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중기자
myhyewook@naver.com 2012-06-05 (화) 23:11“한국불교와 대한민국은 똑 같다. 국민들이 정치인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듯 종단의 국민들이라 할 수 있는 일반스님들이 종단 고위층 스님들에게 변화를 요구해도 소용이 없다. 정치인들과 정치승들은 같다”
“불교에 해를 끼치는 잡초들을 빨리 제거해야 한다. 잡초들은 금방 자라기 때문이다. 잡초는 곡식이 될 수 없다. 스님들은 공부하고 수행하는 출가본분을 지켜야 한다. 종단이 우릴 걱정해야지 왜 우리가 종단을 걱정해야 하는가”
1992년 미국대선에서 당시 빌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말로 현직 대통령인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를 누르고 승리를 따냈다. 그렇다면 ‘승려도박 사건’ 등 승풍실추로 난관에 부딪친 조계종의 문제 해법은 무엇일까?
문제는 돈... "잡초들을 제거해야 한다"
6월 5일 저녁 7시.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열린 ‘천일정진 1차 야단법석’에 참가한 사부대중들은 “돈이야, 스님들”이라며 현 조계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첫 발언부터 불자들이 조계종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평담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중년불자는 발언을 통해 “종단을 해하는 잡초들을 거둬내야 한다.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 스님들은 이제라도 공부하고 수행하는 출가본분을 지켜야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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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짅본부는 6월 5일 저녁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천일정진 1차 야단법석'을 개최했다. 야단법석에 참석한 남성불자가 발언을하고 있다.
그는 또 "조계종은 정체성이 결여돼 있다. 조계종은 생사해탈이 아닌 기복불교로 흘러가고 있다. 기복에 치우치다 보니 제대로 된 수행을 한 스님들을 볼 수 없다. 예수재한다고 각 사찰들이 얼마나 난리를 쳤는가? 스님들이 불자들을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에 자신만을 위하는 불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노인들이 자식을 위해, 자신의 영생을 위해 기도만 올리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면 불교는 ‘박물관 불교’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남성불자는 “개인적으로 스님들이 어떤 방법과 어떤 마음으로 수행을 했기에 잡초가 된지 궁금하다. 재가자들도 불경을 읽고 스님들의 말씀을 들으면 어느 정도 정화가 되는데 오랫동안 수도에 정진했다는 스님들이 물욕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큰 문제가 있다. 시스템 개선이 아닌 근원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피력했다.
양천구 주민이라고 소개한 여성 불자는 “한국불교의 수행관과 불교관이 문제가 있다. 승풍 실추 사건으로 미미하다 할지라도 모든 불자들이 영항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불교관, 수행관에 근거한 대안이 나와야한다”고 주장했다.크게보기
조계종의 근원적 문제를 지적하는 발언은 계속된다. 경북 영천에서 야단법석에 참가한 남성 불자는 “조계사에 와보니 일주문에서 대웅전 앞까지 연등이 걸려 있다. 많이 놀랐다. 이게 다 눈먼 돈이다. 눈먼 돈을 콘트롤 할 수 있어야 한다. 스님들이 출가했을때와 달리 목표 지향점이 없어지는 것 같다. 기본 가르침은 살아 있지만 스님들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허정스님 "살짝 눈 감으면 돈 들어온다. 제도 개선 시급"
이에 대해 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 소장 허정 스님은 “문제의 핵심은 돈 문제”라며 “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번 사태와 같은 일들이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정 스님은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출가를 해도 눈만 살짝 감으면 백만 원, 천만 원 그 이상의 돈이 들어올 수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런 현실에서 스님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를 대충 덮자는 것이다. 스님들이 재정적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처음에 걸망 내려놓을 곳이 없던 스님이 창고 토굴에서 지내다 냉장고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하니 아파트 토굴이 나오는 것이다. 승려노후 복지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한다”고 주장했다.크게보기
