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삼천리골은 버스를 갈아타고 삼천사 입구 정류장에서 하차를 한 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산길을 오르다 고개를 들어보면, 파란 가을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있다. 완연한 추색이 하늘에도 깃들었다. 그리고 그 아래 늘어서 있는 능선들과 봉우리들이 이뤄내는 풍경은 말 그대로 그림 같다.

이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걷는 길은 저절로 신바람을 일으키고, 이내 마음은 뭉게구름처럼 파란하늘 위에 두둥실 떴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삼천리계곡 안으로 흡수되듯 빨려 들어간다.

이미 갈수기로 접어든 계곡에는 시원한 물소리는 없어도 소를 이룬 곳 마다 명경 보다 맑은 물들이 파란 가을하늘과 흰 구름을 가득 머금고 있다.

삼천사 입구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맞아주는 오층석탑이다. 오층석탑 위로 의상능선의 봉우리들이 새초롬하니 살짝 삐친 모습이다.

“너 요즘 왜 나를 안 찾아주는 거니?”하고 투정을 부리는 듯하다.

“산이시여! 가을 옷 더 예쁘게 갈아 입으셨을 때 꼭 찾아 뵐게요.”

한쪽 눈 깜빡이며 인사를 건네자 하얀 이마 번득이는 봉우리 하나가 햇살 한 웅큼을 튕겨내며 화답을 해준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인사를 나눈 봉우리는 용혈봉일까? 아니면 용출봉일까? 그도 아니면 나한봉?

예선 잘 모르겠지만 다음에 그곳으로 오르고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산봉우리들과 인사를 나누고 지장보살 입상 앞에서 참배를 드렸다.

삼천사 일주문 안으로 들어서니 스님의 독경 소리가 경내에 가득 떠다니고 있다. 대웅전을 돌아 부처님 사리탑에 합장을 하고 마애여래입상 전으로 가서 정성껏 참배를 드린다.

삼천사 마애여래입상은 보물 제657호로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시대 초기에 화강암에 조성된 부조상이다.

삼천사는 조계종 조계사의 직할교구의 말사로 661년 신라 문무왕 1년에 원효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한때 이곳에서 수행을 하던 스님의 그 수가 삼천을 헤아릴 정도여서 삼천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 이름난 산중 큰 절집이다. 이 가을 산중 절집은 더욱 가을 정취가 곳곳에서 묻어있어 좋다.

스님의 청아한 독경 소리를 뒤로 두고 삼천사의 계곡을 따라 오른다. 말라버린 버린 폭포 너머로 언뜻언뜻 붉은 단풍나무 잎사귀들이 보인다. 시나브로 가을이 찾아들고 있는 것이다. 구불구불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섶에는 구절초와 미역취들이 곱게 꽃을 피워내 오르는 길에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한참을 오르다가 계곡을 벗어나 긴 암벽을 기어오른다. 이윽고 열리는 풍광들.

서서히 드러나는 의상능선이 울퉁불퉁 암봉으로 기다랗다. 병풍처럼 펼쳐진 의상능선 뒤로 보이는 백운대도, 만경대도, 노적봉도 우람하고 장엄하다.

이렇게 열려진 풍광 위로 드높아진 가을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송송송!

풍경은 시원함을 넘어 상쾌하다. 짜릿한 전율까지 느껴지게 할 정도다. 그리고 오른 응봉능선은 또 다른 풍광들이 펼쳐진다.

의상능선의 최정점인 문수봉과 사자능선의 최정점인 보현봉도 한눈에 올려다 보인다. 또 비봉과 향로봉이 보이는 비봉능선도 모두 아름다운 풍경이 되어 망막 안으로 빨려들어 온다.

그리고 이른 곳이 사모바위. 멀리서 보면 암봉 위에 공기돌 한 개 올려놓은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고 또 주사위 하나를 던져놓은 모습으로도 보이는 바위가 사모바위다.

사모관대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지만 슬픈 전설 하나가 서려있어 그 이름이 더욱 마음이 가는 바위다.

조선 인조 임금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자가 전쟁터로 갔다가 다행히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고향에 돌아오니 사랑하는 여인이 청나라로 끌려갔고 남자는 여인이 풀려나 돌아오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고 여인들이 청나라로 끌려갔다가 풀려났으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북한산 자락 지금의 홍은동 지역에 모여 살았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인을 찾으려고 그 지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결국 그는 북한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언제고 돌아올 그녀를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

비봉 쪽에서 이 사모바위를 바라보면 틀림없이 북쪽을 향해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있는 한 사내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니 왠지 그 모습이 애처러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모바위에서 구기동으로 하산 길을 잡는다. 어차피 구기동으로 내려가는 길이라면 승가사를 들러서 가야겠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 승가사 일주문 앞에 도착을 한다. 일주문을 지나서 오르는 돌계단. 가을 하늘을 머리에 이고 오르는 느낌이다.

108개의 계단을 오르면 마주치는 대탑이 민족통일호국보탑이다. 대공덕주가 돌아가신 고 정주영 회장이라고 하니 그가 살아생전 얼마나 통일을 염원하였는지 알 수 있는 징표다.

하늘을 향해 거대한 모습으로 세워진 대탑은 장엄하고 수려하다. 정교한 조각 솜씨며 하늘을 찌르는 그 높이를 볼 때마다 대단하단 말밖엔 생각나는 말이 없다.

다시 목재데크 계단을 올라 승가사 경내로 들어선다. 승가사 역시 조계종 조계사의 직할 사찰로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는 절집이다.

대웅전에서 참배를 드리고 돌아 오르니 커다란 바위 아래로 굴이 하나 보인다. 이곳이 약사전이다. 약사전에는 석조승가대사좌상이 모셔져 있다. 보물 제1000호로 지정된 문화재로 병자들에게 영험하다하여 약사불로도 불린다.

약사전에서 더욱 마음을 들여 참배를 올린다. 오랜 지병을 앓고 있는 나의 부친 때문에 더욱 마음이 간절하다.

약사전을 빠져나와 다시 긴 돌계단을 오른다. 보물 제215호인 마애석불석가여래좌상으로 오르는 계단길이다. 이 계단 역시 108개로 한 계단 한 계단 걸어 오르며 번뇌망상 하나씩을 덜어내려 해 본다.

그렇게 오른 계단 끝에는 거대한 바위 벽면에 자애로운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계신다.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고 조각 솜씨 또한 빼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시선을 끄는 것은 부처님 머리 위에 올려놓은 갓인데 따로 조각을 해서 끼워 넣은 것이 신기하고 특이하게 보인다.

마애부처님 전에 절을 올리고 돌아다보니 시야가 시원하다. 승가사는 그만큼 높은 곳에 위치한 절집이고 이곳 마애석불이 있는 곳은 사모바위 바로 아래에 위치했으니 내려다보는 풍광이 시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승가사를 빠져나와 하산을 시작한다. 이제 서서히 가을빛이 번져들고 있는 숲길을 따라 구기동에 이른다. 맑디맑은 계곡물에 버들치들이 무리지어 노닐고 있다. 다시 눈과 마음이 시원해지는 순간이다.

가을 산, 가을 산사에는 가을 정취를 느껴보기에는 그만이다. 가을 한낮 파랗고 높아진 하늘에 첨벙. 한 없이 뛰놀다 온 느낌이다.