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수행을 위해 플래시를 들고 천천히 걸어 법당으로 향하는데 돌연 옆 꾸띠 지붕 위에서 찌~익 찍! 소리와 함께 우당탕탕 소리가 들려온다. 날짐승들끼리 영역다툼을 벌이며 서로 부딪친 모양이다. 그 순간, 4악도 가운데 하나, 축생계에 태어난 중생들에 대해 연민의 마음이 떠오른다. 축생이란 소나 개, 돼지 등의 짐승이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호랑이, 사자, 코끼리 등만이 아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이름 모를 생명들까지 그 숫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미세한 생물부터 오물오물 그 수를 알 수 없는 작은 곤충들까지 헤아리기 불가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축생들이 육지와 바다, 산과 강, 하천, 늪지 등에서 나고 죽기를 반복한다. 인간처럼 축생들도 생로병사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다. 축생이 더 안쓰러운 이유는 제명을 사는 생명보다 먹이사슬의 상위에 있는 축생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죽임을 당하는 운명을 타고난 축생들. 그들에게 부디 이고득락(離苦得樂)의 기회가 다시 주어지기를 마음속으로 발원했다.      
그러나 저 축생들의 모습이 미래의 내 모습일 수도 있다. 인간이 다음 생에 인간으로 태어나는 확률은 생각보다 희박하기 때문이다. 지금 수행을 하러 법당으로 향하는 나도 여섯 가지의 문을 통해 들어오는 탐·진·치에 맥없이 휘둘린다면 예외 없이 불선업(不善業)을 짓게 될 것이고, 그 과보로 4악도에 떨어져 저들과 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어떻게 하든 이번 생애에 도과(道果)와 열반(涅槃)을,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수다원의 흐름에는 들어가야 한다.’는 절박감이 피부로 다가온다. 그러고 보니 수행만이 갈 길이고, 살 길이다. 

 

수행! 수행이란 무엇인가. 팔정도(도성제)를 실천해서 고성제를 알고, 집성제를 버려서 멸성제에 도착하는 과정이 수행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몸과 마음의 있는 그대로를 바른 노력, 바른 사띠, 바른 집중으로 관찰하다 보면 매 순간 번뇌를 닦게 되고, 매 순간 이 몸과 마음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게 되는 것이 수행이다. 그런데 수행은 오직 자신에게 달려 있다.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처님이라도 대신해주지 못한다. 부처님은 바른 수행의 길을 가르쳐주시는 분이다. 부처님께서 걸어가셨고, 가르쳐주신 수행의 길을 가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 뿐이다. 

 

체기가 거의 가라앉아 오늘부터는 큰 불편 없이 앉음수행이 가능할 것이다. 법당으로 들어가 부처님 전에 3배를 올리고 지정된 나의 자리에 앉았다. 체기로 인해 지난 2~3일 제대로 사띠를 챙기지 못했으니 이제부터라도 더 수행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실로 며칠 만에 통증 대신에 호흡을 관찰했다. 배의 부풀고 꺼짐을 마음속으로 되뇌면서 뱃속 공기의 흐름을 세밀히 관찰하고자 노력했다. 두어 차례 망상이 찾아오긴 했지만 곧 알아차리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다만 망상을 알아차리는 시간을 조금 더 단축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일어났다. 망상이 일어나더라도 즉각 알아차려 호흡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망상을 지어가다가 한두 박자 늦게 알아차리는 실수를 반복하고 말았다. ‘아직 한참 멀었다!’ 스스로 자책을 해보지만, 그래도 궁극적으로 가야할 바른 길, 부처님께서 걸어가셨던 옛길에 일단 접어든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담마마마까 수행센터에 온지 오늘로 보름째. 그동안의 성과라면 혼침의 수렁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것 같고, 한 시간 정도는 어렵지 않게 앉아 수행을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비교적 사띠를 잘 챙겼기에 한 시간 수행이 훌쩍 지나갔다. 새벽 정진이 종료되었다는 종소리를 듣는 마음이 오늘은 매우 상쾌하다. 부처님 전에 3배를 한 후 천천히 모기 망을 걷어 올렸다. ‘오늘 아침은 그런대로 집중이 잘 되었다’며 자평하며 일어서는 순간, 예고 없이 에인다까 사야도께서 법문을 하기 위해 입장하신다.

