蓮이를 위하여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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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당이었다. 기가 막혔다. 현당은 벌벌 떨고 있었다. 현당은 그때까지 인민군이 북쪽으로 물러간 것을 모르고 있었다. 얼굴은 그야말로 뼈와 가죽만 남아 있었다. 언제부터 동굴에 숨어 있었는지 머리카락은 산발을 한 채 뒤엉켜 있었다. 햇볕을 쐬지 못해 창백한 얼굴. 그가 숨어 있는 몇 개월 동안 그의 가족 누구도 그에게 식량을 배급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이 백천 동굴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모두 죽었던 것이다. 외설리에서는 유일하게 대대손손 지주였던 그의 가솔들은 모두 동구 밖 밤나무 숲으로 끌려갔던 것이다. 그곳에서는 그나마 형식적인 인민재판도 없었다. 현당의 가솔들은 인민군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게 무참하게 죽었다.

 마을에 연기가 오르는 늦여름 아침. 경묵이가 손에 들었던 죽창을 올렸다. 현당의 얼굴은 하얗게 변했다. 앞으로 툭 튀어나온 광대뼈의 근육이 실룩거렸다.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질 형상이었다. 한쪽으로 찢어진 눈 끝에 눈물이 고였다.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나와 경묵이를 쳐다보는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아득하기만 했다. 애원하고 있었다. 목숨을 살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반가움이었는지도 모른다. 눈은 이미 풀려 있다. 경묵이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눈에 살기가 돌았다.

 “죽여야 한다.”

 경묵이는 똑바로 현당을 쳐다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왜 이러는가?”

 현당이 다급하게 턱을 들었다. 경묵이가 죽창을 겨누며 천천히 현당에게 육박했다. 소학교 때의 언젠가 학교 화단에서 코스모스를 뿌리째 들고 단수학에게 육박하던 그 몸짓이었다. 주춤 현당이 물러섰다. 그러나 경묵이의 얼굴은 표정이 없다. 현당은 자꾸만 뒤로 물러나다가 결국 동굴 벽에 막혀 스스로 무너졌다. 체념한 현당의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굳이 죽창으로 찌르지 않아도 그대로 놔두면 죽을 모습이었다. 속마음은 단번에 때려잡고 싶었다. 그러나 내 말은 엉뚱하게 나갔다.

 “자네 때문이 아니고 나 때문이라면 그만두게. 내가 죽고 사는 건 이 양반 탓이 아니야. 난 이제 이런 꼴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네.”      

 “그렇지 않으면 자네가 죽어.”

 경묵이는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고개를 흔들었다.

 “불쌍한 양반일세.”

 “동수!”

 현당이 기어 와서 내 발목을 부여잡았다. 나보다 세 살 위인 현당은 어릴 때 백천사에서 나와 함께 지낸 적도 있었다. 마을에선 유일하게 항상 쌀밥을 먹던 사람, 그만큼 세도가 셌다. 현당은 학교 다닐 때 책 보따리도 들지 않았다. 언제나 봉환이가 들고 다녔다. 고상받기를 해도 닭싸움을 해도 몸이 약한 현당은 언제나 승자였다. 

 그러나 이제 그의 가족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 현당은 내 발목을 부여안고 흐느껴 울었다. 더러운 세월을 갈아치우기 위해 깃발을 들었는데...... 현당을 일으켜 세웠다. 비록 지주 집 아들이라 거들먹거리기는 했지만, 서로의 숟가락 젓가락 숫자를 헤일 수 있을 정도로 함께 뒹군 사이였다. 울고 있는 현당을 내려다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형님, 북쪽 사람들은 모두 물러갔소. 이제는 마을로 내려가도 될 거요. 그렇지만 형님 아버지와 형제들은 모두 마을 사람들한테, 아니 나한테 죽고 말았소. 내게 복수를 하고 싶거든 내가 이곳에 숨어 있다고 신고를 하시오. 그러면 내가 형님을 따라 내려가리다. 빨리 내려가시오!” 

 그러나 현당은 경묵이의 눈치를 살피며 망설이고 있었다. 

