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지장 스님은 구화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구화산은 아홉 송이의 연꽃 봉우리가 솟은 것 같다고 해서 부르는 산 이름이었습니다. 지장 스님은 삽살개를 데리고 구화산 입구에서 아주 깊은 산골짜기로 올라갔습니다. 지장 스님은 작은 동굴을 발견하고서야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날부터 지장 스님은 도토리 죽을 끓여 삽살개와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힘든 수행을 시작했지요. 동굴 안에서 하루 종일 꿈쩍 않고 명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에는 그런 지장 스님에게 독사가 다가와 그의 다리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지장 스님이 너무나 치열하게 수행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몸에는 독이 퍼지지 못했습니다.
 잠시 후, 아름다운 여인이 다가와 잘못을 빌었습니다.
 “스님, 죄송하옵니다. 스님께 잘못을 비는 마음으로 샘물이 나는 곳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부터는 위험하게 낭떠러지 아래로 물을 뜨러 가지 마옵소서.”
 여인은 샘물이 날 곳을 가르쳐주더니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여인이 사라지는 쪽을 바라보니 독사 꼬리만 보이고 있었습니다. 지장 스님은 지체하지 않고 여인이 가리킨 돌무더기를 나무 지팡이로 헤쳤습니다. 그러자 과연 샘물이 송알송알 솟아올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지장 스님이 산 아랫마을로 내려갔다가 다시 산을 오르는데 비명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달려가 보니 호랑이가 한 소년을 물어뜯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호랑이는 으르렁거릴 뿐 물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삽살개가 호랑이를 향해서 덤벼들려고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스님, 살려주세요.”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하다니! 고약한 짐승이로군.”
 지장 스님이 버럭 고함을 치자 호랑이는 슬그머니 뒷걸음을 쳤습니다. 삽살개는 더욱 크게 짖어댔지요. 어느 새 호랑이는 산골짜기로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소년의 아버지가 지장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스님, 아들의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절을 지을 땅을 좀 주시겠소?”
 구화산 일대가 전부 자신의 땅이므로 소년의 아버지는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이 넓은 구화산이 모두 제 땅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제 몸에 걸친 가사로 절 땅을 표시하겠습니다.”
 지장 스님이 가사를 벗어던지니 때마침 돌개바람이 불어와 구화산을 날았습니다. 이윽고 지장 스님의 가사가 내려앉자 이번에는 삽살개가 가사를 물고 구화산 이곳저곳을 달렸습니다. 말하자면 돌개바람과 삽살개가 절터를 점지해 주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이때부터 구화산은 온 산자락이 모두 절터가 되었던 것이지요. 중국의 고서에서는 호랑이에게 죽을 뻔한 소년의 이름을 도명이라 하고, 구화산의 주인인 그의 아버지를 민양화, 당시의 삽살개의 이름을 ‘제청’ 혹은 ‘선청’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민양화는 자식인 도명을 지장 스님에게 출가시키고 자신도 제자가 됩니다. 지장 스님은  절을 하나 짓습니다. 오늘의 화성사가 바로 그 절입니다. 
 결국 서라벌의 토종개 삽살개는 천수를 다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지장 스님은 삽살개를 묻어주고 탑까지 세워주었습니다. 지장 스님은 날마다 삽살개를 묻은 탑 앞으로 가서 기도했습니다. 다음 생에서는 불도를 함께 닦는 도반으로 만나자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탑 속에서 삽살개가 컹컹 대답하는 듯했습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