 

 

 

일단 사야도가 나타나면 수행자들은 출·재가를 막론하고 긴장하게 마련이다. 사야도가 법석에 앉을 때까지 모든 수행자들이 침묵한 채 합장을 하고 예의를 표했다. 그런데 세상에나! 사야도께서 오늘 아침 법문을 내가 새벽 법당으로 올 때 날짐승을 보며 떠올렸던 내용을 이야기하시는 게 아닌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저 분이 내 마음을 거울처럼 들여다보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할 정도다. 그뿐인가. 나를 포함해 끼리끼리 모여 대화를 나누는 한국인 수행자들을 꼭 집어 경책하듯이, 도와 과, 그리고 열반을 얻기 위해 이곳까지 수행을 하러 온 수행자들이라면 누가 권하지 않아도 마땅히 수행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특히 수행자 간에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어울려 돌아다니는 행동은 금해야 한다고 거듭 말씀하신다. 그 순간 나의 등골이 오싹거렸다. 다 알고 계시는구나! 앞으로는 정말로 조심해야겠다.

 

사야도께서는 수행자들에게 정진력(위리야)과 사띠(알아차림)가 사띠파타나 위빠사나 수행의 핵심이라며 사띠를 놓치지 말고, 또 사띠를 지속시키는 위리야가 증장되어야 자연히 집중력이 생겨나고, 집중력이 커지면 대상의 생멸을 알게 되며, 자연스럽게 무상, 고, 무아를 깨닫게 되어 도와 과, 열반을 성취할 수 있다고 거듭거듭 강조했다. 사야도의 법문 한 마디 한 마디가 나의 정수리에 팍팍 꽂히고 있다. 한 시간 넘게 법문이 진행되었다. 법문이 끝나자 곧바로 아침 죽 공양으로 일정이 이어졌다.

 

소량의 죽 공양을 마치고 오후 8시에 시작되는 탁발에 참여했다. 탁발의 의미도 의미이지만, 맨발로 걸으면서 발바닥의 느낌을 사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행법 가운데 하나가 탁발이기 때문이다. 3일 전 탁발을 나갔다가 발바닥을 다쳐 쉬었던 탁발이기에 발바닥이 찔리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며 걸었다. 그렇게 700여 미터쯤 걸었을까. 예리한 철사 같은 것에 오른발바닥 뒤꿈치를 또다시 찔리고 말았다. 엉겁결에 이물질을 빼내자 피가 흘러나온다. 그러나 어쩌랴. 탁발행렬을 따라가야 하니 절름거리며 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힘겹게 탁발을 마치고 꾸띠로 돌아와 깨끗이 발을 씻은 후 소독을 하고 찔린 자리에 밴드를 붙였다. 아무래도 더는 탁발을 나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음이 뇌리에서 맴돌고 있다. 그런데 어쩌나. 탁발한 발우를 들고 다시 절로 들어오는 길목에 서서 비구들을 향해 앙증맞은 손으로 합장을 하고 있던 서너 살쯤 된 어린 소녀의 눈망울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을!

 

 

 

점심 공양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하고나니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12시 정진을 쉬었으니, 오후 1시 정진에 들어갔다가 2시 한국관으로 가서 법문을 들어야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2시 법문은 휴강이다. 사야도의 새벽 법문으로 대체된 것 같다. 그 시간에 선원 내에 산책을 하기로 했다. 아직 가보지 않은 쪽의 산책로를 선택해 혼자서 천천히 걸었다. 오른발, 왼발을 마음속으로 부르며 발바닥에 전달되는 느낌들을 면밀히 관찰했다.

