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이 아니야> 진광스님 지음

 

조계종 교육부장 진광(眞光)스님이 책을 냈다. 스님들 책 내는 게 새롭지 않은 시절이지만, 진광스님이 책을 냈다니 눈이 번쩍 뜨였다. 도무지 책을 낼 것 같지 않은 스님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진광스님의 진면목을 미처 알아보지 못한 필자의 탓이다. 알고 보니 스님은 유년시절부터 문재(文才)가 남달랐던 분이셨던 것이다. 

 

책의 이름이 무척 재미나다. <나는 중이 아니야>(불교신문사 펴냄)라는 이름은 저자 진광스님의 성정을 잘 드러낸다. 돌이켜보면 진광스님과 필자의 인연은 스님의 은사이신 법장스님이 총무원장에 출마하던 시절로 기억된다. 당시 진광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장 중에 필자가 유일하게 좋아했고 존경했던 법장스님을 그림자처럼 따르며 모셨다.
걸걸한 목청과 괴각(怪角)을 연상시키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고, 그때부터 스님과는 격의 없이 가까워졌다. 선방 아니면 배낭여행을 즐겼던 스님을 다시 만난 것은 스님이 조계종 교육원에서 교육국장으로 일하면서부터다. 어느 때부턴가 종단정치에 신물을 느낀 필자는 어쩌다 종단을 들르면, 총무원이 아닌 교육원을 즐겨 찾곤 했다. 진광스님은 교육국장을 꽤나 오랫동안, 그것도 놀라울 정도로 열정적으로 수행했던 스님이었다. 교육부장을 해도 좋은 연륜에 국장으로 일하는 스님을 보고 필자는 ‘부장급 국장스님’이라고 불렀다.

 

책의 제목이 된 표현 ‘나는 중이 아니야’는 만공 노사께서 월산스님에게 했던 말이다. 불교신문 논설위원을 맡았던 스님은 이 재미있는 일화를 <불교신문>에 같은 제목의 글로 기고했다.  
 
덕숭산 정혜사 살 적에 불국사 월산 큰스님께서 대중공양을 한 번씩 오시곤 했다. 공양물이 오징어 버터구이라 그 날만을 학수고대했다. 아마 큰스님의 자비심이었으리라 짐작한다. 대중공양도 좋기는 하지만 옛날 수행담과 소참법문을 해 주셔서 더욱 좋았다. 정혜사 행자시절 공양주 하던 때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으면, 가끔 만공 큰스님께서 오셔서 슬쩍 들여다보시고 “저 놈은 중이 안 될 놈이 중이 되었어!”라고 하시더란다. 그래서 “큰스님도 중이 안 되실 분이 어떻게 중이 되셨어요?”라고 물으니, 만공 큰스님께서 “나는 중이 아니야! 나는 중이 아니야!”라며 손사래를 치시며 껄껄 호탕하게 웃으셨단다. “만공 큰스님과 나눈 이야기는 달랑 그 몇 마디인데, 그것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으니 그 덕화를 잊지 못해 매년 들르신다”고 말씀하셨다. 이를 일러 일기일회(一期一會)의 위대한 만남이라 하지 않을까? 그 말씀을 하시던 월산 노스님의 그윽한 눈빛과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경허, 만공, 혜월스님의 진영이 모셔진 금선대에 작은 현판이 안에 걸려있는데, ‘청풍오백간주인(淸風五百間主人)’이라 쓰여 있다. ‘오백간’이 무슨 뜻인지 큰스님께 여쭈었더니 “그것도 모르느냐? 오백간이 바로 온 우주를 말함이네!”라고 답하신다. 무릎을 탁 내리칠 만한 명쾌한 답이다. 그것이 월산 노스님의 마지막 정혜사 나들이였으니 이듬해 입적하셨기 때문이다. 노스님을 뵈올 수 있고 법문을 들을 수 있던 그 시절은 얼마나 소중하고도 아름다운 날들이었는지 모른다. 월산스님과 만공 노스님의 짧은 대화와 만남이, 또한 나와 월산 노스님과의 대화와 만남이 같은가, 혹은 다른가? 그리고 “나는 중이 아니야!” 하시던 만공 노스님의 뜻은 무엇인지 참구해 볼 일이다. 누가 내게 “어찌 중이 안 될 사람이 중이 되었는고?” 묻는다면, 나 또한 “난 중이 아니야!”라고 답하리다. -이 책 101쪽 ‘나는 중이 아니야’ 중에서

 

이 책은 진광 스님이 수행자로서 살아온 여정을 담고 있다. 1994년 24살 나이에 출가한 진광 스님은 15년 정도를 수덕사 등 사찰에서 ‘수도승(修道僧)’으로 지냈다. 2010년부터는 서울 도심에서 ‘수도승(首都僧)’으로 살아왔다. 그러니까 이 책은 최근 9년간 수도승(首都僧)으로 살전 속세 수행의 기록인 셈이다.

 

2010년 교육원 불학연구소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도심 속 수도승이 된 진광스님은 스님들을 교육하는 동안 맺었던 수많은 인연과 행복 이야기를 전한다. 책의 절반은 불교신문 논설위원을 하며 쓴 각종 칼럼과 언론사 기고문들이다. '나는 중이 아니야'라는 발랄한 제목의 배경이 궁금하다면 동명의 칼럼을 읽어보면 된다. 수덕사 방장 스님이었던 원담 스님을 비롯해 이제는 현생에 없는 노스님들을 향한 그리움을 담은 추모 글도 실었다.

 

그는 2013년부터 교육원 해외 연수를 책임졌다. 첫 배낭여행 경험, 여러 스님과 떠났던 성지순례에서 얻은 깨달음, 수행자로서 철학도 담담히 풀어놨다. 또한 조계종이 2014년 처음 개최한 학인 염불대회를 시작으로 외국어스피치 대회, 토론대회, 설법대회 등 저자가 총괄한 대회 뒷이야기는 쏠쏠한 재미를 준다.
특히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스님의 추천사가 눈길을 끈다.

 

 

130여회의 순례 경험이 새로운 희망과 깨달음을 가져다줬다는 진광스님. 스님은 소설가 김훈의 에세이 <자전거 여행>의 서문에 실린 “이 책을 팔아서 자전거 값 월부를 갚으려 한다. 사람들아, 책 좀 사 가라!”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이 책을 팔아서 교육원 소임을 마치면 지중해 연안 국가들과 서부 아프리카 배낭여행을 떠나려 한다. 스님네와 불자님들과 독자제위여, 제발 이 책 좀 사주시라!”라고 스스럼없이 청한다. 가히 진광스님에게나 어울릴법한 쾌활(快活)한 기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