옛 비구니 스님의 발원문 성격의 글은, 수천 년을 이어온 불평등의 골이 생각보다 깊음을 알게 하는 좋은 예시이다. 이런 의식은 의외로 그 뿌리가 깊고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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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를 하고 있는 이창숙 박사.

이런 와중에서 열린 불교평론 열린논단. 이창숙 박사의 ‘불교에서 여성은 열등한가’라는 발제는 눈길을 끌기에 모자람이 없는 핫 이슈였다. 그러나 참석자 수는 매우 적었다. 특히 여성들의 참석이 거의 없었다는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너무나 뻔한 결론을 가진 토론 주제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도 이 주제의 발제에 대해 “불교에서 여성은 열등하다”는 결론이 나올 수 없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의 토론은 진지하면서도 격렬했다.

“교조인 석존이 여성을 인정한 그 사상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희석되고 후계자들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 여성관을 형성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불교가 속한 사회의 여성에 대한 인식도 관계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중간에 부정적인 여성관이 있었더라도 승만경을 앞세운 여성성불설은 석존 사상에로의 회귀이다. 승만부인은 정법의 실현자로서 거기에는 남녀차별적 인식은 없다. 마하파자파티 고타미에서 시작된 불교여성의 역정은 승만부인에게서 이상적인 정법의 실현자로 회향한다. 불교에서 여성은 열등한 존재가 아니다."

이창숙 박사는 늦깎이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존재에 대한 평등성을 경전의 근거를 들어 차분하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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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여성은 열등한 존재인가를 다룬 6월 21일의 열린논단은 참석자는 적었지만 매우 진지한 토론이 오갔다.

“여성이 별거 있나. 내생에 남자몸 받는 거 밖엔!”

그가 불교에서 여성의 존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어느 법회에서 평소 매우 합리적인 주의주장을 펼치던 한 비구스님의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으면서부터다. 정말로 저 스님의 말씀처럼 경전에서 여성을 이런 수준으로 보고 있는가가 몹시 궁금해지더라는 것이다.

때마침 그가 기자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였던 1975년은 UN에서 ‘세계여성의 해’로 정한 해로, 여성문제에 대한 논의가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개진되던 시기였다. 여성해방운동이 일어나고, 우리나라에서도 여성학이 도입되어 연구되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1975년 이전에는 여성운동이 여성의 지위찾기 수준에 머물렀으나 그 이후에는 여성해방운동으로 전환되어 전개되었다.

이창숙 박사는 스님에게 질문을 했다. “인간해방사상에 관한한 여러 종교 가운데 불교만한 가르침은 없지 않는가?” 그러나 스님의 답변을 간결했다. “보살이 무슨…. 망상떨지 마라.”

이창숙 박사는 운명처럼 어깨를 짓누르는, 불교에서 여성을 차별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학문적으로 규명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경전과 논서를 뒤졌다. 그에게는 일종의 확신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부처님은 진심으로 여성을 차별하지 않았다”는 확고한 믿음이었다.

그런 노력 끝에 그는 다음과 같은 확신을 얻었다.

“결국 석존은 여성을 교단에 받아들여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정신세계의 동참자가 될 수 있게 하였다. 석존이 세 번이나 거절했는데도 물러서지 않고 끝내는 허락을 받아낸 마하파자파티 고타미와 그의 추종자인 5백여 명의 여성들의 용기는 불교의 역사를 빛낸 등불이다. 바라문 교권제도 아래서 엄격했던 카스트 제도를 부정했던 석존의 평등사상만이 가능케 한 것이다. ”

이윽고 질의응답 시간.

“부처님께서 여성을 차별하지는 않았지만, 여성출가는 마지 못해 허락하지 않으셨지 않은가?”

이에 대해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여성 출가의 허락을 저어하신 것은 차별 때문이 아니라 당시 여성을 아이 낳는 존재 정도로 여겼던 인도사회의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주장, 비구 중심의 승가에 여성이 들어올 경우에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한 우려 때문에 머뭇거리셨을 것이라는 주장, 숲속의 나무 아래에서 수행을 하는 당시의 풍토에서 실질적으로 교단의 관리에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한데서 보이신 행이라는 등의 갖가지 주장이 대두됐다.

그러나 열띤 토론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공통적으로 흐르는 주된 흐름이 있었으니, ‘부처님께서는 결코 여성을 차별하실 분이 아니며, 차별하지 않으셨다’는 것이었다. 6월 논단은 모처럼 모든 토론자들이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 깔끔한 논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