 

건기인데도 태양이 작열하고 있다. 삭발이라 직사광선의 위력이 더 크게 느껴진다. 30여 분 행선을 겸한 산책을 하고 나니, 피곤이 몰려온다. 꾸띠로 돌아와 가사를 벗고 침상에 누웠다. 그동안 수행하랴, 감기와 체증으로 시달리랴 적잖이 지쳤던 모양이다. 그 누적된 피로가 뜨거운 햇볕을 쬐면서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대로 곯아떨어진 것 같다. 잠이 드는 순간까지 사띠하라고 그렇게 사야도께서 신신당부했건만, 이번에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채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스님, 스님, 괜찮아요? 어디 아픈가요?” 오후 4시 수행시간에 내 모습이 보이지 않자, 신야나 사형님이 6시 앉음수행 시간에 맞춰 내 꾸띠로 찾아왔다. 곧 뒤따라가겠다고 먼저 보내드리고 주섬주섬 가사를 걸친 후 법당으로 향했다. 6~7시 수행을 마치고 다시 한 시간 동안 꾸띠로 돌아와 아신 자띨라 사야도의 명저 <담마 디스커스(Dhamma Discourses)>을 읽으며 휴식을 취했다. 마지막 수행인 8~9시 앉음수행 시간에 맞춰 나는 다시 꾸띠를 나섰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정진시간이라서 이 시간에는 많은 수행자들이 법당을 빼곡하게 채운다. 오늘 하루 수행 중 가장 집중이 잘 되어간다. 사띠를 챙기고, 망상이 일어나도 바로 알아차린 후 주관찰 대상인 호흡으로 돌아와 일어남 사라짐을 챙겼다. 사띠가 일정시간 유지되면 즐거운 마음이 일어난다. ‘망상 없이 성성하게 깨어있구나’라는 자부심 같은 것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 순간 갑자기 나의 눈앞에 아름다운 숲이 펼쳐졌다. 마치 가상현실(VR) 체험을 했을 때처럼 말끔한 영상이다. 선명하게 펼쳐진 나무와 풀들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그렇게 10초쯤 흘렀을까. 문득 나는 이 또한 망상이구나! 하고 알아차렸다. 어찌되었든 이런 현상을 잠시나마 즐겼다는 건 깜빡 사띠를 놓쳤다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을 더 바짝 차리고 호흡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배를 관찰했다. 이때 배의 모양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배 안으로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공기의 흐름을 관찰하는 것이다.

 

사띠가 한 동안 끊어지지 않고 제법 길게 이어지고 있다. 그 순간, 콜록콜록 뒷자리에 앉은 미얀마인 남성 수행자가 기침을 시작한다. 늘 기침을 해오던 요기(수행자)였지만 이번 시간에 더욱 기침이 심하다. 기침 소리가 나면 들림, 들림 하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가면 되는데, 연달아 기침을 해대니 영 집중이 되지 않는다. 아, 짜증! 기침이 심하면 조용히 일어나 나갈 것이지, 어째 끝까지 앉아 다른 사람의 수행을 방해하는가? 분심 같은 것이 일어난다. 다행스럽게도 들림, 들림하며 망상의 하나인 분심을 알아차림 했다. 다행이다. 분심을 오래 지속시키지 않고 이내 끝낼 수 있어서다. 이후로는 증상이 가라앉았는지 미얀마 요기의 기침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그렇게 마지막 정진 시간이 끝났다.

 

정진을 마치고 꾸띠로 돌아오는 길에 도이 장로님(다섯 비구 중 최고연장자인 도이법사를 나머지 네 비구들은 장로님이라고 불렀다.)께 정진 도중 나타났던 아름다운 숲의 장면에 대해 설명하고 어떤 현상인지를 여쭈었다. 도이 장로님의 대답은 역시 ‘니미따 현상’이라는 것이었다. 도이 장로님은 그 또한 망상이니 즉시 알아차리고 호흡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수행을 하면서 나타나는 어떤 현상에도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오직 호흡에 집중하며 사띠를 챙겨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셨다. 도이 장로님은 또 뒷줄에 앉은 미얀마 요기의 계속되는 기침소리에 짜증이 일어난다는 나의 고민을 듣고, “분심은 망상이고 반드시 어리석음을 동반하는 것이니, 그런 일이 있을 때에는 바로 ‘그대에게 기침의 고통이 사라지기를!’라는, 메타수행을 해보라.”고 권하신다. 수행은 혼자서 하는 것이지만, 이렇게 좋은 선배나 도반이 있으면 이런저런 경계에 부딪쳤을 때 큰 힘이 된다. 그래서 ‘수행의 절반은 도반이 해준다.’는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