야단법석에 참가한 한 스님은 “스님들이 불자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일상에서 실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멀쩡한 사람도 병이 있다고 속여 절로 오게 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삼천배를 해봐라 돈이 생기나. 불자들이 현실에서 부처님 법을 실천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런 스님들을 흙탕물에 던져놓고 다시 빼내려 한다. 그러니 되는 일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계종 불교 재미없으면 떠나라"
스님들의 뼈를 깍는 자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종로구 청진동이 고향이라는 고 모 불자는 “스님들이 이번 사태를 반성하는 의미로 저잣거리에서 텐트를 치고 돌팔매를 당하든 욕을 먹든 대중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며 “부산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를 해도 좋을 것 같다. 진심으로 참회하는 모습을 보여야 신도들이 다시 모이게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한 술 더 떠 한 스님은 “선방에서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해 재가 거사를 찾아간 적이 있다. 재가 거사가 스님들보다 더 많은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애국심 차원에서 한국영화를 보라고 하면 보겠는가. 재미있어야 본다. 마찬가지다. 조계종이 가르치는 불교가 재미없다면 스님들이 정신 차리게 떠나버려라. 그래야 불교가 살고, 스님들이 정신 차린다. 신도들이 가열 차게 채찍을 들어야한다”고 본의 아닌 양심선언을 하고 말았다.
발언 내내 눈물을 흘린 한 여성 불자는 “과거 스님에 대한 반발심으로 삭발을 한 적이 있다”며 “승복을 입은 스님만 뵈도 행복한데 그런 스님들을 보면서 슬픈 마음이 들지 않게 스님들이 진정으로 불자들에게 귀감이 되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40대 직장인 남성불자는 “오늘 야단법석에 와보니 불자들이 아직 세상의 따가운 눈총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도덕성을 상실한 조계종 스님들로 인해 불자라고 얼굴도 내밀지 못하고 있다. 조계종이, 불교가 우리사회, 다른 종교 신자들에게 존경을 받고, 사회의 구심적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희망을 얘기했다.
60대 남성불자는 “솔직히 스님들이 대형 자가용을 타고 가는 모습을 보면 슬퍼진다”며 “스님들이 노후문제 때문에 물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속인과 다를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연이어진 비판 속에서도 스님들을 옹호하는 발언도 있었다. 법석 초반 조계사 신도라는 한 여성 불자는 “모든 것을 스님들 탓으로 돌리지 않으면 좋겠다. 이번 사태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 성호 스님이라는 사람은 수행이 덜 된 사람”고 주장했다.
중년의 한 남성 불자도 “8명이 한번 도박한 것이 뭐 그리 큰 일인가. 결국 불교가 언론들에게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원장 스님 이하 스님들이 잘하고 계신 것 같다.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미래불교를 위해 어린이 포교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는 한 젊은 불자의 발언으로 묻히고 말았다.
그는 “탐관오리 한 명 때문에 모든 대한민국 관료(정치인)들이 모두 욕을 먹을 필요는 없다. 불교계도 정치승 몇 명 때문에 모든 스님들이 질책을 당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삼보일배를 하던 저잣거리에서 돌팔매를 맞던 그것은 당사자 스님들이 해야 한다. 왜 아무런 죄도 없는 스님들이 그들을 위해 참회에 나서야 하는가. 이제라도 스님들이 스스로 참회하고 부끄럽게 생각해야한다”며 “대한민국과 한국불교는 똑 같다. 정치승은 정치인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크게보기
한편 조계종 자성과쇄신추진본부(본부장 도법 스님)가 주최하고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가 주관하는 천일정진 1차 야단법석 ‘위기의 한국불교, 희망은 어디에?’는 이날을 시작으로 7일까지 계속된다. 이후 야단법석은 6월 12일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조계사 앞마당에서 ‘공동체의 오래된 미래, 한국의 승가는 안녕하신가?’ 등의 다양한 주제로 사부대중들과 함께 불교의 현실과 미래를 진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