 “어림도 없는 소리! 잘못하면 나까지 죽어!”

 그러나 경묵이 자신의 목숨을 걱정할 사람이 아님은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경묵이는 나를 위해서 현당을 죽이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나는 그때 보았다. 경묵이의 손에 들린 죽창이 떨리고 있는 것을. 그때 경묵이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한 가지만 보고 있었다. 현당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경묵이는 그야말로 개미 새끼 하나 죽이지 못하는 위인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개구리나 메뚜기를 줄줄이 꿰고 들판을 휘젓고 다닐 때, 경묵이는 노루목 풀밭에 앉아 하늘을 보던 친구였다. 현당 때문이 아니라 경묵이 때문에 눈물이 흘렀다. 

 “죽는 게 그렇게 겁나면 이 양반의 목을 찔러. 그렇지만 그건 자네가 해야 될 일이 아니야. 내게 권총이 있네. 원한다면 내가 내 손으로 죽이지.”

 오른쪽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다. 현당은 나와 경묵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의 표정은 처음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그저 제 삼자가 되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견딜 수 없었다. 천천히 현당의 머리에 총구를 겨눴다. 

 현당은 잎사귀가 떨어진 겨울나무처럼 움직임이 없었다. 무릎을 꿇어앉은 채 멍청하게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섭도록 맑은 늦여름 우리의 마을을 바라보며 몇 번의 심호흡을 했다. 권총을 잡았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스라이 눈에 들어온 동구 밖의 미루나무들이 흔들렸다.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 순간 경묵이가 현당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동수 말대로 형님 마음대로 하시오. 그러나 일이 잘못되면 형님은 나한테 살아남지 못할 거요. 나를 시험해 보고 싶다면 마음대로 하시오. 그건 순전히 형님 문제니까.”

나를 붙잡고 한참을 울던 현당은 쓰러질 듯 쓰러질 듯 마을로 내려갔다. 그가 우리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서 있었다. 정말로 내가 현당의 머리에 총질을 하려고 하였는지, 하지 않으려고 하였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환하게 날이 밝고 동굴에 들어와서도 경묵이는 나와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 나 또한 경묵이의 얼굴을 볼 자신이 서지 않았다. 벌거벗은 인간들, 서로가 부끄러웠다. 

 “난 자신이 없어. 난 저 사람보다 더 오래도록 버틸 자신이 없어. 저 사람은 두고두고 이승에서 살아갈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야. 흐흐!”

 “믿을 수 없는 사람이야. 각오는 해야지.”

 경묵이는 쓸쓸하게 말했다. 만약 현당이 입을 벌린다면 나뿐만 아니라 경묵이도 죽을 것이다. 머리가 혼돈스러웠다. 가지고 온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경묵이도 재빠르게 움직였다. 불안을 이기기 위해 우리는 나무를 자르고 땅을 팠다. 아담한 방은 순식간에 마련되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보았다. 현당이 이곳의 원주인인 늑대 무리를 내쫓고,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았는지……. 들쥐 가죽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잠자리 옆에 뒷간이 있었다. 혹시라도 사람들 눈에 띌까 봐 동굴 밖을 나가지 않은 것이다. 샘물을 마시러 가는 것도 무서워서 자기 오줌을 먹고 산 흔적. 삶에 대한 무서운 집착. 그런 무서운 집착으로 현당의 선조들은 대대로 외설리의 소작인들을 지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역시 콩 심은 곳은 콩이 나기 마련이다. 

 그로부터 나의 동굴 생활이 시작되었다. 자연적인 자리 교체였다. 현당이 머물던 동굴뿐만 아니라 등잔도 내 차지가 되었다. 등잔. 그나마 내가 이렇게까지 버틸 수 있는 것은 하늘의 힘도 아니고, 풍족한 양식의 덕도 아니다. 

 하루 종일 나를 지켜주는 저 불빛 때문이다. 경묵이의 예상과는 반대로 현당이 나의 살아 있음을 눈감아 준 덕분이다. 동병상련이라고 할까, 아마도 동굴 속에서의 참담한 생활이 현당을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짧지도 길지도 않은 세월이 흘러갔다. 벌써 10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